사회

비겁한 중앙일보 김진기자

YOROKOBI 2010. 5. 18. 20:49

 

떳떳하지 못하고 야비한 짓을 하는 사람을 비겁한 자라고 일컫는다. 친일파들과 독재자들이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쫓아 정의를 저버린 짓이야말로 가장 비겁하고 추악한 일이다. 촛불세력과 같이 정의를 위하여 일어선 세력을 핍박하는 것도 비겁한 짓이다.
우리 사회에는 비겁한 자들이 너무 많다. 비겁한 자들은 대부분 기득권층에 속한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비겁한 사고 속에 묻쳐 사는 자들도 많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인 김진 정치부기자도 비겁하기로는 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는 권력의 그늘에 안주해 있는 자이다.
그는 뜬금없이 촛불세력을 비겁하다고 몰아부쳤다. 촛불세력 그들은 과연 정의로운가? 하고 의문 부호를 써서 촛불세력을 비겁자로 몰고자 하였다. 그러나 촛불세력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한 이명박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워 국민의 건강을 지켜낸 위대한 민중의 힘이다. 김진 같은 자들 말고는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당한 권력에 동조, 또는 편승하여 정의와 대적하는 김진이야말로 대표적인 비겁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진은 소신도 개념도 없는 친미주의자이다. 김진은 17일 칼럼을 통해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에 대하여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비문을 인용하여, 인생의 꽃이 채 피기도 전에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높은 전사율을 무릅쓰고 들어본 적도 없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로 달려갔던 것이라고 썼다. 그것은 사실이다. 한국인들치고 미국의 그런 점에 감사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미국은 공산세력에 대항하여 그 저지선으로 한반도를 선택하였다. 미국본토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으로 한반도를 점 찍었던 것이니 김진의 말마따나 미국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로 달려갔을 뿐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면서 한국을 도우러 왔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김진은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6.25때 미국의 도움으로 우리의 강토를 지켜낸 것은 고마운 일이겠으나 김진처럼 무조건 미국이라면 꿈벅 죽고 못살아야 할 일은 아닌 것이다.

김진과 같은 친미주의자는 국가의 미래와 자존을 좀먹는 위험한 존재들이니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주장을 들려주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지만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것이 국제관례이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받은 만치 맹방으로서 역활을 충분히 하고 있다. 은혜를 입었다고 하여 종속적으로 처신하는 것은 주체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김진과 같은 종속적인 사고방식은 노예근성에 다르지 않다. 친일파들의 친일행위에서 보아서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노예근성적인 국가관은 국민과 국가를 종속적인 존재로 추락시켜 독립의지마저 상실시켜 버리고 만다.

이땅에 친일파들과 김진과 같이 생각하는 자들만 있다면 대한민국의 독립은 없었을 것이니 이들 무리를 경계하지 않고는 국가를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김진 기자는 같은 날 칼럼에서 촛불세력이 북한에 침묵한다며 자못 분개하며 떠들어 댔지만 국가를 패망시키는데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전쟁이라도 일어나 한반도가 쑥밭이 되고서도 원인도 확실하게 드러난 것도 없는 천안함 사건 같은 경우를 두고 북풍만을 부채질 할 수가 있겠는가. 어리석은 무리들이야말로 북한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이라는 점에 우리는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관련기사 :  http://news.joins.com/article/121/4176121.html?ctg=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