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매뉴얼대로 매일 활동보고... 국정원 조직적 관리 명확해져

YOROKOBI 2013. 8. 26. 10:49

검, 심리전단 업무 매뉴얼 확보…오늘부터 '원세훈 재판' 시작
"지시·보고체계 따라 움직여" ... 업무보고 문건 등 증거 확보... 원세훈 임기내내 회의에서
"국정 지원도 우리 업무"... 검찰, 댓글 '사실상 지시' 판단

26일 시작되는 원세훈(62·사진)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판에선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 및 정치 개입 게시글·댓글 작성 등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원 전 원장이 이를 지시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원 전 원장 쪽은 '댓글·게시글 활동은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했다' '원장의 지시와 직원들의 댓글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별 국정원 직원이 쓴 글과 원 전 원장은 직접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사이버 여론조작을 담당한 심리전단의 활동 방식 등을 자세히 규정한 '매뉴얼'을 만들고 심리전단 직원들이 날마다 게시글 목록 등 활동내역을 '윗선'에 보고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국정원이 체계적·조직적으로 사이버 활동을 하고 이를 엄격히 관리했음이 더욱 명확해졌다.

검찰은 우선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인터넷에 게시글 등을 올린 행위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지역 주민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도 '기부행위'로 처벌할 만큼 세세하게 선거와 관련된 불법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글 가운데 '한건'이라도 특정 후보자 낙선 목적이라는 점이 인정되면 선거법 위반 혐의는 성립된다. 국정원법 위반 혐의도 마찬가지다. 게시글 등이 '정치 관여'에 해당한다고 재판부가 판단하면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인정된다.

핵심은 원 전 원장이 이런 행위를 지시했느냐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4년 임기 동안 부서장 회의를 통해 이를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원 전 원장은 2009년 5월15일 취임 뒤 열린 첫 전 부서장 회의에서 "국정원이 일반 국정에 대해서 '우리 소관이 아니다' 해서 놓고 있다면 국정원이 이렇게 큰 조직이 있을 필요도 없고, 무슨 지부도 있을 필요도 없고, 우리 부서도 여러 개 있을 필요 없이 한 3분의 1 규모로 하면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은 지난 1월 퇴임을 앞두고 연 부서장 회의에서는 "국정원의 할 일은 대북첩보 수집, 종북세력 척결이며 대통령 직속기관으로서 국정 과제 지원은 당연한 업무로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단체, 노조 등 국정에 비협조적인 사람과 단체를 모두 종북세력으로 보고 선거 때 야당 후보한테 불리한 여론을 조성하도록 인터넷 게시글·댓글 등을 달고 찬반 클릭을 하도록 한 것이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낙선 목적의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또 원 전 원장이 '원장-3차장-심리전단장-팀장'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에 따라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주요 이슈와 대응 논지'를 하달했고, 자기의 지시대로 활동했는지 여부를 보고받았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매주 갖는 전 부서장 회의 또는 매일 여는 모닝브리핑 등을 통해 차장·부장·파트장 등 지휘체계에 따라 지시했고 이 체계에 따라 올라온 보고를 취합했다. 그중 의미있는 것들은 보고서 형태로 원장에 보고됐다. 지시·보고 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과정에서 범행이 일어났다. 공식 체계가 아닌 돌출적인 지시 체계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런 '지시·보고'와 관련된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과 업무보고 문건 등을 확보했다. 심리전단의 업무 매뉴얼도 이를 입증할 핵심 증거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원 전 원장은 취임 직후인 2009년 3월 국 소속 부서인 심리전단을 3차장 산하의 독립 부서로 만들었다. 동시에 심리전단 내 사이버팀을 2개로 확대하면서 '반정부 선전·선동에 대응한 국정홍보 사이버 활동'을 임무로 지정했다. 2010년 10월에는 사이버팀을 3개로 확충했고, 2012년 2월 총·대선을 앞두고는 사이버팀을 4개, 70여명으로 확대했다. 원 전 원장이 심리전단 조직 확대에 큰 관심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 전 원장은 "시종일관 국정원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지휘했다. 선거 개입과 정치 관여를 금지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 금지' 지시는 '레토릭'에 불과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