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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졸고있는 남자를 증오한다-프란체스코 알베로니

YOROKOBI 2014. 1. 24. 09:51

 

여자는 졸고있는 남자를 증오한다-프란체스코 알베로니|

 

남자가 곁에 있지 않으면 언제나 아쉬어한다. 곁에 있어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눈길을

주지 않으면 허전해 한다. 여자는 졸고 있는 남자를 증오한다.
"보바르의 주장이나 페미니즘에 따르면 여자가 이렇게 느끼는 까닭은 사회 속에서 수동적인 입장을

강요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자가 자신의 활동 속에서 만족을 느끼면 남자가 곁에 없어도 더 이상 공허감을 느끼지 않는다."
남자는 변화를 좋아하고 여자는 단 하나의 사랑을 꿈꾸지만, 양쪽 모두 가슴설레는 에로틱한

체험을 꿈꾸고 있음에는 차이가 없다.

머리가 좋고 유능하고 뭇여성의 시선을 끌 만큼 잘 생긴 미남이 추녀와,

적어도 미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여자와 결혼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들은 삶의 과정에서미녀들을 섭렵하는 일은 있어도 그녀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러한 여자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다가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를 갈망한다.

여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섹스가 아니다.

남자에게 사랑의 불꽃을 피우게 하고, 추억과 노스탈지어가 되어 언제까지라도

살아 숨쉴 욕망을 그의 마음 속에 불어넣으려는 것이 여자의 의도이다.

여자라면 언젠가는 찾아와 눈을 뜨게 해줄 왕자님을 꿈꾼다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여자는 황홀하게 반할 만큼 자신의 몸을 가꾸어야 한다.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떠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잠자는 공주의 넘치도록 눈부신 아름다움이다.

여자는 상대가 사랑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공들인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고 깨닫고 견딜 수 없는 허무감에 몸을 떨며 상심한다.
상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가 된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자기를 그렇게 만든 남자에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린다.

이러한 현상은 결혼생활을 하는 남녀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남자에게 연애 감정이 없는 경우,
 

여자를 다시 만나느냐 만나지 않느냐는 만남이 어떠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지난번 만남이 만족스러웠다면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번 만남도 좋았다면 또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만남이 지루했거나 어떤 골치아픈 문제가 생겼거나 했다면, 또는 지금의 일상생활이 혼잡하고

어수선해서 정신이 없으면 다시 만나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기준으로 삼는다.

저녁식사 초대에 응하는 까닭은 남자가 명사이기 때문이고 결혼하는 것은 돈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적인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여자의 에로티시즘을 자극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호감이 가는 남자이다.

물론 때로는 눈부신 섹시한 매력에 굴복하는 일이 있기도 하다.

남자는 어떤 여자에게 정열을 잃으면 단지 무관심해진다.

여자가 싫어지면 그저 무시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귀찮게 굴지만 않으면 우호적인 관계는 유지한다.
거기에 비해 여자는 새로운 남자가 생기면 전 남자를 지긋지긋하게 여긴다.

남자를 헐뜯거나 그 존재를 아예 지워 버리려고 한다.

그때까지의 족적을 모두 파괴하고 싶어한다.

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관계를 지속히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남자처럼 쾌락의 순간이 중요하다면 추억은 남겨두려고 할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욕망이 언젠가는 반드시 되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전 애인이나 전 부인을 보면 질투심을 느낀다.

비록 공상 속에서라 하더라도 남자가 그 여자를 원하는 일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싫증을 잘 내는 존재이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지만,

특히 남자가 보다 빈번하게 싫증을 낸다.

여자가 좋아하는 일상생활은 남자의 에로티시즘을 감퇴시키는 역할을 한다.

에로틱한 만남은 즐겁고 최고의 기쁨을 줄지도 모르지만 거듭되는 동안에

두 사람의 관계가 강화되기보다는 타성을 낳는다.

빌헤름 슈터겔이 상세하게 검토한 바에 따르면, 여자는 가치를 인정받고

소중하게 떠받들어지고 사랑받지 못하면 차갑게 껍질을 닫아 버린다고 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도 그의 견해가 옳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여자가 상대를 깊게 신뢰할 때만 자신을 상대에게 맡기고, 보다 깊은 에로티시즘을 분출한다.

여자의 에로티시즘은 지속, 친근, 언제까지나 사랑받고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욕구이다.

상대의 품에 안기고, 함께 살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은 욕구이기도 하다.

반면에 남자의 에로티시즘은 단절과 휴식과 변화가 없으면 곤란하다.
사랑에 속박되지 않고, 결합된 관계를 언제라도 풀 수 있기를 바란다.

여자는 기다린다'라고 흔히들 말해왔다.

여자는 남편을, 성실하지 못한 애인을,언약을 하면서도 제멋대로 행동하는 상대를 기다려야 한다.

여자는 기다리면서 준비를 한다.

을 고르거나 화장을 하는 시간이 남자에 비해 믿을 수 없을 만큼 길다.

그런데도 여자의 준비는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남자의 이해를 받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불만과 실망을 느낀다. 그

러나 자신을 갈망하는 사람이 있고 상대도 기대에 가슴이 부풀어 기다리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준비가 즐겁고 상큼하다. 그것은 에로틱한 행위가 되고 만남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가 된다.

여자는 그 속에서 기쁨을 맛본다.
서로 깊이 사랑하고 아끼는 관계에는 질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연애는 경험을 두 가지로 나눔으로써 성립한다.

하나는 평범하고 하잘것없는 일상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가슴을 애태우는 진실한 사랑이다.

질투는 후자가 완벽하게 자리잡은 상태에서는 끼어들 틈이 없다.

만일 끼어든다면 그것은 악몽과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질투는 우리를 희망이 없는 차가운 일상세계 속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여자의 질투는 남자의 욕망에 좌우된다.

남자의 욕망이 강하고 그 욕망이 자신에게만 집중된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의심이 생기더라도 질투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눈빛과 그의 품에 안길 때의 숨결, 성행위의 강도 등을 통해

남자의 욕망이 전보다 수그러들었다고 느끼면 질투가 머리를 쳐든다.

여자는 남자의 욕망이 언제나 한결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욕망이 줄어들었다고 느끼면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다른 여자가 우리 사이에 파고들었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한다.


연애의 경우, 궁극적인 목표는 한 사람의 인간이다.

우리는 그 상대를 통해서 자기가 바라는 모든 것을 찾으려 하고 자기 자신을 완성하려 한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연애는 두 사람이 그러한 상태에 있는 것을 서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 또한 과잉부담과 엔트로피의 상태에서 생성상태로 이행해야 한다.

대체로 생성의 과정은 한쪽에서 시작된 다음에 그것이 상대에게 전파되어

상대의 불안정한 균형상태를 바로 잡는다.

생성사애는 놀랄만큼 전파력이 강하다.

그 유혹력은 엄청나며 상대에게 뛰어들어가 이쪽으로 끌어당긴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게 된다."라고 단테도 말한 바 있다.


만일 어떤 여자가 모든 여자의 뜨거운 시선을 한몸에 모으는 남자를 독점
하려고 한다면, 그녀는 모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여자들을 매혹시키지만 그쪽으로만 한눈을 파는 남자를 선택하든다,

아니면 약속을 지키고 이쪽으로만 눈길을 주지만 다른 여자가 볼 때는 아무런 매력도 없는

남자를 선택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된다.

남자에게는 여자와 같은 유혹의 딜레마는 없다. 그 대신에 사랑과 성,

한 사람의 상대와 다수의 상대, 책임과 유희 사이의 긴장이 있다.
남자는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을 갈망하며 평안한 감정도 원한다.

그것이 없으면 불안감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에로틱한 욕망도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자신이 지닌 에로티시즘의 전부를 한 사람의 상대에게 퍼붓는 것이

언제나 지극히 어렵다.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여자와 깊은 연애관계에 있더라도 이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남자는 성과 사랑을 분리해 놓고 행동하며 그 결과 자주 막다른 상황에 몰린다.

여자의 에로티시즘은 결혼해서 부드럽고 따스하게 사랑받고 남편의 관심이

자기에게 집중된다고 느끼면 만족한다. 만족할 뿐 아니라 더욱 풍부해진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남자는 참을 수 없는 굴레로 느낀다.

아내의 부드러운 사랑과 따뜻한 배려가 자기에게 집중되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조건이 갖춰지면

마치 여자의 포로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에로티시즘은 질식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능이 되는 일조차 있다.

여자의 불감증을 유발하는 요인이 남자의 무관심과 횡포라면 남자의 불능의 원인은

여자의 과도한 관심이다.

남자는 새롭게 사랑에 빠지더라도 자기가 버린 상대가 언제까지라도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과거의 여자를 단념하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여자 쪽이다.
여자는 언제나 남자에게 말한다. '당신은 그 여자를 버릴 권리가 있어요.

아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함께 있으면 그 여자에게 더 큰 상처를 줄 뿐이에요.'
남자는 사랑의 문제에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면 언제나 애매하고 불분명한 태도를 보인다고

여자들은 불평한다.

이것은 정곡을 찌르는 불평이다. 여자는 예스인가 노인가 둘 중의 하나이지 중간이 없다.

남자가 그런 태도를 보이면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놈이라는 비난은 면할 길이 없다.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그렇게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여자의 에로티시즘은 힘있고 신뢰할 수 있고 품속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남자에게 쏠린다.

영웅은 내부와 외부의 적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감정을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남자이어야 한다.

'사랑해'라는 한마디보다는 포옹하고 흥분하는 모습, 한숨을 내쉬는 형태,

살갗의 열기, 전율 등이 중요한 것이다. 여자는 진짜를 좋아한다.

머리로 생각해서 말한 '사랑해'보다는 그렇게 말해야 할 때 몸으로 말한 '사랑해'가 훨씬

믿음직스러운 것이다. 말은 신뢰할 수 없는 방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자는 잘 알고 있다.
몸의 충동은 진짜이다. 말은 속임수를 쓸 수 있지만 몸은 그렇지 못하다.

느낀 그대로를 상대에게 전할 뿐이다.

특히 남자가 지쳐 있을 때와 슬픔에 젖어 있을 때는 금방 알 수 있다.

사랑은 지배임에 동시에 복종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에고이즘이면서 전면적인 헌신이기도 하다.

사랑은 존경이지만, 상대를 거부하면서 가만히 머물러 있지도 않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이 잦다. 그래서 모순된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상대를 깊게 사랑하면

 

할수록 결과적으로 공격하고자 하는 감정도 강해진다.

실제로 여자가 집요하게 남자에게 매달려 강렬한 섹스를 요구하면

남자는 두려움에 섹스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고 엉덩이를 빼고는 무능해져 버린다.

남자는 공격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스페인의 정신과 전문의 )의 '여자는 졸고있는 남자를 증오한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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