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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모르고 죽어간 후쿠시마 동물들

YOROKOBI 2014. 3. 3. 10:26

영문 모르고 죽어간 후쿠시마 동물들

김명남의 과학책 산책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하상련 옮김/ 책공장 더불어·1만1000원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책이 있다. 지구에서 모든 인간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사실적으로 펼쳐 보인 책이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따르면, 자연은 물을 첨병으로 하여 인간의 자취를 덮어버릴 것이다. 뉴욕의 지하는 이틀 만에 물바다가 되고, 원자력 발전소는 일주일 만에 고장 날 것이다. 갈라진 도로 틈에서 식물이 자라고, 건물은 3년 만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수십 년 뒤에는 파나마운하가 막혀 아메리카대륙이 다시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흔적은 오래간다. 플라스틱은 수천 년이 지나도 분해되지 않고, 방사성 물질의 영향은 수십만 년 지속될 것이다. 우리 일상을 구성하는 문명의 물질적 요소들은 한편으로는 허망하리만치 연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일회용’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상상으로는 헤아리지 못할 만큼 영구적이다.

 

그런데 그 책을 읽으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이 남긴 반려동물, 가축, 실험동물은 어떻게 될까? 책에서도 언급되기는 한다. 인간에게 의지하던 동물들은 야생동물들한테 금세 잡아먹힐 것이라고. 야생성을 되찾은 녀석들은 살겠지만, 그러지 못하면 사라질 것이다. 반려동물만 그런 것도 아니다. 가령 바퀴벌레처럼 따뜻하고 축축한 인공적 서식지에서 활개치던 동물들은 엄혹한 야생에서는 번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야 어쨌든 야생동물은 틀림없이 더 불어날 테고, 생태계의 균형은 맞춰질 것이다. 그런 상상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은 그 막연한 상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인간에게 버려진 동물들의 운명은 당연히, ‘그래서 그들은 야생으로 돌아갔습니다’라고 태평하게 요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몇 번씩 젖을 짜도록 개량된 젖소들은 어떻게 버틸까? 주먹만 한 크기로 개량된 강아지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2년 전 이맘때 벌어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로, 원전 반경 20㎞의 지역은 모든 거주자가 피난하고 출입이 통제되는 경계구역이 되었다. 난민 15만 명은 집과 기르던 동물을 두고 떠났다. 당장 동물을 걱정할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 각지의 자원봉사자들이 나섰다. 그들은 힘닿는 대로 먹이를 주었고, 가능한 경우엔 구조하여 새 거처를 찾아주었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은 그 활동에 참가했던 사진가의 기록이다.

김명남 과학책 번역가

 

먹이를 허겁지겁 받아먹으면서도 살던 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고양이들. 이제나저제나 가족이 돌아올까 하염없이 기다리는 개들. 축사에서 아사한 소들, 돼지들, 말들. 용케 축사를 나와 들판에서 풀을 뜯던 소도 배수로 같은 곳에 빠져 죽곤 한다. 사고 후 2개월부터는 정부의 가축 살처분이 진행되어 많은 동물이 안락사되었다. 지은이는 피폭을 무릅쓰면서 그 동물들을 찍었다. 겨우 몇십 마리를 구조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무력감도 들었지만, 인간의 실수로 영문 모르고 죽어간 동물들이 있었다는 것을 한 명이라도 더 기억해야 하므로 그는 그만둘 수 없었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이른바 ‘자연 실험’의 사례로 소개한 우리나라 비무장지대(DMZ)처럼, 후쿠시마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문명이 철수한 지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키우던 동물들이라는 것을 눈물겹게 보여준다.

덧붙여, 출판사 ‘책공장더불어’는 동물에 관한 책을 내는 곳이다. <야생동물병원 24시>, <임신하면 왜 개, 고양이를 버릴까?>는 인간과 동물의 접점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문제를 다룬 보기 드문 책들이었다.

김명남 과학책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