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YOROKOBI 2007. 5. 23. 17:47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이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교훈이다.

많은 사람들이 멀게는 민주화 20년, 가깝게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세상이 상당히 달라졌다고 말해왔다. 적잖은 지식인들이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됐으니 이제는 ‘내용적(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말할 때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견해에 상당 부분 동의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말할 때라는 뒷부분은 유효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됐다는 앞부분의 전제는 틀렸다.

세간의 화제는 김승연 회장이 권총을 들었는지, 김회장 일행이 회칼을 찼는지 같은 데 집중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규명하기도 어렵고, 사건의 본질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김회장측이 보복 폭행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무사할 거라고 여기게 만든 사회적 풍토다.

전세계 어디서나 법치국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사적 구제(법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가족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해도 살인범이나 살인범의 가족을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건 불법이다. 이 같은 사적 구제 행위가 허용된다면 세상에는 폭력과 살인과 약탈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가해자를 고소해서 법정에 세우는 것뿐이다.

김승연 회장은 이런 상식을 깼다. 맞고 온 아들을 앞세우고 집을 나설 때, 나중에 문제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아들, 그것도 명문 예일대학에 다니는 귀한 아들이 얻어맞았는데 법에 의지할 게 뭐냐 싶었을지 모른다. 내게는 스스로 아들을 보호할 ‘힘’도 있는데 말이다.

김회장의 판단은 일단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사건 발생 50일이 다 되도록 경찰은 수수방관했고, 이 사실을 접한 언론도 ‘모 대기업 회장’ 식으로 감싸는 데 바빴다. 재벌이 아니었다면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대우’다.

그런데 꼭 ‘튀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일부 언론이 사건의 뒤를 캐기 시작했고 결국 김승연이란 실명이 터져나왔다. 여론의 집중포화에 못 이긴 경찰도 뒤늦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절차적 민주주의’로 돌아가자. ‘보복 폭행’ 사건의 전개과정에 절차적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명제가 명제로 그치지 않을 때 실현된다. 그러나 김승연 회장은 50일간 법 위에 군림했다. 폭행당한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는 동안, 김회장은 해외출장을 다녔고 아들은 중국 답사를 떠났다. 경찰이 전면수사에 나선 뒤에도 김회장은 두차례나 출석 요구를 거부하다 체포영장설이 나오자 마지못해 출석했다.

‘보복 폭행’ 피해자들은 나중에 다시 보복당할까봐 김회장과의 대질신문을 꺼렸다고 한다. 경찰이 설득해 아주 짧은 대질신문만 이뤄졌다는 전언이다. 시간이 흘러 사건이 잊혀지면 소리소문 없이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그들의 피해의식을, 역시 소시민인 기자는 탓할 수가 없다. 정부가 세금은 꼬박꼬박 거둬가지만, 결정적 순간에 나를 보호해주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달라진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