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스크랩] 종교, 사이비, 유대인, 그리고 여성

YOROKOBI 2007. 6. 2. 21:30

 

 

  지난 화요일 방영된 엠비씨 피디 수첩의 'S' 교파 관련 취재는, 우리 사회에 신앙의 가면을 쓴 사이비 종교가 여전히 독버섯처럼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또 다른 사이비 종교인 'JMS'의 교주 정명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는 뉴스 보도 역시 잊혀져 가던 우리 사회 사이비 종교의 문제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한 때 천재로 불리며 전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안았던 축구 선수 박주영이 속한 교회의 교파가 정통 교리 집단으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았다는 소문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일도 있었다. 해마다 리그 상위권을 단골로 진입하며 우승을 밥먹듯이 하는 축구 팀 성남이 인기가 없는 단 하나의 이유도 모두가 알고 있듯이 종교 때문이다.

 

  종교 또는 신앙이 추구하는 것은 '절대 진리'이다. 종교가 없는 이들의 거부감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신앙일 수 있는 있고, 신이 신일 수 있는 이유는 '절대 진리'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기본적으로 '신과 섭리의 문제'에 있어 배타성과 독단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섭리의 절대성'이 종교적인 독단과 아집과 편견으로 변형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종교 집단이 비판받고 쇠락하고 있는 이유 역시 이러한 종교적 독단과 아집과 편견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적인 '절대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경전'이 세세한 부분까지 일러준다면 좋겠지만, 모든 종교 경전은 전달자인 인간의 한계와 모순을 그대로 보여줄 수 밖에 없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합의되지 못한 '절대 진리'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달리지게 되고, 그래서 논쟁과 분쟁이 발생하며, 결국 정통과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시비가 발생하는 것이다.

 

  정통과 이단에 대한 종교적 판단은 좀 더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일 수 있겠으나, '사이비(似以非, 비슷하지만 아닌 것)'에 대한 판단은 종교적, 사회적, 법적, 이성적 판단이 훨씬 더 용이한 영역의 문제이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사회적 인식을 갖춘 일반인의 시각에서 이해할 수 없는 교리와 정언명령을 강요하는 종교라면 그것은 사이비 종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된 몇몇 종교 집단이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일반인의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자명한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 정통과 이단, 사이비의 구별 기준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이비라고 말하는 종교 집단의 구설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인 '여성과의 염문, 추문'의 문제를 좀 더 의미있게 돌아보자는 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이다.

 

  정확한 통계를 종교계에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경험적인 통계에 의하면 최근 교회나 사찰에 소속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성인의 남녀비율은 1:2 가까이 되는 것 같다. ( 청소년의 종교 활동의 성비 차이는 성인에 비해서 크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기 특유의 절대자에 대한 호기심과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정도, 사춘기의 예민함은 남녀를 불문하기 때문이다. ) 어느 교회나 사찰을 가 보더라도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 상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우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소외받고 있으며 사회적 활동 기회가 적기 때문에, 종교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다는 의견이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은 여성에게 더 많기 때문에 구원와 기복에 대한 여성들의 수요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신(神)은 항상 남성으로 대변되기 때문에 전능하고 자애로운 남성성을 갈구하는 여성들의 잠재적인 신앙 욕구가 높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이성과 합리성보다는 감성과 섭리성에 주목하는 종교가 여성의 성향과 더 잘 맞아 떨어진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사회적, 집단적 활동이 많은 한국 남성들은 각 종교가 터부시하는 음주, 흡연, 윤락, 성매매 등의 참여 비율이 높다보니 종교적인 교리와 활동을 불편해 한다는 지표적 추측도 가능하다.

 

  그리고 위의 여러 가지 분석들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진다. 원인은 다양할 것이고 종교 참여가 높은 여성들의 경향에 대해서 비판할 여지도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건전하고 정상적인 종교들은 사회악이나 범죄를 부추기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며, 오히려 타인에 대한 사랑과 선의 실천과 봉사를 장려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유의미한 문제점과 폐단이 숨어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와 신앙'이라는 두 개의 바퀴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어서 마차가 부서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점점 더 남성화, 속세화 되어가는 반면, 신앙은 점점 더 여성화, 염세화 되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좀 더 단순화 해서 말하자면, 종교에 기생하여 권력과 부와 배경을 축적하는 당사자는 남성들이고 이러한 권력과 부와 배경을 제공하는 당사자는 신앙을 가진 여성들이라는 말이다. 물론 전적으로 그렇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러한 성향이 강하고 점점 심각해 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말해서,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종교 집단의 부패와 세속화와 권력화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많은 기여자가 바로 여성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교회에는 나가지 않고 있다. 나와 알고 지내는 여러 여성 친구들이 나를 교회로 이끌려고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거의 모든 대한민국 교회는 이익집단화 되었고, 교단의 부패와 부정과 속세화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종교를 밥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종교지도자가 대부분인 현 상황에서는 교회를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없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가 똑같다. '그건 인간의 잘못이지, 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목사님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을 보면 교회를 다닐 수가 없다.' 어느 견해가 옳은 것인가? 나는 여성들의(또 일부 남성들의) 이러한 성향이 바로 종교 집단의 타락과 부패를 방조내지 종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착한 남자가 폭력 조직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폭력을 싫어하고 남의 돈을 갈취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여기어 그러한 조직의 행동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외면하였다. 그렇다면 그 남자에게는 죄가 없는 것인가? 아니다 그 남자도 범죄자이다. 왜냐하면 범죄 집단에 가입하였고, 가입함으로써 그 집단의 세를 불려주었기 때문이다. 또 물질적 정신적으로 그 범죄 집단에 자기도 모르게 기여를 하였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다. 여성들이 종교 집단 내에서 종교가 아니라 신앙에만 천착하는 성향은 결과적으로 종교의 부패와 타락과 독선을 종용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들의 헌금과 기여와 봉사가 종교 집단 내의 암세포를 증식시키는 자양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들의 무관심한(?) 맹종과 침묵이 종교인들의 악행과 오만과 타락의 가장 큰 배경이 되고 있음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려면 건전한 소비자들이 단합하여 거품이 빠질 때까지 구매를 미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적인 단결이 현재 부동산 거품을 실제로 붕괴시키고 있다. 마찬가지이다. 종교의 거품과 부패가 없어지려면 종교를 통해 이득을 구하고 권력을 구하는 자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종교 집단에 현혹되거나 참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논리는 대한민국 교회의 논리일 뿐이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종교적 책임이 대한민국의 여성에게 더 무겁게 요구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나를 포함한 많은 신앙을 가진 남성들은 이러한 종교 집단의 부패상을 자각하였고, 그래서 부패한 종교 집단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기여를 중지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 집단 내에서 남성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더 내세 지향적이다. 남성들이 신앙과 인생의 본질에 대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남성들이 점차 종교 활동을 기피하는 것은 종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좀 더 각성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덧붙여, 이러한 종교적 현상이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도를 더해 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증오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2차 대전 당시 나찌의 유대인에 대한 증오 확대와 차별과 학살은 연합군에 속해 있던 여타 유럽 국가들의 심적인 동조를 얻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이 유대인들의 옷에 육각성을 박음질 할 때도 여타 유럽 국가들은 바라보고만 있었다. 유럽인들의 유대인에 대한 반감과 증오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독일과 다른 나라들이 적이 된 것은 유대인 때문이 아니라 독일의 유럽 지배 야욕 때문이었을 뿐이다. 왜 유럽인들은 유대인을 증오하였는가? 유대인들은 유럽 각국에 얹혀 살면서도 자신들은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을 고수하였다. 자신들이 속한 터전과 동화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였다.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였으면서도,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핍박받고 차별받는다는 피해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럽 사회의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인 기여와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였다. 다른 민족에 대한 배려와 크리스트교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유럽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의 뿌리가 유대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 유대인을 종교적 장자(長子)로 선택하였다는 구약의 정언명제로 인해 기독교 사회 유럽은 유대인을 미워하면서도 쫓아내거나 죽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2천 동안의 이러한 잠재적인 증오에 대해 나찌는 그저 불을 붙였을 뿐이었다.

 

  물론 유럽인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과 미움이 전적으로 옳은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유럽인들이 유대인들을 환대하고 포용하였다면 유대인들의 사회적 참여도 높았을 것이다. 피디 수첩에 방영된 'S' 교파의 여성 유인 전략도 바로 칭찬이었다고 한다. '너는 소중한 존재이고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라는 칭찬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 종교에 빠지게 되었다. 남성 중심의 우리 사회가 여성성에 대해 존중을 보이고 가치를 인정했다면 여성들이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무책임하고 무관심해지지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쨌든 결과이다. 그러니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는 그 누구도 공개석상에서 유대인을 비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여전히 홀로코스트만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팔레스타인 말살에 대해서는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성의 지위도 높아지고 있고 여성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제고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대한민국 여성들은 과거의 차별과 피해만을 말한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이제 생각 뿐만 아니라 행동에서 변화를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여성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여자 주제에...'라는 말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한민국 여성들의 행태에 대해 얼굴을 찌푸리게 될 때가 많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내가 남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여성들의 잘못에 대해 던지는 불편한 시선은 남성성을 들먹이고 체면을 들먹이는 남성들을 싫어하는 시각과 똑같은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왜 많은 대한민국 남성들에게서 증오의 시선을 느껴야만 하는가? 유럽 사회의 유대인을 반추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종교 집단에 여성들만 남겨지는 이유( 물론 종교인은 그 반대이다. )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이비 종교의 뒤에 항상 여자 문제가 있는 이유에서 해법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보다 더 많이 '사회적 책임'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 나의 현실, 나의 신앙, 나의 행복, 나의 부유함에 대한 시선을 우리의 현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행복, 우리의 부유함으로 넓혀야 한다. 여성만이 차별받았으며 차별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버려야 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여성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성들 역시 피해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여성 중심의 사회가 된다고 해서 여성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여성이 '나'라는 껍데기를 깨고 '너', '우리', '책임'에 대해 진지해 질 때 대한민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증오와 반감은 사라질 수 있다.

출처 : 종교, 사이비, 유대인, 그리고 여성
글쓴이 : 누구세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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