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여행, 문화는 그 나라를 들여다보게 하는 창의 역할을 한다.

YOROKOBI 2007. 6. 9. 22:52

일본속 한류의 중심지는 신오오쿠보?

도쿄에서 코리아타운 하면 신오오쿠보. 가난한 유학생들이 모여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는 곳. 이곳은 한류가 뜬 이후로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한국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문화적 공간으로 변모했다. 일본에서 한류가 거세다고 한다.
어라 이미 지난 이야기? 하긴 2007년 현재 2006년도에 비해서 일본에 수출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격감했다고 한다. 일본 속 한류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필자가 일본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면 의례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국에서 한류가 대단하고 떠드는데 그게 사실이에요?’
사실 유행에 대한 진단, 체감 온도는 사람마다 달라서 딱히 뭐라고 꼬집어서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그럴때면 한류가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라고 애매하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왜냐?
사실 90년대까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갖는 관심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심한 말로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일교포입장에서 보기에 겨울연가 이후 몰아친 한국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아주머니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한국배우를 환호하고 한국어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일본 근대화 140년 역사 이래에 없던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본사회에서 늘 이질적인 문화로 손가락질 받던 재일교포들이 보기에 한류는 하나의 사건이기도 했다. 겨울연가가 불을 지핀 후 사람들이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류라는 말이 언론과 방송을 많이 타게 되고 그것이 다시 회자되는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이다.
허나 한편으로 일본 내 한류 라는게 한국이 일본 대중 문화개방 이전부터 일본 소설, 일본 영화, 애니메이션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일류 vs 한류

한류를 떠들기 전에 일류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보자. 한류처럼 떠들석하게 일류를 소개하지 않아도 일본은 이미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코드다. 일제시대, 망언, 신사참배, 혼네와 다테마에, 섬나라, 지진 등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를 비집고 만화, 사케, 애니메이션, 일본 드라마 등이 일본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 소설이 문학부분 주요 베스트로 자리잡았고, 일본만화는 한국에서 만화 문법의 주요 참고서가 된지 오래다. 세계 제3의 제작량을 자랑한다는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따져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하청기지로서 작동하는 경우도 많다. 굳이 한일 무역역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본에 의존하는 부품산업은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일본차까지 관세없이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에서 일본을 만나는 것은 훨씬 흔한 일이 된다.
먹는 것을 보더라도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돈까스, 고로케, 카레, 오뎅, 우동, 인스턴트 라면 등 일본 것에 익숙하다.(카레, 돈까스 자체는 원산지가 다르지만 대중화 된 것은 일본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고 나서부터다). 일본 내 한국음식 열풍을 굳이 한류가 부를 필요가 없다면 한국 내 일본음식도 일류라 부를 필요는 없다.
요즘에는 ‘居酒屋’-이자카야 란 간판을 내걸로 일본 술을 파는 술집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居酒屋란 서민들이 찾는 ‘대중적인 술집’을 의미하는데, 이곳에서는 일본식 오뎅이나 회 및 다양한 안주를 즐길 수 있다. 강남만 나가도 일본은 넘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도쿄 유락쵸 고가 밑 이자카야. 강남에만 나가도 일본이 넘친다.

한국에 대해서 일본이 진짜 관심은 있나?

다시 한류로 이야기 바톤을 넘겨보자. 필자가 다녔던 회사의 20대 젊은이들은 사실 한국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잘 모른다. 근래에 많은 한국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했지만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소니가 삼성과 제휴했다는 것이 주요 뉴스로 떴지만 여전히 일본내에서는 한국상품은 미끼상품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월드컵을 계기로 의욕적으로 일본내에서 영업을 펼치는 현대자동차는 아직도 판매대수가 바닥을 기고 있다. 일류와 비교해보면 일본 내 한류는 미약한 셈이다.
대중문화에 시선을 국한 시켜보면 배용준이나 송승헌 등 몇몇 스타의 인기만 남아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류는 정말로 사라진 것일까. 한류를 단순히 문화수출, 실적 이런 것만을 따진다면 이미 상당히 식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류가 아직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근거로는 겨울연가 이후 불어 닥친 한국어 배우기 열풍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의 일본인 지인이 운영하는 한국어 교실에는 지금도 꾸준히 수강생이 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도 규모상으로는 줄었지만 여전히 한국은 매력적인 관광지이다. 무엇보다 단순한 수치를 넘어서 일본 사회에서는 한국을 인식하고 한국을 알려고 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류가 단순히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등 엔터테인먼트만 의미하지 않는다면 일본 내 한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일본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쇼핑몰에는 한국음식이 꾸준히 들어서고 있고, 일본 음식에 김치가 들어가는 메뉴도 이제는 흔해지기 시작했다. 관광객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일본 전철에는 한국어 안내판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 영화만을 따로 모아서 한류페스티벌을 꾸미고, 시민운동 단체 차원에서 한국과 연대하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동네 한국 음식점 '안뇽' 비빔밥이 최고 인기다.

꼭 한류가 화려한 그 무엇만 따진다면 나는 그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고 싶다. 한류는 몇몇 드라마 작가가 써제끼는 대책없는 환상곡이 아니라, 일본 생활속에 스며드는 하나의 공기여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겨울연가가 일본 중년 아주머니들에게 깊숙히 각인된 이유도 그들이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근원적인 정서이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유명한 배우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한국문화가 뿜어내는 어떤 정서, 빛깔에 매료되는 경우도 많다. 그 어감을 직접 느끼고 싶어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경우도 많다. 한류는 일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 내에서 제작되는 작품 수준이 높아지고 한국사람들이 느끼는 철학을 담으면서 일본인들도 국적과 관계없이 향유할 수 있는 작품이 다양하게 생산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일류’라고 불리우는 것들을 따지고 보면 본질적으로 일본 것이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소설 혹은 만화, 애니메이션이 보기에 재미가 있기 때문에 즐기는 것이고, 여러 음식중에서 돈까스나 라면등이 우리 입맛에 맞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문화 상품이 단순히 일본인들의 호주머니만을 노리고 들어 간다면 백전백패이다. 일본인들도 국적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로서 일본내에서 유통된다면 그것은 어느 것이라도 통하기 마련이다. 현대차가 일본에서 맥을 못추는 이유도 그것이다. 다양한 스타일과 기능을 갖춘 일본차에 아직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문화를 어렵게 보지 말자. 문화는 누가 강요한다고 일방적으로 이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내 한류는 신기루처럼 갑자기 생겼다가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언론이 하도 떠들어서 그렇지, 필자가 일본에 건너가던 2000년에도 한국음식에 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었고, IT가 한창 뜰 때 일본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겨울연가는 그것에 기폭제를 놓은 것 뿐이다.
아직은 더 씨앗을 뿌릴 때이다.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일본인들이 즐길 수 있도록 더 많은 한국 문화상품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 일본과 자매교류를 하는 곳이 있다면 더 많은 교류를 통해 한국에 대해서 알리는 것, 익숙하게 하는 것. 굳이 국적과 상관없이 어느 누구가 봐도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생산해낼 때만이 한류는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일 것이다.
혹시 한류가 일본에서 더 이상 일본에서 안 팔리는 때가 오면 어떻게 하냐구? 뭐가 걱정이야. 일본 젊은이들이 한류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한국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그 무언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한류는 이제 어쩌면 한국인의 몫이 아니라 일본인의 몫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즐기면서 재미난 작품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한류 페스티벌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