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기독교가 위선적이라구요?

YOROKOBI 2007. 7. 20. 07:55

     어떤 기독교단조직들이나 기독교인은 위선적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위선은 두드러지죠. 허나 개독교, 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기독교를 폄훼하는 사람들의 가슴 깊이 쌓인 원한과 원망과 미움은 더 큰 문제랄 수 있겠습니다. 미움은 그 대상이 미운짓을 했다손 치더라도 미움을 갖게 되는 자신을 후퇴하게 만들고 편견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다보게 만들 뿐입니다. 기독교의 위선과 함께 그 대상을 바라다보는 시선과 관찰자인 안티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다른 것들에서보다 기독교 안티가 활개를 치고 다니고 그들의 언어 사용 수준이 무례에 가깝고 그들의 마음가짐 조차, 논리적이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발전적인 태도를 지니기 보다는 그저 그 대상을 처참하게 물어 뜯을 뿐인 한심한 수준임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보다 오픈 마인드로 기독교 이해에로의 접근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문제 삼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종교 선택의 자유를 운운하며 왜 나의 자유를 침해해서 종교를 강요하는가, 에 관한 것 같습니다. 물론 종교 선택의 자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개인이 누려야 하고 또 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의 전도활동이 종교 강요로 비추어지는 것은 많은 곳에서 활동이 벌어지고 있고 또 나름 상대가 원하지 않는 의사를 내비추이는데도 계속해서 전도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한가지 생각할 점이 있는데 그들은 왜 종교의 자유를 누려야 하는 개개인들을 귀찮게 구는가, 에 관한 것이지요.

   걔중에는 기독교 전도를 말그대로, 기계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한영혼에 대한 예수의 사랑같은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그저 해야할 일, 로 생각해서 한다는 말입니다. 전도 활동은 상대방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주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지 않은 전도 활동은 욕을 먹을 수 밖에요.

     기독교 전도 활동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천국과 지옥이 한 개인의 종말 이후에 기다리고 있고 기독교인들은 사람들이 좋은 곳에 가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교회의 사람 채우기식 때문이라면 문제있는 전도활동이겠죠. 사실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고,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서 서로의 대화는 불가능하게 될 뿐입니다.

       사실 기독교가 유난히 세상의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은 그 세력이 상당히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기독교 자체가 추구하는 바가 세상과 비교해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 건전한 삶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는 기독교적 삶의 원리에 비추어 실제 기독교인들의 도덕적, 영적 수준이 처참하리만치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저모양이다, 라고 욕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기독교적 잣대로 세상은 기독교인들을 판단합니다. 그 수준에도 못 이르면서 기독교인이냐, 라는 식으로 욕을 하는 것이지요. 실은 기독교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바 없고 단지 노력하면서 더욱 선하게 가르침 대로 살려고 하는 것일 뿐이지요.

       흔히 안티들의 시각 가운데 오류인 것은 유난히 기독교의 부패상을 드러내 과장한다는 것입니다. 위선요? 부패요? 그것은 모든 인간들이 지닌 근본적인 것들입니다. 한 개인에서부터, 정부조직, 회사, 단체, 어디 부패하지 않는 곳이 있는지요? 사람들이 다 위선적이지 않습니까? 겸허한 인간 존재의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가운데 어느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위선적이고, 부패하여 그 조직을 탓하는 것은 일종의 오류입니다. 참 기독교의 진리는 기독인들이 저지르는 부패와 위선들로 인해 망가지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욱 힘을 발휘할 뿐입니다. 한 개인으로서의 기독인이 예수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도 인간이고 많은 실수와 부패, 위선을 행합니다. 비단 기독교 단체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인류가 위선적이고 부패하죠.

      사람들이 기독교의 핵심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것도 이렇게 표면상으로 드러난 기독인과 기독단체들의 부패상과 위선들 때문에 기독교 자체를 그렇게 보게 되는 데에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기독교의 진리와 핵심은 기독인들의 실수와 위선, 부패와는 별개의 것일 뿐이데 사람들은 이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핵심에 이르는 길을 아예 가려고도 하지 않고 수많은 편견들로만 대상을 폄훼할 뿐이죠. 

    여기서 대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좀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대상에 접근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갖가지 원천적 오류 가능성을 근거로 내세워 그 허구성을 입증하려는 자들도 단지 하나 기독교의 진리와 핵심에는 범접하지 못합니다. 진실은 아직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 신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죠,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드러냅니다 - 둘간의 공방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양자간의 열린 마음의 이해와 접근이 필요한데 서로가 그렇지 못한 현실을 더욱 공고히 해나갈 뿐입니다. 신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 인간존재의 어리석음 때문에 스스로 진리의 핵심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걸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원리야 말로 위대합니다. 그것은 그 바라다보는 주체의 마음가짐이나 여러가지 상태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죠. 당신은 지독한 안티입니까? 눈감고 한번 신을 간구해보십시요. 그 시도는 가벼운 것이어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지속적인 갈구만이 신의 존재감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지요. 아무리 미운 사람이더라도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한순간에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모든 길이 자신에게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항상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자신의 밖에 있습니다. 위선적이고 부패와 실수투성이인 스스로에게로 그 시선을 돌려보십시요. 세상이 아닌 자신의 위선과 부패, 자신의 이기성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순간 수많은 타자와 세상의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