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스크랩] 어떻게 참 목자를 분별 할 것인가?

YOROKOBI 2007. 7. 25. 15:14
수년전의 설교원고지만 한편 올립니다
[♣ 유창윤의 바이블담론 /예향 게시판에서 펌]


본문: 마태복음 7:15-23
제목: 어떻게 참 목자를 분별 할 것인가


성경에 있는 것을 감추거나 부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설교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그래서 설교 듣는 대상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설교는 하는 자나 듣는 자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반드시 목사에 의해서 행해지고 성도들은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도 간증하고 설교할 수 있으며, 목사도 그것을 듣고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풍토가 조성되야 합니다. 설교를 하고 듣는 대상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저는 설교를 할 때,



▲ 첫째로, 제 자신에게 설교합니다. 목사는 남을 향하여 설교만 할 뿐 설교를 들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기회도 없습니다. 목사는 남을 가르치는 일은 즐겨 하면서도 정녕 남의 가르침을 받거나 충고를 수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장 위험하고 불행한 위치에 처해 있는 자들이 설교하는 목사들입니다.



저는 설교준비를 하는 중에나 설교를 할 때마다 자신의 설교를 귀담아 듣습니다. 설교자가 먼저 잘못을 뉘우치면 성도들도 잘못을 뉘우치게 될 것이고, 설교자가 먼저 은혜를 받으면 성도들도 은혜를 받게 됩니다. 설교준비 하면서 스스로 기쁨과 힘을 얻기도 하고, 설교를 하면서 잘못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 둘째로, 목자들에게 설교합니다. 설교하는 장소에 목자나 지도자들이 없을지라도 그래도 그들을 향해서 설교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도 목자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이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들이 눈을 뜨고 목자의 언행과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목자의 신앙관이 올바르면 성도들의 신앙관도 올바르고, 목자의 신앙이 거짓되고 위선적이면 성도들의 신앙도 병들기 마련입니다. 먼저 목자가 살아야 양이 삽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를 가든지 그 교회의 목자에게 설교를 합니다.



▲ 셋째로, 교회 성도들에게 설교합니다. 수 십년간 교회에 출석하여 봉사하고 충성했지만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 한국교회 교인들은 95%이상이 거듭나지 못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목자의 가르침대로 성실하게 따랐는데 왜 영혼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목자의 설교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습니까? 이 대답을 종합하면 문제의 해답이 나옵니다. 우리 목사님의 목표는 성전건축입니다. 우리 목사님의 목표는 교인 머리숫자 채우기입니다. 우리 목사님의 목표는 물질적인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의 목표는 방언하고 병고치고 능력받는 일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거듭나지 못하는데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설교의 초점과 목표가 썩어져 갈 세상 것들 뿐입니다. 이런 설교만 듣고 사는 그들의 영혼이 어떻게 거듭날 수가 있겠습니까? 유교사상을 강의하던 도올선생의 기독교에 대한 비평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모여라, 돈 내라, 교회 짓자” 일색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목자들은 교회만 나가면 이미 영혼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잘 훈련된 의사들은 환자의 증세를 정확히 판단하고 치료합니다. 올바른 목자는 양들의 영적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성심껏 치유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 그러나 돌팔이 목자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일에 열정을 쏟으면서 그것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강조하고 외칩니다. 거듭나지 않는 자는 결국 물질적인 욕구가 영의 눈을 가리워 눈이 멀게 됩니다.



양들은 자신의 구원문제를 확인도 하지 아니하고 무조건 교회의 전통과 목자의 요구에 맹종합니다. 진정으로 슬퍼하고 몸부림쳐야 할 내 영혼의 문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이 세상에서 축복받는다는 목자의 거짓된 설교에 속아 정신없이 따라갑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바늘과 실의 관계입니다. 실은 바늘만 따라가듯이 양들은 어쩔 수 없이 목자의 가르침을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채스는 첫수가 중요하고, 신앙은 첫걸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양들은 처음에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구원과 멸망의 길이 선택됩니다. 예수님은 경고하십니다 (마 15:14):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양들이 소경이기 때문에 목자가 소경인지 아닌지 판단할 길이 없습니다. 양들은 그저 목자가 구원으로 인도해 주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이렇게 목자에게 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심판을 받는다면 목자의 책임이라고 하나님께 항변할 것입니다.



물론 양들을 잘못 인도한 목자는 화를 면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위선자들을 신랄하게 책망합니다 (마 23:15-16):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 화 있을진저 소경 된 인도자여.”



목자만 믿고 따라온 양을 지옥으로 인도한 목자는 더 큰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정말로 목자는 함부로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권고합니다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그러나 모든 책임이 목자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소경된 양들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성경을 통하여 양들이 참 목자와 거짓 목자를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경 목자를 만난 소경 양도 형벌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양들이 참 목자를 구별 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 7:15-16):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양들은 목자의 열매를 보고 그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자의 열매란 무엇입니까? 종교적인 인간들은 교단이나 건물크기나 교인수가 얼마인가를 봅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 내며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봅니다. 그가 얼마나 성도들을 즐겁게 해주고 설교시간에 잘 웃겨 주는가를 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나 거짓 목자들이 즐기는 요소들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교회의 건물 크기나 교인숫자나 병고치는 능력이 목자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 지적하셨듯이, 참 목자든 삯군목자든 한결같이 양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 목자임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속 모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속 모양을 볼 수 있습니까? 새끼를 낳을 때 보면 정확히 판별할 수 있습니다. 개는 개새끼를 낳고 이리는 이리새끼를 낳습니다. 염소는 염소새끼를 낳고 양은 양새끼를 낳습니다. 개가 이리새끼를 낳을 수 없고 양이 염소새끼를 낳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목자의 구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자의 속모양을 보면 압니다. 그렇다면 속 모양이 무엇입니까? 바로 영혼입니다. 영혼이 구원받은 목자는 영혼이 구원받는 양들을 낳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 목자는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 양을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들은 구원받은 기쁨과 확신이 없습니다. 유창한 기도와 천사 같은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통달하는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영적인 감각에 죽어 있는 이들은 이리의 옷을 입은 양들의 모습입니다.



목자가 영혼구원의 맛을 알지 못하면 결코 영혼구원을 주장하거나 강조하지 못합니다. 참 목자를 구별하는 일은 양들 자신의 몫입니다. 우리는 소경목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소경이란 육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눈먼 장님이 아닙니다.



목자가 소경이라는 것은 영원한 지옥과 천국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목자들이 영의 눈이 떠서 내세를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다면 어떻게 이생의 정욕과 축복을 구하며 부를 축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양들이 자신의 영혼을 안심하고 맡기려면 먼저 목자가 소경인지 천국의 비밀을 깨달은자인지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롬 2:17-19에서, 듣기 좋은 말로 도덕이나 윤리를 말하고 가르치는 자는 소경된 목자요 그 길로 인도하는 자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도덕이나 윤리는 불교나 유교에서 더 잘 가르칩니다.



거짓 목자들도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기 때문에 마치 참 목자처럼 행세합니다. 이리가 양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겉 모습으로는 구별할 수 없습니다. 양들이 거짓목자를 만나면 죽음으로 가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양들은 참 목자를 구별하는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 교인들이 사회 곳곳에서 부정부패를 일삼고 비리를 저지르는 이유는 한국교회의 목자들이 거듭나지 못한 삯군들이기 때문입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수확할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습니다.

양은 양을 낳고 이리는 이리를 낳습니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도 새끼는 이리를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영혼 구원받은 목자는 영혼 구원받은 양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양들의 구원받은 상태를 통하여 목자의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목자가 능력과 권능으로 거대한 성전을 건축하고 수많은 교인들을 모았다고 해서 참 목자는 아닌 것입니다. 그 곳에 속해있는 양들을 보고 어떤 목자인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고난의 도나 영혼구원보다 세상의 축복을 추구하고 강조하는 자는 거짓 목자이므로 경계해야 합니다.



영적세계를 보지 못하거나 강조하지 않는 목자는 양의 탈을 쓴 이리요 삯군 목자입니다. 목사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돈 벌려고 목사된 사람도 있습니까? 뭐라고요? 정신차리고 동서남북 사방팔방을 둘러 보세요. 오늘날 천지가 그런 위선자들로 북적거리고 있습니다.



▲육체를 치료하는 의사도 10여년의 고된 훈련과정을 거쳐 만들어 지는데, 하물며 보이지 않는 영혼을 치료하는 목자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적어도 목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은 일정시간동안 신앙의 세포로 성장하고 다둠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변질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신앙의 체험도 없는 자들이 목사안수를 받아, 십일조를 강요하고 수십가지의 헌금종류를 만들어, 목사에게 축복과 저주권이 있다고 성도들을 협박하면서 세속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경영합니다.



이들이 바로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이리들이요 삯군 목자들입니다. 교회는 돈을 벌고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경영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교회는 찢겨진 심령을 치료하는 병원이요 죽어져 가는 영혼을 살려내는 노아의 방주입니다.



아기새가 어미 입만 쳐다보고 있듯이 양들은 목자의 입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영적인 말씀을 공급하는 데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해야 합니다. 양들은 죽음으로 가고 있는데도 육신적이요 윤리적이요 축복받으라는 설교만을 일삼아 더 빠른 속도로 양들을 죽음으로 유인합니다. 목자가 영혼보다 세상에 관심을 둘 때에 양들은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 십일조를 강조하고 축복기도를 즐기는 목자를 경계하십시오. 성전건축이나 교인늘리기에 목숨거는 목자를 경계하십시오. 명예를 즐기고 권위적인 목자를 경계하십시오. 신유와 기적과 능력을 강조하는 목자를 경계하십시오. 양들에게서 구원의 확신을 찾아 볼 수 없을 때 그들을 맡고 있는 목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잘 웃겨 주는 목사, 잘 팔리는 복음, 잘 나가는 교회, 잘 올라가는 예배당-----그러나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들리십니까? :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러므로, 양들은 참 목자를 만나야 하고 그 목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들의 영혼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하는 문제는 목자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어떻게 참 목자를 분별 할 것인가?
글쓴이 : 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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