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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걸레 들고 자신과 세상을 닦으세요" - 故 채희동 목사님을 회고하며

YOROKOBI 2007. 7. 27. 21:21

"걸레 들고 자신과 세상을 닦으세요"

 


△ 생전의 채희동 목사, <공동선> 제공

하느님 품으로 간 채희동 목사의 '걸레질수행'

"우리가 사랑하는 벗들과 매일 나누는 인사 한 마디는 곧 우리의 기도가 되고, 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 되며, 이웃과 내가 소통하는 영적인 인사가 됩니다. 그래서 인사 한마디는 우리의 기도이며 벗들과 나누는 영적 교감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 만나는 가족에게 "진영님(부인), 밝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 "이웃님, 맑습니다," 헤어지는 벗들이나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에게 "고요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 하루가 밝아지고, 지친 이들의 마음 그늘이 걷히고, 고요와 평온 속에 만남과 하루를 고요히 정리해줄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이 인사는 중세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세상 만물에게 하던 인사였. 수도사들은 아침마다 동료는 물론 이슬 머금은 풀을 만나도 "풀님 밝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낮에 참나무 꼭대기에서 노래하는 새를 만나면 "새님, 맑습니다"라고, 그리고 밤이 이윽해 달님이 떠오르면 "달님 고요합니다"라고 인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전하면서 "모든 존재에게 발고 맑고 고요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맑고 고요한 영혼을 지닌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홍성의 대안학교 풀무고등학교 학생들은 매일 만나는 벗들과 "밝습니다" "맑습니다" "고요합니다"라고 인사하더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9월 펴낸 <걸레질 하시는 예수님>(기독교서회)에서 이런 맑고 밝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상의 걸레가 되기를 간구하는 신앙고백도 담았다. "방구석에 던져진 걸레는 그저 썩어가지만, 나의 두 손으로 닦는 걸레는 세상을 빛나게 합니다. 십자가는 걸레여야 하고, 성도는 그 걸레를 들고 자신의 삶과 세상을 닦는 자여야 합니다."

 

그는 평소 하루에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묵상하도록 권면했다. 공자 맹자의 어려운 말씀도 좋지만 물, 그릇, 책상, 지갑, 돌, 돈, 컴퓨터 등 생활 속의 친근한 것들과 대화도 하고, 그것을 주제로 깊이 묵상해보라는 것이었다. 임신한 아내를 대신해 가사를 도맡다시피할 때 그의 묵상 주제는 걸레였다. 십자가는 걸레여야 한다는 것은 이런 묵상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 부인, 아들과 함께 깡통막사인 벧엘교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생전의 채희동 목사, <뉴스앤조이> 제공

나의 두손으로 닦는 걸레가
세상 빛나게 하듯
십자가는 걸레일 수 있어야


"걸레는 자신의 몸으로 더럽고 먼지 낀 곳을 닦고 닦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이 세상에 걸레가 없다면 세상은 온통 시궁창이 되어버려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걸레는 누군가의 돈으로 들고 닦아야 걸레입니다. 홀로 걸레일 수는 없습니다.…십자가 역시 누군가 짊어져야 십자가이지 짊어지지 않는 십자가는 그저 나무토막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셨기에 우리의 주님이 된 것처럼, 십자가는 신학과 교리와 교회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 바로 그 속에 있어 우리가 언제든지 손에 쥐고 닦아야 하는 걸레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가난한 마음을 영성의 바탕으로 삼았던 것은 이와 맥이 닿아 있다.

 

"자신을 비우고 종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신을 위해서는 어느 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가난한 마음은 그분의 삶 속에 그대로 드러나서 세상을 청빈하고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기독교의 영성은 부자의 영성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영성, 가난으로부터 나오는 영성입니다. 자신의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맞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 나누는 인사 한마디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영적 교감이 됩니다"

그런 그에게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삶은 신앙적 충격이었다. 그가 방문했을 때 권 선생은 쓰러져가는 흙벽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 네 명이 들어가면 무릎이 서로 닿는 조그만 방에서 ‘걸레’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와 둘이 살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곳이 어떤 암자나 수도원보다도 거룩하고 순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토록 가난과 청빈의 삶을 살 수 있다니, <몽실언니> <강아지 똥> 등의 동화들은 모두 선생이 택한 가난의 영성을 통해 나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가난한 마음을 잃어버린 오늘의 교회에 대한 반성은 준열했다.

 

"부유한 교회, 배부를 교회는 더 배부르고 거대해질 꿈을 꾸기에 나눔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가지고 있는 것들로 말미암아 근심이 생기고 불안해져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교회는 가난을 선택하므로써만이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웃님, 맑습니다"
"풀님, 밝습니다"
인사 건네던 젊은 목회자
"희동님, 고요합니다"


촉망받던 그는 결국 고향인 충남 온양 석정마을로 내려가 목회를 시작했다. 거기서 교회와 교권과 교리에 갇혀 슬퍼하는 예수를, 사람과 자연과 하나님을 '한 생명'으로 이끄는 주님의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일을 하려 했다. 이는 그가 감리교신학대와 연세대 신학대학원에서 배운 죽재 서남동 선생의 생태학적 신학과 민중신학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생명·영성 잡지 <하나님·사람·자연이 숨쉬는 샘>을 발행했고, <민중·성령·생명·죽재 서남동의 생애와 사상>과 <꽃망울이 터지니 하늘이 열리네> 등의 책을 펴냈다. 그는 3일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마지막 글에서 1996년 38살에 세상을 떠난 최경철 목사를 회고하며, 온전히 겨울나무 같아지기를 꿈꿨다.

 

"봄이 소망의 계절이요, 여름이 축복의 계절이요, 가을이 감사의 계절이라면, 겨울은 겨울나무처럼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자유하는 계절이다.…겨울나무의 '겉몸'은 상처투성이이지만 겨울 나무 '속몸'에는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사랑이 있다.…그렇게 알몸으로 산 젊은 목회자가 있었으니, 한 사람뿐인 신도를 위해 그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겨울나무같이 자유한 사람을 꿈꾸고,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자유롭기를 꿈꿨던 그는 지난 13일 세상의 짐을 풀고 하나님 품으로 떠났다. 중앙선을 넘어온 유조차가 그의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채희동 목사, 올해로 41살이다. 예수보다는 긴 삶이었지만, 그에게 건 기대를 생각하면 너무도 짧았다.

 

기자는 그의 책을 받고 이제나 저제나 그와 만날 수 있기를 고대했다. 게으른 몸이 따라주질 않아, 격월간 <공동선>에 실린 그의 육성을 읽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제 그가 즐겨하던 인사로 마지막 영적 교감을 나눠야 할 때인 것 같다. "희동님, 고요합니다."

 

차마 "밝습니다. 맑습니다"라고 인사하지는 못하겠다.

 

 

곽병찬 기자 chankb@hani.co.kr

출처 : "걸레 들고 자신과 세상을 닦으세요" - 故 채희동 목사님을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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