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

몰려든 관객들 "<화려한 휴가> 합천서 또 보자"

YOROKOBI 2007. 8. 23. 23:58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 23일 저녁 합천 새천년생명의숲 야외공연장에서 이루어진 <화려한 휴가> 야외상영에 주최측 추산으로 4000여명이 몰려 들었다.
ⓒ2007 오마이뉴스 윤성효


▲ 경남대책위가 '새천년생명의숲'이란 안내간판을 설치하자 전사모가 철거하려 해 마찰을 빚기도 했다.
ⓒ2007 오마이뉴스 윤성효


합천군청이 불허하고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가 막으려 했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는 전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옛 새천년생명의숲)에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

이날 영화 상영을 마련한 '전두환(일해)공원 반대 경남대책위'와 '새천년생명의숲 지키기 합천군민운동본부'는 4000여명(경찰측 1500여명)이 관람했다고 밝혔다. 경남대책위는 "당초 2000여명 정도 예상했는데 대성공"이라며 "한번 더 상영해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많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공원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기 훨씬 이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사모' 회원들은 공원 앞에서 '일해공원 지지 릴레이 침묵시위'를 벌였다. 경남대책위는 오후 2시경부터 야외공연장에서 장비 설치 등의 작업을 벌였는데, 당초 장소 사용을 불허한 합천군청 측에서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오월어머니회 "전사모, 영화 같이 보자"

오월어머니회 회원 20여명이 광주에서 3시간 정도를 달려 오후 6시30분경 도착했다. 안성례 회장 등 회원들은 야외공연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별도의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 회장은 "영화를 보고 나면 막혔던 혈관이 터지듯, 5월 광주 학살의 진상을 깨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사모'에 대해 안 회장은 "전사모도 사람아니냐. 사람은 누구나 사랑과 용서, 화해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크게 깨달을 것이라 본다. 영화를 같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합천에서는 외지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고 한다는 지적에 대해 안 회장은 "외지가 어디 있나. 네 땅 내 땅이 없다. 우리 땅은 자손만대로 평화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 오월어머니회 회원 20명이 영화를 관람했으며, 상영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7 오마이뉴스 윤성효


전사모, 마스크 쓰고 침묵 시위

전사모 회원 10여명은 공원 입구에 마스크를 한 채 스크럼을 짜고 서 있기도 했다. 이들은 기자들이 물었지만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공원에 나온 몇몇 노인들은 영화 상영을 비난하기도 했다. 한 노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에서는 적일지 모르지만 합천사람들은 은인이며 고맙게 생각한다. 후대에 합천에서도 대통령이 태어났구나 하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을용(74)씨는 "여기서 영화를 상영하면 안된다. ××도 모르는 것들이 난리다. 영화는 사람들이 수백명 죽은 것만 상영하는데, 왜 군인이 죽은 것은 촬영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 전사모 회원들은 영화 상영에 앞서 항의의 뜻으로 마스크를 쓴 채 침묵시위를 벌였다,
ⓒ2007 오마이뉴스 윤성효


"영화 상영은 정의사회구현을 위해서다"

이어 저녁 7시경 경남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병하 경남진보연합 공동대표는 "5공화국 때 국정지표가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자기 나라를 지켜라는 군인들이 권력야욕에 사로잡혀 국민을 죽였다. 여기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정의사회구현을 위해서다"고 말했다.

경남대책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전국민들은 한결같이 일해공원 명칭 변경에 대해 분노하였고 합천군을 규탄하며 즉각적인 명칭 철회를 요구하였다"면서 "오늘날 합천군의 횡포는 기억의 살육에 다름 아니다"고 밝혔다.

또 "오늘의 화려한 휴가 상영조차도 장소 불허 통보는 물론, 공권력 동원까지 일삼는 합천군의 작태는 80년 전두환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아 있으며 학살의 역사를 재현하려는 것과 진배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별도의 자료를 통해 입장을 냈다. 권영길 의원은 "감춘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국민 모두가 원하는 것은 진실 그리고 화해, 용서다"라고 밝혔다. 강기갑 의원은 "영화 상영조차 막겠다고 하니 이 같은 일이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 지금 일어난다는 것은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 경남대책위 기자회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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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휴가의 합천상영에는 많은 언론사가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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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생명의숲' 간판 설치-철거로 마찰

경남대책위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공원 입구 쪽으로 옮겨 '새천년생명의숲'이라는 안내간판을 세웠다. 합천군이 세워놓은 '일해공원' 안내간판과 비슷한 크기와 모형으로 만든 것인데, 이름이 다른 것이었다.

김영만 경남대책위 상임공동대표와 제해식 전농 부경연맹 의장, 이병하 공동대표 등이 삽으로 땅을 파서 간판을 묻었다. 이들이 간판을 설치하고 몇 걸음을 옮기려 하자 5m 정도 떨어져 서 있던 '전사모' 회원들이 달려 들었다.

전사모 회원들은 "성스러운 공원 안에 쓰레기가 있으니 우리 손으로 치우자"면서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새천년생명의숲' 안내간판을 뽑아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남대책위 회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남대책위는 간판을 빼앗아 다시 설치했다.

이후 야외공연장에서는 간단한 문화행사가 열렸으며, 전사모 회원들은 천막농성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 경남대책위는 공원 입구에 '새천년생명의숲' 안내간판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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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뒤 반응 "일해공원 더 반대해야겠다"

영화 상영이 시작될 무렵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야외공연장 객석에는 파란 잔디가 나 있었는데, 가족 단위로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삽시간에 객석이 차 버렸고, 뒤에 온 사람들은 뒤에 서서 볼 수밖에 없었다. 객석 뒤편과 옆의 약간 높은 언덕에 앉아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관객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방지은(20)씨는 "어른들은 5·18을 겪어 보거나 알고 있겠지만 젊은이들은 잘 모른다. 영화를 보니 일해공원을 더 반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온 김상훈(16·합천중 3년)군은 "사람들이 많이 온 것 같다. 영화를 보니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해공원'이란 말은 듣기도 싫다"고 말했다.

공원 인근에 산다고 한 이미영(50)씨는 "군청에서 취침 방해 등의 이유를 들어 불허한 것으로 아는데, 실제 와서 보니까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행사를 하는 장소니까 조금 시끄러울 수는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은 "5·18민중항쟁을 다룬 영화를 합천에서 상영하는데 군청에서 불허했다는 말을 듣고는 현대사가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고, 박종훈 경남도교육위원은 "주민들이 많이 모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일해공원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주민들이 가슴으로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북 고령에서 왔다고 한 이지연(39)씨는 "시민 휴식 공간인데 잔인한 일을 저지른 사람의 아호를 딴 이름을 지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합천군 율곡면에서 왔다고 한 문순백(61)씨는 "가끔 밤에 놀러온다. 영화를 상영하니까 본다. 하지만 일해공원은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영만 상임공동대표는 "군청의 분위기 탓에 당초에는 1000명도 오면 많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막상 상영하고 보니 4000명은 온 것 같다. 이것이 합천군민의 밑바닥 정서라고 본다. 군민들은 심의조 군수가 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하 공동대표는 "감격적이다. 주민들은 영화를 한 번 더 상영해 달라고 요구한다. 날씨가 좀 더 선선해지면 주말 저녁에 상영하는 계획도 세워야겠다"고 말했다.

▲ 경남대책위 회원들이 공원 입구에 종이로 된 '새천년생명의숲'이라고 붙이자 앞에 전사모 회원들이 서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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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노인들이 영화 상영에 앞서 항의하기도 했다.
ⓒ2007 오마이뉴스 윤성효


전사모 "각하의 명예회복 영광의 그날까지"

전사모는 영화 상영 뒤 입장을 밝혔다. 전사모는 공원 3·1독립운동기념탑 앞에 천막을 쳐놓고 '릴레이 침묵시위'를 하고 있으며, 나무 사이에 "각하의 명예회복 영광의 그날까지"라고 쓴 현수막을 설치해 놓기도 했다.

전사모 운영자인 이승연(47)씨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합천에서 불법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정체불명의 시민단체를 규탄한다"면서 "영화를 진실인양 선전하며 국민을 분열시키고 군민까지 갈라놓는 시민단체는 반성하라"고 말했다.

또 이씨는 "<화려한 휴가>는 여권의 대선 홍보용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1만8000여명의 회원들은 일해공원을 지킬 것이다. 더 이상 왜곡된 5·18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욕하지 말고, 합천의 평화롭고 아름다움을 해치지 말라"고 밝혔다.

▲ 전사모는 공원 한 쪽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7 오마이뉴스 윤성효


▲ 전사모 회원들의 모습.
ⓒ2007 오마이뉴스 윤성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