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후안무치가 수그러들 날은?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다 보면 민중항쟁에 나선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면서 군경의 피해를 강조하는 방송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본 후 불현듯 "비상계엄군으로서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는 조선일보의 사설 한 대목이 생각났다.
80년 5월 당시 광주가 고립된 섬처럼 된 데는 신군부의 압도적 무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겠지만 언론의 왜곡보도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조선>의 왜곡보도는 단연 돋보였다.
광주민중항쟁과 관련된 <조선>의 기사 가운데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폐허 같은 광주... 데모 6일째'(1980년 5월 23일자 7면), "총 들고 서성대는 과격파들"(1980년 5월 25일자 7면)이 있다.
또한 <조선>은 “간첩에 의해 조종 받는 폭도 세력, 시위선동 간첩 1명 검거"(1980년 5월 25일자), "격앙된 군중 속에서 간첩이나 오열이 선동하고 파괴와 방화 살상의 선봉적 역할을 하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일"(1980년 5월 25일자)와 같이 광주시민들을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에 의해 부화뇌동하는 무리로 묘사한 바 있다.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줄곧 보도하는데 앞장 서 온 <조선>의 기사 가운데 압권은 “악몽을 씻고 일어서자”(1980년 5월 28일자)라는 제목의 사설이다.
<조선>은 이 사설을 통해서 "국군이 선량한 절대다수 광주 시민 곧 국민의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이번의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비상계엄군으로서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쯤되면 <조선>을 통해 광주민중항쟁을 접한 사람들이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싶다. 그러나 진정 놀라운 것은 <조선> 이 광주민중항쟁 당시 위와 같은 왜곡보도를 일삼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단 한 번도 그 때의 과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조선>이 광주민중항쟁에 관한 왜곡보도를 사죄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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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기획시대) | ||
아마도 <조선>이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왜곡보도를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가운데 하나 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는 <조선>의 사주와 대부분의 기자들이 여전히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미흡하기는 하지만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진실이 대부분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인식하는 ‘전사모’같은 파시스트 무리들도 있지만 설마 대한민국 일등신문인 <조선>의 사주와 기자들의 수준이 그렇기야 하겠나 싶다.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하나다. 그건 <조선> 사주와 기자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영 마뜩치 않아서다. 과거의 전비(前非)를 뉘우치고 사죄하는 것은 천하의 <조선>이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왜곡 보도한 과거의 잘못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지 않았다고 해서 <조선>의 사세(社勢)가 기울어지지도 않았다.
아니 사세가 기울어지긴 커녕 <조선>의 위세는 당당하기만 하다. 판촉의 힘이건 불공정 거래 때문이건 간에 <조선>은 신문 판매시장에서 여전히 최정상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신문 판매시장에서의 위세를 바탕으로 여론시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철 안에서 중앙일간지를 읽는 사람 네 명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조선일보를 읽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군사깡패들의 폭압 아래서는 숨을 죽이던 <조선>이 ‘할 말은 하는 신문’을 자처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조선>의 뻔뻔함이 고개를 숙일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조선>의 애독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그 여파로 <조선>이 가진 상징권력이 크게 약화될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비데와 자전거에 홀려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국민들이 도처에 있는 현실을 보면 그런 날이 금방 올 것 같지는 않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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