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반성 모르는 일본의 야만과 싸운다

YOROKOBI 2007. 8. 27. 16:08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공동대표 이해학 목사  ) 

   
 
  ▲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공동대표 이해학 목사는 아시아를 침략한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야만과 싸우고 있다.   
 

도시빈민운동가, 인권·통일운동가로 살아온 이해학 목사(주민교회)는 교회 밖 목회로 바쁜 대표적인 목회자다. 그는 70~80년대 민주화운동, 90년대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해 수십 차례 옥고를 치렀다. 지난해부터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지부 공동대표를 맡아 일본과 미국을 돌며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저지하는 '행동'을 벌이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가족을 둔 이들이 합사를 반대하는 소송에서 패소한 뒤,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은 올해 2월 26일 다시 소송을 걸었다.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려 동분서주하는 이해학 목사를 2월 23일 경기도 성남 주민교회에서 만났다.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은 어떤 단체인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한국과 대만인 등의 유족들이 수년 전부터 일본재판소에 소송을 걸며 항의했다.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작년에 출범한 국제단체다. 우리나라와 대만, 일본 오키나와의 희생자 유족과 동아시아 각국의 평화운동가, 국회의원, 학자, 시민 등이 참여하고 있다. 나는 한국지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우리는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이 반인권, 반문명, 반평화라는 점을 세계에 알리고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려 각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가.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학술대회와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치고 있다. 작년 7월 서울에서 '세계의 눈으로 야스쿠니를 본다 - 문명과 야만의 사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세계 석학들이 야스쿠니신사의 문제에 대한 역사적이고 학문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세계 평화와 지역 간 화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 지침들도 제시했다.

또 젊은 친구들과 함께 작년 8월 11일부터 4박 5일간 부산에서 배를 타고 오키나와·오사카· 도쿄를 다녀왔다. 이 바닷길은 수백 년 전 통신사들이 왕래하고 100년 전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끌려간 바로 그 길이다. 8월 14일 도쿄에서 '야스쿠니신사의 어둠에 평화의 촛불을'이라는 주제로 촛불집회를 했는데, 3,000명의 세계 청년들이 모였다. 우리는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야만스런 모습을 세계에 계속 알릴 계획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 각료들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멈추지 않는다.

일본에는 각종 신을 모시는 다양한 신사가 있다. 그렇지만 여느 신사와 야스쿠니신사는 성격이 다르다. 야스쿠니신사에는 2차대전을 일으킨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다. 천황을 위해 아시아를 침략한 학살자들을 신으로 봉양한 곳이다. 일본의 고위공직자들이 기를 쓰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일본 우익의 정치적이고 정신적인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철저하게 계산된 정치적 행동이다. 그들이 군국주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세계 여론의 매를 들어 그들을 때릴 것이다.

   
 
  ▲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공동대표 이해학 목사.   
 

 

야스쿠니신사에는 전범 외에 한국인들도 다수가 신으로 모셔졌다는데.

그렇다. 2차대전 때 희생된 2만1,000여 명의 한국인이 강제로 합사되어 있다고 일본정부가 공식 발표했다. 대만사람도 2만8,000여 명이나 합사되어 있다. 전쟁의 희생자들이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와 함께 묻혀, 침략자의 후손들에게 신으로 추앙 받는 현실이 슬픈 일이다.

 

한국인 유족들이 일본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고 들었다.

후손들은 2001년과 2003년 각각 도쿄와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강제 합사한 것을 사과하고 분리할 것, 일간지에 사과문을 내는 비용 1,300여만 엔을 낼 것, 원고 1인당 1엔씩 11엔을 줄 것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작년 5월 기각됐다. 재판소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내세워 야스쿠니신사에 관한 건은 정부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또 보상에 대해서도 지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 이미 청산했으니, 보상문제는 너희 정부와 논하라고 주장했다.

 

이제 소송은 포기한 건가.

아니다. 지난해 8월 일본과 대만 유족 대표가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야스쿠니신사를 제소했고, 올해 2월 말 한국 유족 대표가 다시 도쿄지방재판소에 제소할 생각이다(원고단은 2월 26일 제소했다). 이번에는 소송비를 고려해 원고단을 10명으로 구성했다. 원고단은 한 분 한 분이 상징적인 분들이다. 아버지와 형님이 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분, 야스쿠니에 신으로 합사되었는데 살아서 돌아온 분, 전사자로 기록되었는데 살아계신 분까지 다양하다. 북한 피해자들도 소송에 참여시키려고 막판까지 노력했지만 이번에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이후에라도 추가 원고로 넣을 생각이다.

 

목회자로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에 참여한 이유는.

사실 지난해 공동대표로 참여해달라고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했다. 나보다 더 적당한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다. 다시 제안 받았을 때는 감사한 마음으로 응했다. 2차대전 피해자의 증언을 담은 영화 <안녕, 사요나라>를 보고 가슴이 뜨거웠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피해자 대표 이희자 씨가 20년 전부터 일본을 60여 차례 방문해 결국 징용돼 돌아가신 아버지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것을 확인한 이야기를 듣고는 어떻게 해서든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가 일본을 그렇게 여러 번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들의 도움 덕분이다. 그를 도운 이들에는 시민단체와 변호사, 공무원들이 끼어 있었다. 사실 부끄러웠다. 일본에서는 야스쿠니에 합사된 한국인 명단을 1991년에 한국정부에 넘겼지만, 우리 정부는 그것을 공개하지 않고 창고에 처박아놓았다. 그것을 이 씨 등이 수소문해 1997년 정부의 창고를 뒤져 찾아냈다. 우리 정부는 왜 이렇게 무심할까. 과거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받은 비참한 고난을 왜 그렇게 쉽게 잊으려는 걸까. 그렇게 국민을 배신하는 정부를 둔 게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