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프 톨스토이와 헨리 조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중 한 사람은 아마 러시아의 대문호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일 것이다. 러시아에 있는 톨스토이 박물관을 가장 많이 찾는 비(非)러시아인은 바로 한국인이라고 한다. 또 국내에서 번역·출간된 <톨스토이 단편선>은 백만 부 이상이 팔린 밀리언셀러이다. 이처럼 한국인이 톨스토이를 좋아하고 많이 읽지만, 그가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 미국)의 사상에 공감하여 최후까지 그것을 전파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이상과 신념에 반대해 온 귀족적인 가족들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82세의 노구의 몸으로 집을 떠났다. 사람들이 모스크바 역에서 그를 알아보고 객차 안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하나님과 바람직한 정부 형태와 조세 제도에 대해 질문하였다. 톨스토이는 가족을 떠난 정신적 충격으로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하여 마음과 몸이 모두 심하게 지쳐 있는 위태로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객차 중앙에 서서 30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헨리 조지와 그의 주장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그 며칠 후 어느 작은 기차역에서 톨스토이는 최후를 맞이하였다.
1885년, 톨스토이는 우연히 헨리 조지의 책을 처음 읽었다. 그는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헨리 조지가 쓴 글을 읽었소.” 톨스토이는 ‘나의 헨리 조지’라고 했는데, 이런 표현은 다른 어떤 작가에게도 쓰지 않은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헨리 조지의 편에 서서 그의 주장을 단호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1910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마지막 25년 동안, 톨스토이는 헨리 조지의 주장을 전파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그는 헨리 조지의 책을 직접 출간했고, 러시아어 번역판을 출간하면서 직접 서문을 쓰기도 했다. 톨스토이가 직접 간행한 헨리 조지의 책과 연설문은 저렴한 가격으로 수 만부가 러시아 제국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톨스토이는 정치가, 작가들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헨리 조지의 이론을 역설하였다.
톨스토이는 소설 <부활>에서 주인공인 대지주 네흘류도프가 땅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는 본문에서 헨리 조지의 이름과 주장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네흘류도프는 농민들에게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고 모든 사람의 공유물이며, 누구나 토지에 대해 평등한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토지의 질은 똑같지 않아서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는데, 누구든지 좋은 토지를 갖기를 원한다고 말한 후, 그럼 어떻게 해야 공평하게 토지를 나눌 수 있는지 농민들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네흘류도프는 그 최선의 방안이 헨리 조지가 제안한 ‘지대(地代, 1년간 토지임대료) 공유제’임을 설명한다. 농민들이 각각 받는 토지에 대해 토지의 질에 따라 차등적인 지대를 공공의 필요에 충당하기 위해 마을 조합에 납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네흘류도프는 토지를 갖고 싶은 사람은 좋은 토지라면 비싼 지대를, 나쁜 토지라면 싼 지대를 지불하면 그만이며, 토지를 갖고 싶지 않다면 한 푼도 내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헨리 조지를 칭찬하며 동의한다. 톨스토이가 <부활>에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이유는 분명하다. 러시아 토지 개혁의 원칙과 방향을 헨리 조지가 주장한 지대공유제로 해야 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러시아와 미국의 이 두 사상가들은 서신을 교환했다. 1894년, 헨리 조지는 러시아로 향하는 어느 미국인 기자에게 자신의 책을 “톨스토이의 손에 직접 전달하면서, 자신이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은 이후로 이 책이 톨스토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자신의 충심어린 마음을 믿어줄 것을 톨스토이에게 요청해달라”고 부탁했다. 톨스토이는 헨리 조지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 기자에게 자신은 "헨리 조지의 해설이 지닌 명확함과 정통함, 그리고 결론에 감탄했으며, 헨리 조지야말로 미래의 경제를 위한 견고한 기초를 다져준 최초의 사람이며, 그의 이름은 언제나 인류의 마음속에 감사히 기억될 것"이라고 헨리 조지에게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1896년, 헨리 조지는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은 톨스토이에게 감사를 표하고 톨스토이의 활동에 대한 자신의 존경과 존중을 편지로 써 보내면서, 곧 떠나게 될 유럽 여행기간 동안 톨스토이를 방문해도 좋을지 허락을 구했다. 이에 대해 톨스토이는 자신이 이미 오래 전부터 헨리 조지를 익히 알고 있으며 그를 만나보기를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헨리 조지가 뉴욕 시장 출마를 위한 선거를 준비하던 중에 사망함으로써 두 사상가들의 만남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아내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헨리 조지가 죽었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의 죽음이 내게는 마치 아주 친한 친구의 죽음 같이 놀랍게 느껴진다오. 신문마다 그의 죽음을 떠들어대지만, 헨리 조지의 책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소. 그의 책이야말로 참으로 뛰어나고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말이오.” 헨리 조지의 <사회 문제>에 톨스토이가 쓴 서문을 보면, 그가 헨리 조지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헨리 조지가 주장하는 거대하고 실질적인 개혁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지금껏’ 이 책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헨리 조지의 사상은, 현재 학대받고 침묵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으며, 이들을 다스리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손실을 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참으로 확고하게 효과적으로 설명하였고, 그 내용은 참으로 단순하기 때문에 절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대항하는 방법은 단 하나, 그 내용을 왜곡하거나 침묵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길들여지다 보니, 사람들에게 헨리 조지의 책을 주의 깊게 읽고 그의 사상을 더 깊이 연구해보도록 권유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전 세계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헨리 조지의 사상을 계속해서 오해하고 있고, 그의 사상에 아예 무관심해버리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고, 따라서 창의력이 풍부한 사상은 사라질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사상은, 애매모호하고 의미가 결여되어 있으며 이런 사상을 억누르는 세력 뒤에 있는 모든 다른 사상들과는 달리, 누군가 억압하려 할수록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조만간 진리는 그것을 은폐하는 장막을 뚫고, 세계 위에 그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이 바로 이런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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