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활동 펼친 개척자들 이형우 대외협력팀장…NGO 활동 살리는 대안 모색하자.
"위험하니 나가라"는 것만이 능사일까.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한국인 23명 납치 사태가 벌어지자 지난 7월 24일 우리 정부는 여권법을 개정해 이라크·소말리아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했다. 이제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을 무단으로 입국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 정부는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NGO들에게 8월 말까지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평화활동가·구호활동가 들이 속속 빠져나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5년째 평화 활동을 벌인 '개척자들'도 일단 철수했다. 지난 7월 30일 송강호 개척자들 간사가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분쟁 지역 선교, 중단하지 말자'는 제목의 글에서 분쟁 지역에서 평화 활동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글을 3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100개에 이르는 댓글이 달려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반대 여론이 훨씬 많았다).
개척자들은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동티모르·인도네시아 등 분쟁 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평화와 화해운동을 해왔다. 무너진 학교를 다시 세우고, 서로에게 총을 겨눈 원수 민족의 청년들을 한자리에 불러 적개심 대신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활동을 펼쳤다. 이러 활동을 10년 가까이 진행해오면서 분쟁 지역 사람들과 신뢰와 애정이 차곡차곡 쌓였다. 평화를 사랑해 죽음을 각오하고 분쟁 지역을 찾아간 이들에게 이제 정부가 죽을 수 있으니 나가라고 명령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말하자 누리꾼들은 너희 가족이나 데리고 선교하러 가라고, 위험에 처하더라도 국가 찾지 말고 하나님과 해결하라고 비아냥거렸다.
"평화 위해 어쩔 수 없으면 불법 체류도 검토"
8월 13일 '세계를 위한 기도' 모임에 참석하러 대광고등학교에 들른 이형우 개척자들 대외협력팀장을 만나 정부 정책과 여론에 대한 견해·계획 등에 관해 물었다. 송 간사의 글에 대한 외부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질문했다.
"송 간사 글이 나간 뒤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이 들어왔다. 우리를 이해한 이들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였다고 했지만, 대체적인 반응은 인질들이 풀려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꼭 그런 이야기를 해야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저희는 꼭 고민해야 할 이야기를 송 간사가 제기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사업상 체류하는 이들을 제외한 아프가니스탄 거주 한국인들에게 8월 말까지 철수하라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개인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안전 대책에 대한 계획서를 보고 타당성을 확인해 결정할 것이다"며 "예외 허용은 극히 제한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평화 활동을 위해서는 체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우리가 평화 활동을 하던 기간이었는데, 정부에서 떠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난감했다. 아프가니스탄 데스크를 접고 철수하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랐기에 갈등이 컸다. 좋을 때는 한참 신나게 일하다가,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떠났다가,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돌아가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이런 우리들을 어떻게 볼까. 우리를 다시 믿어주겠는가. 우리가 보아도 그건 삯꾼 수준의 행동이다. 정부야 우리가 떠나주면 편하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게 간단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동안 활동하며 쌓아온 관계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고민 끝에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한 우리 스태프(활동가)와 발론티어(자원활동가)들을 파키스탄 캠프로 합류시켰다."
그렇지만 이 결정이 아프가니스탄 활동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우선 외국인 활동가로 대체할 계획이다. 한국인이 체류하면 불법이기에 우선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대안을 마련할 생각이다. 현재 일본인 활동가가 아프가니스탄 입국 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일본대사관 쪽에서 비자를 보류하고 있다. 최근 카불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는데, 걸어가던 일본인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외국인 활동가로 교체한다고 해도 걱정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기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래서 세 가지 상황이 예상 가능하다. 일본인 활동가가 비자를 받아 활동을 이어가는 것과 외국인 활동가를 구하지 못해 아프가니스탄 활동을 접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인 스태프가 불법으로 체류하는 것이다. '이미' 철수했다면 앞으로 정부 허가 없이 들어가는 세 번째 상황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스태프 가운데 한국 국적의 사람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활동한다면 국가 정책이 반하고 현행법을 어기게 된다. 물론 우리도 그걸 원치 않는다. 법을 준수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최대한 찾을 것이다. 하지만 대안이 없을 때는 그런 법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반성도 하고, 고쳐야 할 것도 많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일을 위축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이 이런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모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좀 더 많이 준비하고 치밀한 대책을 세우는 논의를 할 것이다."
"행정 편의주의 대신 인류애 발휘하길"
정부의 조치를 대다수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조사에서는 80%의 응답자가 아프가니스탄을 여행금지국으로 규정한 것을 찬성했다. 누리꾼들도 위험을 무릎 쓰고 활동하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 팀장도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정책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위험하니 아프가니스탄에서 나가라는 건 근시안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여권법 개정으로 오랫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한 평화운동가들과 의료봉사자들, 선교사들이 난감할 것이다. 단체의 인지도와 활동의 규모에 관계없이 사람과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다 나가라는 정부의 정책은 받아들이기 힘든 명령이다. 그동안 정성껏 이웃으로 사귀었는데 이제 그 관계를 끊으라는 건데…."
이 팀장은 수심이 깊은 얼굴로 "정부 정책이 행정 편의주의에서 나왔다"고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이 팀장은, 정부가 평화운동에 대한 신념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자국민의 피해에 민감한 여론도 의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걸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정부가 무조건 나가라고 말할 게 아니라 NGO와 논의해 더 멀리 내다보는 판단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상황이 안 좋더라도 가능하면 NGO의 사역을 끊어버리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으면 좋겠다. 가령 NGO 활동이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을 체류하도록 허용한다던지, 유사시에 가동할 수 있는 조직망을 민관이 함께 운영한다던지 하는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한민족복지재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운영하던 병원을 현지인에게 맡기고 철수할 계획이다. 현지인들은 그들 입장에서는 큰돈이 들어가는 병원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한민족복지재단 활동에도 타격을 받지만, 가장 큰 피해는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다. 이 팀장의 말처럼 또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정부는 이번과 똑같이 자국민을 모두 철수시키는 일을 되풀이해야 할까.
"자국민 보호도 좋지만, 우리는 인류 공동체다. 우리의 손길이 절실한 이들이 있다. 인질로 잡혀 죽은 이들과 지금도 감금된 이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아프가니스탄 같은 분쟁 지역에서는 죽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들의 생명에도 연민의 눈길과 연민의 손길을 주어야 하지 않겠나. 같은 인간인데."
"우리 대변할 현지인 없다는 사실 회개해야"
누리꾼들의 댓글에는 선교라는 말만 붙으면 개종을 목표로 펼치는 공격적인 방식과 고난 받는 이들과 더불어 살려는 인류애를 구분하지 않고 싸잡아 비난하는 경향이 짙다. 안 그래도 싫은 개신교인이 설치다가 나라에 피해를 주는 꼴을 못 봐주는 게 일그러진 애국주의자의 전형이다.
"선교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다. 교회를 세우고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 것이 선교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사셨다. 크리스천은 예수의 삶을 따르는 이들이고, 그게 선교다. 개종을 안 하더라도, 이슬람 신앙을 더 깊게 믿는다 하더라도 그와 함께 살며 평화를 이루고 그들 사이의 분쟁을 화해로 바꾸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일구는 일이 크리스천이 할 일이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만의 신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웃 종교의 형제자매도 우리의 형제자매다. 그래서 그들의 고난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다."
교회 밖을 향해서는 선교도 다 같은 선교가 아니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면, 그보다 앞서 교회 안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격적인 선교를 반성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도 들린다. <뉴스앤조이>에 실린 대부분의 칼럼이 이러한 견해를 깔고 있었다.
"맞다.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그동안 공격적인 선교를 벌여 선교지에서 신망을 잃은 것을 반성해야 한다. 또 외신이 남발하는 소식에 목매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미국에 의해 협상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현실도 안타깝다. 무엇보다 납치 사건이 벌어졌을 때, 협상 창구로 내세울 아프가니스탄 친구가 없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동안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협상 테이블에 우리 대신 세울 현지인 한 명 사귀지 못한 것을, 우리 단체를 비롯해 그곳에서 활동한 NGO가 각성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러 갔는데, 그동안 그런 이웃을 만들지 못했다."
"교회의 신뢰 바닥 친 현실이 곧 기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이 교회를 비판하는 이유가 꼭 선교라는 단어에 담긴 여러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누리꾼들이 남긴 수많은 글에는 교회를 향한 섬뜩한 증오가 담겨있다. 그들의 핏발서린 눈앞에서, 교회가 자신을 먼저 성찰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기독교 내부에서 통용되는 선교라는 말이 실은 이런 뜻이라고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건 그야말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교회 밖 반응을 보면서, 댓글을 보면서, 교회가 이토록 반감을 사는 대상이었나 싶었다. 교회의 인심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걸 보고 놀라웠다. 교회가 이렇게 욕을 먹는 게 비단 선교 방침만의 문제이겠는가. 그동안 교회가 대중에게 보인 모습을 보라. 교회를 세습하고, 목사님들은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하고, 대형 교회들은 자기 몸집 부풀리기에 바쁘고, 수많은 교회가 지역 사회와 소외받는 이들을 외면하고…. 한국교회의 총체적인 모습에 대한 대중이 생각이 아프가니스탄 납치 사건을 계기로 표현된 것이?"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지금 개신교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교회는 이번 납치 사건을 계기로 더 떨어질 것도 없는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고 있다. 잘못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일(회개)이 남았다. 이 팀장은 "교회가 대중 앞에 겸손하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과감하게 자신을 고쳐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인터뷰를 마친 뒤 '세계를 위한 기도'를 인도하러 갔다. 10여 명의 개신교 청년들이 인질들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 일로 평화 활동이 위축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나님이 분쟁 지역에서 죽어가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기를, 크리스천이 신과 민중이 고난 받는 현장을 외면하지 않기를 빌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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