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동연 목사님의 글 (펌)

YOROKOBI 2007. 9. 8. 17:03

종교는 세속을 초월해서일까? 도대체가 책임을 지는 종교 지도자가 보이질 않는다. '명명박박'히 책임소재가 분명한데도 종교의 이름으로 덮어버리고 얼버무린다. 역시 비빔밥을 좋아하는 민족의 종교답다.

그 뿐 아니다. 간통한 목사의 교회에 사람이 더 몰려 들고, 거짓말 하고 횡령한 성직자의 좌판대에 고객이 더 몰려든다. 종이신문에 차마 혹은 일부러 보도되지 못했던 유명목사들의 간통행각과 심지어 매독걸린 수치스러운 일까지 드러나도 그 성직자들의 영업장(?)은 언제나 초만원이다.

영업장이라고 쓴 것을 이해하시라.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의 모임이라면, 매독 걸렸다는 성직자나 간통했다는 성직자 그리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성직자는 당연히 내쫒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인가? 한번 대형화된 종교 집단은 좋은 일이 아니라 스캔들로라도 유명해지면 그 성직자의 점포엔 고객들로 차고 또 차고 넘쳐 줄줄줄 흐른다.

어제 동시에 두 모임에 참석했다 아침에는 제법 규모있는 목사들의 모임에, 저녘에는 한 학교의 시민강좌에 나갔다. 역시 새벽의 모임에서는 달콤 쌉싸름한 언설로 교인들을 모아 들이는 방법론만 난무했다.

작금의 한국사회가 어떻게 교회들을 바라보는지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없었다. 그 평안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광경 위에 실험실의 알코올 램프 위에 놀인 실험용컵 속에서 서서히 물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기분좋게 죽어 간다던 개구리가 오버랲되었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한 언론사에 들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에 학교 강단에 서서 한국인의 종교심성에 관해 강의를 했다. 거기 모인 청중들은 대부분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신앙심이 좋은 분들이었다.

대단히 조심스럽게 서두를 꺼냈다

‘왜 한국의 종교는 비합리적인 모습을 띨까요? 도대체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단지 목사나 승려 등 종교지도자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내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 학생이 급한 소리로 대답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우리도 봅니다. 그리 틀린 말들은 아니던데요’

놀랍다. 저런 말이 한국에서 최고로 정열적인 집단에 속한 성도의 입에서 나오다니... 어쩌면 목사나, 승려들이 교인들의 겉모습만 보고 안심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눈치채기 시작했다. 성직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한다는 것을.

믿으면 다 잘 된다고? 제대로 믿어서 올바로 망한 사람이 더 많다. 십일조내면 다 부자된다고? 헌금 많이 냈다가 주저 앉은 사람이 더 많다. 큰 교회를 지어 주었다가 망한 재벌도 있다. 성직자 잘 섬기면 세상 복을 받는다고? 그럼 종교탄압의 일인자인 김일성은 뭔데?

교인들이 아이들 학원도 제대로 못 보내고 낸 헌금으로 성직자라는 사람은 자기 자녀들 유학 보낸다. 교인들이 지하 셋방 살면서 낸 헌금으로 성직자는 고급빌라에 산다.

성직자가 회장실만한 크나큰 사무실을 꾸며 놓고, 그 안에 침대와 세면시설까지 갖춘다. 그리고 시건장치를 해 놓았다. 여비서까지 두고.... 도대체 아무나, 언제든지 만나 위로를 주고 받는 성직자의 모습은 아니다. 고도의 성채 속에 사는 교만한 영주같다. 그 돈이 모두 교인들 주머니에서 나온다.

뜨거운 여름철, 교회 안에서 수많은 부서들이 사방각지로 흩어져 수련회 및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 이때 고위 성직자분께서는 고위 장로들을 대동하고 교회의 돈으로 수박과 간식을 사들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납신다.

무더위에 고생하던 교인들은 저 멀리서 고급 승용차가 밀려 들어오면 줄서서 환영한다. 내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다. 그렇게 성직자는 시원한 차 안에서 산천구경하며 순례하듯 봉사현장을 답사하고 캠코더 찍혀 주시고 박수받고 돌아다닌다.

수재 의연금 내지 구호품도 마찬가지. 돈은 교인 주머니에서 나오고 플레쉬 받고 상 받는 것은 성직자다. 오 거룩한 성직자여, 대단한 성직자여.

이런 모습들에 대해 성도들이 반성하기 시작했다. ‘씨바, 우린 시다바리가?’ ‘돈은 누가 내고 생색은 누가 내는데....’

그래서 종교의 대중집회에 교인들의 참석열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사실 한국 종교의 제일 큰 문제는 너무 집회가 많다는 점이다. 매주일 예배는 기본이라고 그렇다 치고, 수요예배, 금요권찰회, 금요 철야기도회, 매일 새벽기도회, 화요 성경공부. 전도 대모임, 심방 심지어 매일매일 철야기도까지, 위에 계신 신도 귀챦을 지경이다.

그 수없는 모임속에서 달콤하고 쌉싸름한 말들이 춤을 춘다. 그 말에 점차 길들여진 성도들도 덩달아 춤을 춘다.
한국 종교는 집회수를 줄여야한다, 사실 종교에서 말하는 신적 존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 아닌가? 그런 분을 말로 나타내고자 하니까 더욱 궁색해진다. 도대체 성직자도 사람이라면서 새벽이면 새벽, 밤이면 밤, 언제든지 줄줄줄 신의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성직자는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늘어 놓게 되어 있다. 본인의 신변잡기 내지는 자기가 최고 잘났다는 투의 이야기와 자기만 따라 오면 복을 받는다는 뉘앙스의 설교를 주야장천 퍼붓는다. 서서히 묻지마 식으로 헌금하는 교인들이 늘어나고 성직자는 점점 부자가 되어 심지어 간통까지 하고도 번들거리고 다닌다

그런 면에서 샘물교회의 박은조 목사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간통은 하지 않았고, 외형상으로는 크게 치부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박은조 목사가 살신성인의 모습으로 샘물교회를 사임하고 새로 목회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간통한 목사, 거액연봉에 도끼자루인 한국교회가 썩는 줄도 모르는 목사. 대형교회를 세습해 주고도 그것이 왜 잘못인지도 모르는 모습들을 지겹도록 보아왔다.

언제까지 간통목사, 세습목사, 정욕에 눈멀고 권력욕에 눈먼 정치 목사들을 견디고 참아야만 하는가. 이러다가 정말 종교타도집회가 거세게, 들불처럼 거세게 일어 날 수도 있겠다.

타도하자 간통 성직자, 타도하자 거액연봉에 눈먼 성직자. 타도하자 세습 성직.... 이런 구호가 인터넷을 넘어서 길거리에 난무하면 어쩔 것인가!


▲ 이동연 한누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