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중앙일보>의 사주가 된 뒤 그의 삶은 곰비임비 파란이 일었다. 주미대사로 발탁되고 사퇴하는 과정도 극적이었다.
언론계 내부에선 오래전부터 '계몽군주론'이 공공연하게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중앙일보>는 홍석현 체제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동아일보>와 견주어 계몽군주론은 의미가 더해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 계몽군주론을 줄곧 비판해 온 내게 통일운동에 헌신해온 한 지인이 진지하게 '홍석현 옹호론'을 제기해왔다. 홍석현 옹호론을 경청하며 스멀스멀 당혹감마저 밀려왔다. 그동안 나의 비판이 지나친 게 아닐까 짚어보기도 했다.
기실 <중앙일보>가 <조선일보>·<동아일보>와 가끔 다른 논조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이명박이 결정되었을 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친북좌파'와의 대결 운운하고 나섰다. 반면에 <중앙일보>는 차분하게 경부운하 재검토를 촉구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조선>·<동아>와의 차이를 압도하는 동일성
하지만 그 차이는 언제나 그를 압도하는 동일성에서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마나 전향적이었던 통일 의제에서도 <중앙일보>의 12일자 사설은 뒤늦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용춤 추고 있다. 한반도의 안팎 상황이 엄중한 만큼 <중앙일보>의 사설이 보여준 행태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사설은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핵 위협 받으며 떨고 살게 될 운명' 사뭇 비장감마저 감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려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까닭은 단순하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중요한 의제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핵, 북핵이라고 소리를 높이는 것은 정략적"이라며 "6자회담에서 풀려 가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북핵을 말하라는 것은 가급적 싸움하라는 얘기"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평화협정이 핵심의제라는 발언과 관련해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라고 썼다.
과연 그러한가. 같은 말이라도 꼭 자극적으로 표출해 불필요한 갈등으로 본질이 흐려지는 게 노 대통령이 노상 해온 화법이지만, 기실 발언의 내용은 옳지 않은가. 북미 핵문제가 남북정상회담에서 해결될 수 없는 의제임은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럼에도 <중앙일보>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중요한 약속"을 들먹이며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곧이어 "북핵 문제는 적당히 봉합하고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내세워 마치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것처럼 이벤트를 연출하자는 것"이 정상회담 추진의 속셈이라며 살천스레 부르댄다.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반(反)민족적, 반(反)대한민국' 행위다."
잠자던 소가 웃을 일이다. 대체 누가 '반민족적 행위'를 하고 있는가. 미국 대통령의 말은 받들고 제 나라의 대통령 말은 시들방귀로 여기는 꼴은 접어두자.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이 민족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전환기라는 데 있다. 6자회담이 순조롭게 풀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의 수교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상황이다. 물론, 아직 낙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교가 이뤄진다면, 그때 비로소 '한반도 비핵화'도 자연스럽게 구현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그 과정에 이 땅의 언론과 정치세력이 걸림돌 노릇을 하는 데 있다. 이미 이명박 후보는 주미대사 앞에서 이번 대선을 '친북좌파 대 보수우파의 대결'이라며 '북핵 문제'를 들먹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관되게 그 흐름을 대변해왔다. 12일자 사설에서도 어김없이 노 대통령의 발언을 훌닦았다.
바로 그 눈 먼 행렬에, 민족과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정략적 사고에 흠씬 젖어있는 저 부라퀴들의 사대주의 행렬에, <중앙일보>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시민사회 일각의 홍석현 옹호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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