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기독교 세계관은 무엇인가!/우리의본분과 사명

YOROKOBI 2008. 3. 21. 21:22

 

 

기독교 세계관은 무엇인가!

-  우리의 본분과 사명을 생각하기 위하여  -

창세기 1:~3:

  청년의 시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초를 다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시기인 것입니다.  또한 청년의 시기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무한한 꿈과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청년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확하고 바르게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즉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을 세우는가에 따라서 그의 삶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먼저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세계관은 자신에 대한 가치관이 명확하게 세워지게 될 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아주 중요한 물음인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무질서하고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에게는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이 더욱 필요합니다.  한동안 'X 세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더니 이제는 'N 세대'라는 말이 가장 널리 퍼져 있기도 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X 세대'라는 용어를 통하여 '개성'이니, '자기표현'이란 명목으로 기존의 절대적인 기준들을 모두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한  'N 세대'라는 가치관을 통하여 최첨단의 과학문명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 메말라 가는 인간의 모습을 날마다 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들은 과거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되는 '이데올로기' 사상을 통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젊음을 투쟁과 폭력으로 채워야 했던 모습에 반복일 뿐인 것입니다.

   결국 이런 가치관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라는 말씀에서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가치관에서 나온 것들임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매 시대마다 자신들의 가치관이 매우 새롭고 특별한 것처럼 여기면서 그와 같은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한 평생을 살아보려고 하지만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모든 가치관들은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1:9)라는 말씀처럼 허무하고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혼란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벗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안에서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세울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즉 성경적인 가치관 세계관을 바르게 세워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가치관은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1:33)라는 말씀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로 세움 받은 자임을 가장 중요한 인생의 가치관으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세계관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라는 말씀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삶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두 달 동안 여러분과 함께 이와 같은 가치관과 세계관을 발견하고 또한 세워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본   문

  창세기 1: - 3:

  먼저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창세기 1-3장까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부분은 온 우주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와 그 목적을 정확하게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 전체를 시작하는 첫 부분에 해당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 창세기 1-3장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장이기도 합니다.  우선 창세기 1장을 살펴 내려가면서 중요한 교훈들을 제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창 조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창세기 1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즉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인간과 온 우주 만물을 친히 만드셨음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또한 왜 존재하는지?, 인간이 무엇인지? 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인간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는 자가 아님을 배우게 됩니다.  즉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행17:25), "우리가 그

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행17:28)라는 말씀에서도 증거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오직 그분의 은혜와 보호만을 통해서 존재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시14:1-4)라는 말씀에 제시되고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이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찾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원숭이에게서 진화된 고등동물이라고 가르치는 '진화론'을 더 신뢰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3-5)

  이제 우리는 창조의 첫 장면에서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맛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하시되 자신의 말씀으로 권능 있게 창조하시는 장면을 소개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으며, 또한 그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이 확실하게 이루어졌고, 그렇게 이루신 것을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연이어 소개되는 구절들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증거되어지고 있습니다.  즉 "가라사대"로 시작하여 "그대로 되니라"라는 말씀으로 이어져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우리는 모든 만물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즉 그분의 말씀은 얼마나 권능 있고, 높으신 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이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지, 또한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인지를 드러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33:6)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즉 인간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며, 그 말씀 안에 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권능있는 능력으로, 자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심을 배우게 됩니다.  즉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115:3) 라는 말씀에서 증거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가장 거룩하시고, 지혜로우신 그분의 뜻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며, 좋아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찬란한 것인지를 드러내시고 비추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본 장의 내용을 통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1:26-29)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이런 창조의 영광스러움과 감격스러움은 인간의 창조에 대한 위의 본문을 통해서 더욱 찬란하게 비춰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곳에 이르게 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에 고개를 숙이며, 겸손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어 '나 자신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정한 답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지으셨다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결코 동물에서 진화된 것도 아니요,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또한 준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의 창조는 다른 창조사역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독특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사실인데,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인 것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자신의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교만하여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도 안되며, 그 반대로 자신의 존재를 너무 낮추어 아무 쓸데없는 그런 자로 생각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을 음란이나 폭력적인 정신으로 물들게 하는 문화라든가, 술이나 담배, 약물중독 등과 같은 것으로 해치면서 아무런 삶의 목적도 없이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복을 주시고 또한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등 가장 고귀한 자리를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시편에서는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4-9)라고 찬송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앞서서 창조하셨던 모든 것을 인간에 주시고, 그것을 누리며 기뻐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창세기 2장 8-15에서도 증거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인간에게 허락하시고 그 가운데서 풍족함과 부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신 것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창2:1-3을 통해서 발견하는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면서 이날을 복되게 해 주심으로 인간이 이 날을 누리면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들을 기억하고 찬송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심을 보게됩니다.  이처럼 창세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움과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은총을 인간에게 부어 주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5-17)


언약의 백성

  이제 우리는 인간의 가치관에 대해서 창세기에서 제시하는 두 번째 내용을 보게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큰 은혜와 선물을 허락하시고 이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며 즐거워 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신 것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기계처럼 다루시지 않으시고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시고 또한 그렇게 대우해 주신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언약'(약속)을 맺으셨던 것입니다.  감히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수 없는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존귀한 자리에 세워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책임감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강제적으로 다루시지 않고 인간이 자신의 원함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은혜를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큰 은혜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언약을 통해서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먹고살아야 하는 그런 존재임을 잊지 않도록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지만 결코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될 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존재하는지를 깊이 깨달아 하나님만을 의지함과 그분의 뜻과 영광만을 드러내는 자로 자라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질서와 은혜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즉, 나는 내 큰 능과 나의 든 팔로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땅을 사람에게 주었노라"(렘27:5)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이것을 가장 기쁘시게 여기셨으며,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선물로 주어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통해서 인간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간직하고 그분의 뜻을 기억하게 될 때만 인간이 가장 가치있는 존재이며,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명기에서도 이와 같은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신8:6).


  이처럼 창세기 1-2장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가장 영광스러운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전체에서는 인간과 온 우주 만물이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창조주인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송해야 함을 다음과 같이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시8: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시104:24)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기 행사로 인하여 즐거워하실지로다(시104:30-31)


증인(사명자)

  위와 같은 말씀과 창세기 1-2장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단순히 인간이 하나님의 모든 선물을 누리는 자로만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 선물을 통해서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뜻을 온 땅에 드러내며, 비추기 위해서 창조된 자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즉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  "여호와는 자기 행사로 인하여 즐거워하실지로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듯이 우리 인간의 존재 목적과 살아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분의 영광과 존귀하심이 인간을 지으신 그 모든 일로 가장 아름답게 비춰지도록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은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18)라는 말씀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라는 말씀, 그리고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와 그리고 존재의 목적을 분명하게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음을 배우게 됩니다.

 

○ 타 락 ○

  이제 우리는 전혀 새로운 내용으로 이끌려져 갑니다.  그것은 창3장을 통해서 발견하는 인간의 무서운 죄악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죄악에 대한 내용은 가장 두렵고 떨리며, 무서운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3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즉 1-2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렇게 은혜로우시고, 자비와 인애가 크신 하나님을 인간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시하고, 거역하며, 외면했는지를 우리는 3장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외면한 무서운 죄인임을 깨닫는 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치관을 깊이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3:3-7)


불순종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세워 주셨던 그분의 언약을 거역한 '불순종'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모든 은혜를 통하여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그분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짐으로 하나님의 존귀하심이 더욱 높아지기를 소망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축복된 삶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와 같은 인간의 창조 목적을 거역하고 교만함으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무서운 죄악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뜻을 거역하고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 자체가 무서운 죄임을 기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선악의 기준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판단으로 그것을 결정하며, 판단하려고 하는 죄악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을 간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없이 자신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는 쪽으로 바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누리는 영원한 교제를 잃어버린 아주 비참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아담의 범죄는 이제 모든 후손들에게까지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만드시지 않으시고 아담 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를 인류의 대표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후손인 우리 자신이 왜 죄인이 되었는지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롬5:12-14)라는 말씀에 잘 지적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담과 함께, 그리고 아담 안에서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제 성경에서는 이와 같은 인간의 죄로 인해서 인간이 얼마나 참혹하고 비참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끊임없이 다음과 같이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살인,분쟁,사기,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1:28-32)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0-17)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1-4)


죄의 성격

  위의 말씀들을 보게되면 인간의 죄의 특징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또한 하나님 사랑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욕심과 욕망만을 더욱 좋아하며 좇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라는 말씀처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오직 자신의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며,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죄의 성격"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1-23)라는 말씀에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기보다는 자신의 지혜와 뜻으로 살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하나님께 돌아갈 모든 영광을 더럽히고 무너뜨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창세기3장에서 지적한 그 죄의 내용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뜻을 거역했기에 이제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었으며(엡2:1), 본질상 진노와 심판의 자녀(엡2:3)가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처럼 성경에서 계속적으로 인간의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를 가장 깊이 깨닫고 바르게 알게 될 때 우리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패를 알게 될 때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을 보다 더 잘 깨닫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의 부패함을 알 때 오직 하나님 안에만 무한한 선이 있음을 더 분명히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욥25:4-6)라는 욥기의 말씀처럼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과, 더러움과 또한 무서운 죄악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여기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움만을 갈망하며 두렵고 떨리는 자로서 가장 깊이 낮아지는 겸손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무지, 공허, 빈곤, 허약, 더러움, 궁핍, 그리고 타락과 부패를 깨닫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안에만 지혜의 참된 빛과 건전한 덕, 완전하고 차고 넘치는 선들, 의의 순결함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자신을 미워하기 전에는 진실로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할 수가 없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앞에서 가장 비참하고 참혹한 죄인으로 서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 구 속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복음의 내용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발견하기 위해서 깨달아야 할 중요한 성경의 진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그렇게 참혹하고 비참한 인간에게 찾아온 복된 복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선택하신 자신의 백성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 주셔서 우리를 그분의 친백성으로 세워주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라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 아주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4-6)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2:4-7)


  결국 창세기 마지막을 통해서 우리는 자비와 인애와 긍휼과 선하심이 크신 우리의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분의 무한하신 은총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서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자신의 가치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우리의 노력과 공로를 통해서 주어진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얻은 선물임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귀한 자리를 얻게 하심도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존귀하심을 온 땅에 증거하므로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즉 이것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이 아버지이신 하나님 앞에 자녀로 서 있는 그분의 백성들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7)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6:16)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21:7)


맺는 글

  청년 여러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와 같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바른 가치관을 우리에게 세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와 같은 성경적인 가치관은 오늘날처럼 혼탁하고, 무질서한 시대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삶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때는 우리는 또다시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무서운 죄악 가운데 살게 될 것이며, 그 길의 마지막은 겉으로는 빛나 보여도 실제로는 가장 무서운 심판이 준비되어 있는 길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백성이 되어 그분의 말씀을 먹고살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자임을 기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그분의 자녀임을 기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구원해 주신 그런 자임을 기억하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