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배도와의 관계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은혜의 방도로서 주어진 "설 교"를 통해 우리의 인격과 사상과 생활에 있어서 은혜의 방편이나 예수님의 성품을 발휘하는 재료나 신령한 생활의 통로로 쓰여지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침체가운데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니 퇴보라고 표현하는게 더 맞는 표현인 듯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가고 자라가는 유기체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잘못된 것은 고쳐지고, 건강하게 장성해 가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작용성이 나타나지 않고, 말씀의 목표하는 바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교회는 더 이상 그 생명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요, 장성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곧 침체는 장성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이는 곧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흘러가는데 거기에 맞게 움직여가지 않는 것이므로, 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으로부터 계속해서 정상한 은혜를 누리지 못함으로, 거룩한 종교의 탈을 쓴 인간의 방법과 지혜로서 경영이 되는 것이고, 자기소견에 옳은대로 행하게 됨으로 성령님의 은혜로 나아간다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라는 실질이 사라지므로 이단적인 형태로 빠진다거나, 형식적이고 맹목적인 또는 지식적인 신앙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도 모르게 배도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배도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드러나는 배도의 양상은, 적극적으로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고, 다른 교훈으로 바꿔서 이해하여 이상한 교회, 이상한 전통,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바른 진리를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생명의 양식으로 받고 작용하는데 성신님께 맡기지 않는다는 데서부터 드러납니다.
교회의 행사나 신행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제도를 내신 목적과 정신과 의의를 살려서 행하는 교회의 실질과 성신님의 조명 아래 움직이는 사실이 뚜렷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의 도리>와 <교회>에 대해서 배워왔습니다. 기도나 찬송, 헌상, 예배, 교회 등등에 관한 건강한 교회들이 취해온 성경해석과 하나님나라 사상 가운데 세워져 왔습니다.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거기에 실질을 담아서 하자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오늘날 "형식적이고 비신앙적이고 계율적인" 배도의 물결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곧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도리 등에 있어서 그 실질과 정신을 담아서 성신님의 인도하시고 가르치심에 따라 한걸음씩 나아가는데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할 때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대한 순수하고 가난한 심정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침체가운데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나 하나의 침체는 교회의 행보에 커다란 결핍을 초래하고, 이러한 사람이 많게 된다면 교회는 필히 침체가운데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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