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 시대는 양심적인 목회자를 원합니다.

YOROKOBI 2008. 3. 21. 21:35

이 시대는 양심적인 목회자를 원합니다.

양심적인 목회자에 대한 요청은, 오늘날 교회의 타락상과 시대가 요구하는 사명에 따른 것입니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의 해석과 신앙의 자태와 건강한 교회의 구현을 위해서 우리는 양심적인 목회자가 되기도 하고, 그러한 신자를 목회자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바로 서 있지 못한다면, 건강한 교회나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할만한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없고, 하나님나라의 경영을 맡아 세상가운데 하나님나라의 능력을 기대할만한 교회를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목회자가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목회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에 나가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목회를 하고 있다든지, 자신의 목회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들을 감동시킬만한 설교를 만든다든지,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의 설교를 자기말로 바꾸어 가르친다든지, 하나님나라의 진행과는 무관하게 자기의 이상에 맞는 교회만을 고집한다든지,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교회의 필요를 알지 못하고 안주하고 있다거나, 말씀준비와 성도를 돌보는 일보다는 정치나 취미생활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든지, ...

이것은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목회에 부적합한 사역자들이 많다는 얘기이고, 부실한 교회 혹은 이 시대의 커다락 배도의 물결에 떠내려가고 있는 교회가 많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지지와 은혜를 공급받으면서 하는 목회인지 의문입니다. 나이가 먹어서 할 일도 없고, 하던 일이나 계속 하자는 식으로 자신의 목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더욱 어두운 자리로 내모는 일들이 혹 우리 주위에는 없습니까? 제가 아는 목사님들 가운데는 훌륭한 인품과 깨달음을 가지고 있지만, 뒤늦게 복음의 도리와 교회를 깊이 배워가시면서 자신이 감당한 길이 아니다고 하면서 개혁교회를 찾아 나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힘들게 일하면서 교회와 가정을 지지하며 건강한 한 신자로 살아가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소명이 불명확하고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지지가 없다면, 자기의 열심과 지혜로 목회를 끌고 가지 말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양심적인 목회자가 아닙니까?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필요를 깨닫게 하시고 준비케 하시며, 먼저 전인격적으로, 온 몸으로 깨달으며, 자신의 생활과 신앙고백으로 설교를 할 수 있도록 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선포를 해야 하나님의 말씀답게 그 교회의 생명의 양식으로 작용을 하는 것이지, 자신은 그렇게 풍성히 깨닫지도 못하고 그러한 고백으로 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생명적인 설교가 되겠습니까?

물론 설교자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고 많은 연약과 부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기본적으로 갖출 것은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기본이 안 된 성도, 기본이 부실한 교회가 나올 수 밖에 없겠지요.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의 교회조차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목회자들은, 교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교회의 생명적인 속성이나 내용들이 무엇인지, 교회의 신령한 자태나 사명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발휘하며 나아가야 하는지
그러한 교회의 본질에 대한 도리들을 성경과 개혁교회의 역사 가운데서 풍성히 배우고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학은 바르게 교회를 이루고 세워가는 모습으로 그 정당성이 증명됩니다. 모든 신학의 열매는 교회의 바른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정상적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앞에 그러한 교회이룸의 정신도 없고, 신령한 교회로서 서 나가는 사실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가 목회자로서 바른 신학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의 양식으로 작용할만한 말씀연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그러지 못한다면 그의 소명은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결코 어떤 목회자들을 낙심케 하거나 비판하려고 이 글을 쓰는게 아닙니다. 목회자가 먼저 자신의 현상태를 바로 파악하고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바로 서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런 면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은 합니다. 뭐냐면, 자신의 목회와 교회의 연약함을 바로 직시하며, 역사를 거듭하며 차차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기 위해 오늘의 한 걸음을 걷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모든 것을 완전하게 세우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부족하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교회의 자태를 드러내고 우리의 자녀들을 건강한 신자로 양육하여 하나님께서 이 교회의 목회자로서 세우셔서 더욱 풍성한 교회의 내용들을 갖추어 갈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대를 거듭할 수록 교회는 그리스도 몸의 신령한 모습을 잘 갖추어 갈 수 있기를 바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나라의 진행에 대한 풍성한 깨달음과 이시대를 바로 분별하며 시대적인 사명을 바로 각성하며, 교회에 꼭 필요한 도리들이나 믿고 정립하고 나아가야 할 내용들을 가르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주 교리문답이나 신앙의 도리에 대한 가르침들을 통해 교회가 믿고 있어야 할 내용들이 갈수록 풍성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신령한 한걸음이 없으면, 내일의 한 걸음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양심적인 목회자라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부족과 결핍과 아상을 철저히 깨달으며, 더욱 낮은 자로서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를 받으며 말씀과 교회에 대한 이해와 생각들을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이 있더라도 이랗게 노력하는 목회자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