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 음
Rev. C. Bouwman
네덜란드 신앙고백서 제1조는 “우리 모두는 ...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믿는 것은 신앙을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신앙은 무엇입니까?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7주일(특히 21문)에서 우리는 신앙에는 두 측면이 있음을 배웁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거나 성경의 모든 것을 아는 지식과 같지는 않습니다. 비록 믿음이 지식을 포함하지만 그것보다 많은 것을 포괄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하신 모든 말씀들이 진리임을 나 자신이 받아들인다는 의미의 확신도 포함합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7주일의 제21문과 답을 봅시다.
믿음에는 개인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다 함은 하나님과 결속을 가짐이요, 나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짐이요, 하나님께서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알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일이 나에게는 참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나 사이에 관계를 두셨다는 실제를 알고 거기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신앙 고백 제1조는 “우리 모두는 믿습니다.”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그의 주위의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먼저는 작성자를 가리킵니다. 제1조의 이 도입부에 약간의 색깔을 입히기 위해 이 신앙 고백서를 작성했던 때의 신자들의 상황을 익숙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그들은 “우리 모두는 믿습니다.”라는 이 말을 했습니까? 1548년에 두 명의 목사와 그들의 아내들 이렇게 4명으로 구성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제네바에서 영국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베르겐에서 며칠을 묵었습니다. 그 남자들은 개신교의 신앙을 전하는 목사들이었고 베르겐의 몇몇 개신교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무리는 남자 중의 하나와 두 여인네가 체포되는 바람에 베르겐을 떠날 수가 없게끔 되었습니다. 다른 목사는 나중에 붙잡혔습니다. 두 목사들은 개신교 신앙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둥에 묶여 화형을 당했고 여인 중에 하나는 산 채로 땅에 묻혔습니다. (다른 여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한 목사가 화형을 당하는 동안 프란시스코파의 수도사들은 이 사람이 귀신들렸다고 군중들에게 다짐을 주고 있었습니다. 발치에 불이 활활 타고 있는 채로 그 목사는 시편 6:8,9 말씀에 운을 넣어서 응수했습니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눈곱만큼만 상상력을 발휘해 보아도 이 사건이 드 브레와 그와 함께 한 다른 개신교도들을 냉담하게 두지는 않았음을 눈치챌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와 단절한 대가란 말인가? 진정 개신교 신앙이 한 사람의 목숨과 바꿀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인가? 성경에 충실한 대가가 정말로 값비싸다는 사실이 성시(城市)의 개신교도들을 더욱 납득시켰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성시 사람들의 반응은 현저해서, 당국은 개신교 교회가 성시에서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의 이 시점까지 이 교회는 ‘지하’에서 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그것의 존재가 확실해지자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젊은 드 브레를 포함한 신실한 사람들은 다시금 다음의 물음에 직면해야만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부요함이 진정 박해를 받을 만한 것인가? 박해에 직면하여 드 브레는 새로 발견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1548년 런던으로 가서 거기서 1552년까지 머물렀습니다. 런던에 있는 동안 그는 마르텐 미크론(Maarten Micron), 요하네스 아 라스코(Johannes a Lasco), 그리고 요하네스 우텐호브(Johannes Utenhove)와 같은 당시의 다른 몇몇 주도적인 개혁자들과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드 브레는 복음 설교자가 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사탄이 교회를 해산하고 박해하여 성취하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선한 것으로 바꾸어 일하신 것입니다. 1552년에 드 브레는 런던을 떠나 베르겐 근처의 레이셀(Rijssel)로 갔습니다. 박해는 아직도 매우 생생한 현실이었습니다. 레이셀의 그의 전임자, 피에르 브룰리(Pierre Brully)는 기둥에 묶여 화형당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목사가 된다는 사실은 흥미진진한 것과는 확실히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드 브레는 그렇게 했습니다! 드 브레는 레이셀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거기에 머무르는 4년 동안 혹독한 박해 때문에 비밀리에 자신의 일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의 박해를 피해 드 브레는 1556년 제네바로 갔고 거기서 다른 누구보다도 칼빈 선생을 만났고 그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드 브레가 미래의 자신의 사역을 위해 필요한 훈련을 완수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559년 그는 까뜨린 라몽(Catherine Ramon)과 혼인했습니다. 그의 사역의 결과로 도르닉 주민들의 상당한 수가 신앙을 받아들였고 거기에는 그 성시의 주도적인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시의 개신교도들 얼마간은 그들의 수가 공개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공공연하게 찬송을 부르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국을 자극했고 군대가 파견되었습니다. 이 사건 직전인 1561년 드 브레는 지난 몇 달 동안 작업하고 있던 그 신앙 고백서의 서문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서문과 함께 이 신앙 고백서 사본 하나를 도르닉에 있는 섭정 통치자(regent)의 집 담벽 너머로 던져 넣었고 그 사람은 왕인 필립 2세에게 그것을 바쳤습니다. 드 브레의 목적은, “개혁 신앙의 신봉자들은 기소된 것처럼 폭도들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따른 참된 그리스도 교의를 고백하는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임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납득하지 못했고 도르닉은 핍박을 통해 당국의 분노를 맛보아야했습니다. 드 브레는 다시금 도망가지 않을 수 없었고 5년 동안 ‘순회 전도자(wanderer)’로 살았습니다. 1566년 드 브레는 발렝시엔느(Valenciennes)로 초빙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에 대한 지지가 점점 높아졌고 사람들은 점차로 대담해져서 드 브레의 설교를 들으려고 4,000-12,000을 헤아리는 군중들이 들판에서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 당국을 두려워하여 쇠갈퀴로 무장을 하고 왔습니다. 1년 후 1567년 3월에 당국은 그 성시를 점령하고는 많은 개신교도들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드 브레는 어떻게든 도망가려 했으나 한 호텔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배신을 당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도르닉으로 보내져 수감되었고 두 달 반 후인 1567년 5월 31일에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드 브레는 네덜란드 신앙 고백서를 작성하였고 그의 신앙 고백서 제1조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는 ...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합니다.” 이어지는 그 많은 조항들도 같은 말을 “우리는 믿습니다”라고 줄여서 반복합니다. “우리 모두는 믿습니다”와 같은 말은 박해받은 회중들과 더불어 드 브레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할 때에 말했음을 알 때에야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격렬한 적대감 속에서도, 로마 카톨릭 교회와 정부가 개신교적인 어떠한 것이라도, 개신교도라면 그 누구라도 증오하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정부로부터 종교 재판소의 무시무시한 도구, 즉 사람들로 하여금 개신교 신앙을 철회하고 로마 카톨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하는 고문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제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승인을 받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기둥에 묶여 화형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고문을 받고서도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드 브레와 그 사람들은 “우리는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의 풍성함은 그들에게 박해와 투옥을 당하고, 심지어는 죽음의 대가라도 치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신앙 고백의 모든 조항들은 드 브레와 회중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값졌으므로 자유와 평안을 얻으려고 이 조항 중 어떤 것을 부인하거나 변경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계시하시면 생명 그 자체보다도 그것이 더 값지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던 것입니다. 이 신앙 고백서에서 드 브레가 고백한 신앙이 박해를 직면하고서도 그를 지탱해 주었음은 드 브레가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써 보낸 1567년 4월 12일자의 그의 편지를 볼 때 분명합니다. 이 편지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가장 친애하는 까뜨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소중하고 가장 사랑하는 아내요 자매여 ... 당신이 나와 혼인했을 때 당신은 그 생명이 단 1분 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죽을 수밖에 없는 남자와 맺어졌음을 잘 알았을 거요. 하지만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7년 가량을 함께 하며 5명의 자녀 주기를 기뻐하셨소. 주께서 우리가 더 오랫동안 함께 살기를 원하셨다면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오. 그러나 그것이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아니오. 그러므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그것이면 당신에게 충분하기를 기도하오. 내가 원수들의 손에 붙잡히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임을 또한 기억하기 바라오. ... 나의 하나님이여, 당신께서 정하신 때에 제가 태어나게 하셨고 제 일생 동안 상상할 수도 없는 위험들과 직면했을 때에도 저를 보존하시고 보호하셨고 온전히 구해내셨나이다. 그리고 이제 제가 당신께로 가기 위해 이생을 떠나야만 하는 시간이 왔다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 특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전도자일 뿐만 아니라 순교의 관을 씌워주심으로 하나님의 높임을 받고 특권을 부여받은 한 남자를 당신에게 주심으로 당신에게 보여주신 영예를 잊지 말기 바라오. 나는 기쁘고 내 마음은 즐거워하고 있다오. 나는 모든 고난 속에서 아무것도 아쉬운 것이 없어요. 나는 내 하나님의 넘치는 부요함으로 가득하고 ... 나는 하나님께서 나같이 보잘 것 없는 피조물에게 조차도 그렇게 긍휼을 베푸시는 줄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구료. ... 잘 있으시오, 까뜨린, 나의 존귀한 좋은 친구여 ...“ 그러한 서신을 읽고서도 감동을 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어떻게 드 브레는 그의 일생 동안 박해를 받고 투옥당하고 그 신앙 때문에 죽음을 당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도 기쁨을 말하고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했단 말인가?’ 이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사람은 성경의 사실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성경의 말씀들이 자신에게 참됨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죄가 사하심을 받았음을 알았고 그래서 그의 하늘 아버지의 전능하신 손에서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그의 형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만족해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시편 57편의 구절들에 있는 성경의 약속들을 믿으며 사역했습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내 영혼이 주께로, 나의 삶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만군의 여호와께로 피하나이다.” 그는 그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그 길대로 인도하심과 이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으시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만족해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예들에서 강조한 믿음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히 11:35-37) 여기에 행함이 있는 믿음, 이생의 현실적인 투쟁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알고 신뢰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도르닉의 그의 회중들과 드 브레는 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사하시려고 당신의 아들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이제는 그분의 손 안에서 안전함을 알았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드 브레가 그 호텔로 가는 길을 이끄시고 거기서 체포되게 하셨고 드 브레는 그 모든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죽음에 직면해서도 그는 행복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들은 오늘날 우리들 각자와 같은 실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알았고 성경의 하나님을 알았고 그의 약속들을 믿고 일했으며 그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받아들여 그것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데로 갔습니다. 고요하고 평안하게. 이것이 우리가 읽은 네덜란드 신앙 고백서 제1조의 배경 상황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드 브레는 “영원하시며,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보이지 아니하시며, 변하지 아니하시며, 한이 없으시며, 전능하시며, 지혜가 완전하시며, 공의로우시며, 선하시며, 모든 좋은 것의 넘치는 원천”이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그것들을 버리거나 운명이나 우연에 방치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당신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그것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시사 이 세상에서 그의 지시하심이 없이는 어떠한 것도 일어나지 않음을 믿습니다.” 그의 생애를 특징짓는 박해에 직면해서도 그는 네덜란드 신앙 고백 제28조를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救贖)받은 자의 모임이며 여기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사람도 그의 지위나 신분을 막론하고 여기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각 교회에 가입하고 연합되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 그들은 심지어 통치자들이 반대하고 군주의 칙령들이 금할지라도 그리고 죽음이나 육체적인 형벌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 모든 박해에 직면했을 때 성경의 신앙을 고수하려는 드 브레와 다른 개신교도들에게 한편으로는 로마 카톨릭이 되라는 제안을 뚫고 나가는 일이 얼마나 시험이 되는 것이었을런지요. 그러나 드 브레와 그의 동지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제36조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부패로 인하여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왕들, 군주들, 그리고 시민 관리들을 두셨음을 믿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때의 왕이 스페인의 독재자 필립 2세임과 그의 섭정 통치자가 벨기에에서 그렇게 잔인하게 교회를 핍박한 복수심에 불타는 마가렛(the vengeful Margaret)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 얼마나 대단한 성명이었습니까! 심지어 그러한 왕들의 치하에서도 드 브레는 성경에서 읽은 대로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왕들, 군주들, 그리고 시민 관리들을 두셨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실제 삶의 소용돌이에서 순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신분, 조건, 혹은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나 시민 관리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라고 덧붙일 수도 있었고 거기에는 필립 2세도 포함됩니다. 진실로 이것이 실제 삶의 소용돌이에서 생겨난 신앙 고백입니다! 이 사람은 우리 각자처럼 실제적인 삶을 영위했고 그 자신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 귀도는 나의 자녀이므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돌보노라.”라고 말씀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 브레는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드 브레가 이 신앙 고백서를 작성한지 435년이나 지난 시대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신앙을 고백했고 하나님과 그의 회중 앞에서 “네, 저는 주를 사랑하며 주를 섬기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을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드 브레가 죽은 먼 후에 그와는 다른 상황에서 그 좋은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백한 그 신앙은 그의 것과 동일합니다. 그의 네덜란드 신앙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며 그가 고백한 신앙은 우리가 고백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드 브레가 고백한 하나님과 동일하며 이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의 하나님께서는 1561년의 드 브레의 하나님이시며 1996년의 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시며, 그분의 말씀도 변함이 없으며, 그분의 약속들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의 성도들과 1561년의 성도들이 그분의 손 안에서 안전했던 것처럼 나도 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안전합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동일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셨고 미쁘신 분이셨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분은 미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단지 학문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결코 아니다 마다요 내가 사는 방식에 영향을 주니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고 주변의 상황에도 아랑곳 없이 그분의 손 안에서 안전한 나 자신을 아는 지식과 확신입니다. 이 신앙은 게으르지 않고 마음의 한 구석으로 밀쳐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신앙입니다. 네덜란드 신앙 고백 제1조는 입으로 고백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은 말이 입밖으로 나오고 행동으로 그것이 표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드 브레의 경우 아내와 다섯 자녀들을 남기고 떠났지만 그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뢰인 신앙이 어떠한 상황(빌 4:11)에서도 만족케 하는 평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신앙은 숨길 수 없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14-17) 그렇습니다. 믿음은 숨겨진 채로 있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의 예처럼 믿음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돌아보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드 브레의 시대에 믿음은 남편도 아버지도 없이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는 상황에 직면하고서도 만족하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상황,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만족하는 상황에서도 드러납니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 이것이 제게 주시는 명령입니까? 저는 묻지 않고 그것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데서도 나옵니다. 믿음은 순종의 삶이며, 순종의 삶을 통해 증시됩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우리 쪽에서의 가능한 반응들은 다음과 같을 겁니다. “이것이 믿음이 말하는 모든 것이라면 확실히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구나! 어떻게 드 브레는 그가 한 모든 것을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히브리서 11장의 성도들은 신앙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단 말인가? 나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거야!” 드 브레가 견고하게 되는 데에 필요한 것을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견고하게 되는 데에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실 겁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것이 사실이므로 언젠가 내가 드 브레의 상황에 있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잡아주실 것을 나는 받아들이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받아들이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틀림없이 그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싸움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 문답 제44주 제114문의 답에는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살 동안에는 이러한 순종을 겨우 시작할 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시작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의 믿음이 드 브레의 신앙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니라고 절망해야 합니까? 결국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결론지어야 합니까? 나의 삶의 투쟁에서 너무나 많은 싸움을 하며 전진해야 한다고 해서 드 브레를 부러워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붙잡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넘어집니다, 결핍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뜻에 따라 나를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늘 붙잡아주심으로 내가 그분의 손 안에서 안전하다는 사실을 나는 확신합니다. 결국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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