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에 대한 책은 접한 게 없어, 나는 지난 5월 4일자 프랑스 르몽드 사설(클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 점 양해바란다.)
2008년 5월 한국의 청계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촛불-가면 시위는 ‘민란(民亂)’이다.
‘혁명(革命)’이 아니다. 왜냐?
첫째. 지금 학생들의 시위는 대다수 국민들의 ‘현장’지원을 받지 못해 ‘세(勢)’가 부족하다.
둘째. 시대적 가치관이나 체제를 ‘뒤엎는 파괴력’이 부족하다. 그저 미국 소고기 수입 안하고, 교육 자율화조치만 취소하면 금방 사그러들 성격의 시위, 즉 ‘빵’만 주면 알아서 물러갈 무지한 대중의 시위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 시위에 정당성을 부여해 줄 나름의 체계적 사상이나 기성의 권위가 없다. 아무리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라도, 기존세력을 ‘압도’하지 못한다면, 사상과 권위의 도움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땅의 지식인들에겐 청계광장에 모인 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거나’ ‘섣불리 접근하고 규정하기엔 위험이 큰’ 집단인 것 같다. 지금껏 나온 어떤 담론도 이들을 속시원하게 규정하고,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극소수 매체만이 이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소장학자들이 도전적으로 규정할 뿐, 공론화-체계화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되면 ‘민란’은 가히 ‘혁명(革命)’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땅의 좌파들, 혹은 생각 있다는 사람들은 이 ‘민란’을 이명박 정부의 행태, 소위 ‘신공안정국’을 타파하려는 것이라며 ‘5.18혁명’에 견주려 하고 있다. 이는 ‘새끼운동권’들의 착각이다. 아니면 자기네 동료들, 혹은 잠재적 동료들을 설득하려다보니 들 수 있는 ‘알레고리(비유)’가 그것 밖에 없는 것이던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 바보들아. 2008년 5월, 한국에서 벌어지는 촛불-가면 ‘민란’은 1968년 5월, 딱 40년 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 초기의 학생 시위가 21세기판(版)으로 거듭난 꼴로 봐야 한다.
두 시위는 청소년들의 불만이 표출되어 시위가 발생했고, 이것이 일반인 지지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68년 프랑스 학생들의 시위는 ‘교육권’의 보장요구에서 촉발되었으며,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의 힘을 얻어 전국으로 확산됐다. 08년 한국 학생들의 시위는 아직 초기단계이나, 좌파단체, 그리고 일반-중도 시민들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당시 어른들과 매우 다른 지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68년의 프랑스 학생들은 2차대전 이후 경제성장의 와중에, 학습기간의 연장(학제개편)과 폭발적인 문화적 수혜를 입으며 정신적으로 ‘깨어있는 상태’가 됐다. 08년의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정보통신 인프라를 활용하여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을 ‘빨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타인이 주입하는 정보에 ‘숨겨진 부분’이 있음을 알고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유례가 없는 속도로 주변에 퍼트린다. 이들에겐 그야말로 ‘정직’만이 유일한 대처방안이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학습권리 침해에 대한 청소년의 시위로 혁명이 촉발되었으나, 한국에선 이 단계는 ‘체념당했고’, 더 위협적인 생존권의 위협단계, 즉 ‘광우병 문제’에 와서야 학생들이 행동에 나서게 됐다는 점이 다르다. 즉 이명박 정부의 ‘학습 자율화 조치’ 발표 때 즉시 청계광장에 모였어야 68년도 프랑스 학생들의 정신적-행동적 수준에 견줄 만 했을 것이다. 그 격(格)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학생들의 시위(격발)에 이촌향도 문제로 고통을 겪던 노동자들이 참가하고(세의 확대), 지식인들이 동참(당위성 부여 및 체계적 정리)하여 드골 대통령을 하야직전까지 몰고 갔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지 못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노동자들, 아니 일반 시민들이 학생들의 세를 불려주기엔 ‘어린 것들이 뭘 알아’부터 ‘먹고살기가 더 바쁘다’에 이르기까지 ‘보수화’혹은 ‘신자유주의화’가 되어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광우병 문제가 ‘생존’의 문제다보니 겨우 관심을 가져주는 수준이다.
게다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부산을 떠는 좌파, 특히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계열의 움직임은 일반 시민들에게 ‘정치적 색채’의 거부감이 너무 강하여, 오히려 학생시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도를 떨어트릴 것이다. 아마 시위를 이용하여 극렬 좌파의 ‘세력 과시’를 하는데 그칠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진의를 왜곡하여, 오히려 학생들이 좌파를 거부하는 사태가 빚어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되리라 100% 확신한다. 즉, 이번 청계광장 시위에서는 좌파세력이 나서기엔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이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세를 불려주길 바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기라성’같은 좌파 지식인들이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여 선뜻 앞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백낙청 교수, 김지하 시인, 아니면 작가 이외수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이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널리 알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않고 있다. 이래놔선 역사는 이번 청계광장 시위를 ‘학생들의 불만 스트레스 풀이’정도로 폄하하고 지나가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2008년의 시위가 again 2002가 아니라 again 1968이 되기 위해 이 땅의 ‘생각있다는 사람들’은 무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학생들의 실체를 이해해야 한다. 레이몽 아롱이 1968혁명을 “유례없다”고 했듯, 지금 학생들도 ‘유례’가 없다. 이들을 4.19때, 5.18때 돌 던지던 젊은 자기네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통제할 수 없는 인터넷의 ‘힘’을 갖춘 ‘새로운’ 세력임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해야 한다.
다음으로 당신들은 ‘어린 것’들에게 배워야 한다. 민주 투사(鬪士)패러다임으론 지금의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접근했다가는 패배하고서 제 탓이 아니라 ‘생각 없는 아이들’을 탓할 것이다. 생각이 없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이미 당신의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그러기 보다는 바둑의 서봉수 9단이 어린 이창호 9단에게 ‘뿅뿅’을 배웠듯, 당신의 조카뻘, 동생뻘 학생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아무런 당신의 기억도 강요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따라 배우기만 해라.
‘광우병’ 만으로 청소년들이 몰려나왔다고 봐서도 안 된다. 이미 ‘학습 자율화 조치’로 학생들의 분노는 끓어오를 대로 끓어 있었다. ‘광우병’은 ‘생존의 욕구’란 가장 근본적인 의지를 자극했고, 이 때 ‘물이 넘쳐버린 것’이다. 끓어 넘쳐버린 뜨거운 물을 주워 담으려면 맨손으로 크게 데던가, 방열장갑을 끼든가, 아니면 식혀야 하는데, 정부와 우파들은 물이 뜨거운 줄 몰랐다가 맨손으로 주워 담으려다 이미 크게 데었다. 하물며 뜨거운 것도 모르고 있다. 총체적으로 시위의 성격과 실체가 뭔지도 모른단 말이다. 게다가 하도 면피성 말바꾸기를 해대는 바람에 이젠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정부와 보수언론 말은 누구도 믿지 않을 터다. 이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수단은 딱 둘인데, 하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시위가 제풀에 지칠 것을 기대하기, 아니면 68혁명 때 그랬듯 공권력을 투입하여 중-고등학생들을 연행하기다. 대통령과 국회를 이미 차지했다며 걔네들이 뭘 할 수 있겠냐고 전자를 택하기엔 앞으로 5년이 너무 길고, 후자를 택하면 최악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성정당들과 기성좌파들은 청소년들의 행동을 ‘대정부 공격용’으로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려든다. 그러면 이번에 ‘이용당한’ 학생들이 다음 선거에서 당신들한테 표 줄 것 같은가? 속보이는 행동 함부로 하지 마라. ‘어린 것’들한테 뻘짓 하지 말란 말이다.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청소년의 ‘실질적’ 정치세력화를 도우라. 이미 그들은 인터넷에서 정치세력이 됐다. 이를 실제 정치로 이끌어내는 것은 당신들이 할 일이다. 시도별 학생 당원 조직 구성을 합법화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국회로 이끌어 내야 한다. 이게 21세기에 정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 될 것이다.
지금 당신들이 우선해야 할 일은 더 많은 학생들을 ‘전국의’ 청계광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세를 더 불려야 한다. 지금 이 숫자 갖고는 안 된다. ‘전국의 학생들’이 기성 권위를 불신하고 이대로는 안 된다며 몰려나와야 한다. 학원가야 한다며, 공부해야 한다며 막는 권위에는 이렇게 대항하라. 수능 인터넷 강사 이범 씨가 활발한 정치 활동을 하고 있는데, 청계광장에서 노천 강의를 하는 것은 어떻겠나? 공부하러 오겠다는 학생들을 선생님들이나 집에서 막기엔 어렵지 않겠나? 매일 할 수 없다면 전국구 스타 강사들을 조직해서 무료 강연을 해라. 지금 당신이 뛰어야 할 곳은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아니라 바로 청계광장이다.
르몽드 사설이 지적하듯, 68혁명은 외견상 성공한 혁명은 아니었다. 드골은 사태를 수습했고, 다음번 의회 선거에선 우파가 사상 최대로 의회 의석을 점유하는 ‘반동효과’를 낳았다. 아직 프랑스 국민들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기엔 무리였고, 폭력보다는 안정을 희구했다. 샤를르 드골이라는 프랑스의 아이콘이 지도자라 국민들은 그의 영도력에 의존하길 선택했다. 그러나 그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사회의 축이 되어 존경받는 프랑스를 일궈냈다.
하지만 08년의 한국은 다르다. 이미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고 그들의 지지도는 25%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보수화, 신자유주의화된 한국 사회에서 체념하고 있을 무렵, ‘거리낄 것이 없는’ 청소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 ‘불쏘시개’를 어떻게 해야 장작을 태울 불길로 일으킬 수 있겠나. 생각있는 어른들은 청계광장의 청소년들, 아니 전국의 모든 교실에 있는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배우고’, ‘세력으로 인정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순간의 감정에 휘둘림 없이 정연한 논리를 갖추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여 2008년 5월 한국 청소년들의 시위가 프랑스 68혁명의 21세기판이 되도록, 아니 그것을 뛰어넘게 하자. 2008년 5월에 ‘전국의’ 청계광장에 모여 촛불을 든 우리의 동생들, 아이들이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지금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 우리의 미래를 이끌 수 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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