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속에서의 신학적탈선 문제와 이단과의 연관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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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속에서의 신학적탈선 문제와 이단과의 연관성 최 병규 목사 총회 유사기독교 상담소장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 한장연 이대위 서기 Th. D. 서론 현대 기독교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나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그리고 그 밖의 신학적 탈선들(theological deviations)들에1) 의하여 도전받고 있다.2) 물론 이러한 위기는 벌써 근대를 거치면서 인간이성에 대한 확신이 증대됨으로 인해 신에 대한 절대적 확신이 희박해짐으로써 초래되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3) 인간 이성의 역할이 신앙적 진리를 통제하거나 배제하려고 함으로써 어떤 신적인 대상에 대하여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세계 내적인 문제들인 세계 평화(World Peace) 혹은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에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 이러한 현대 정신의 기류는 특정한 종교만이 절대적 구원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유일한 진리’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상대적인 ‘여러 진리들’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유일한 하나님(God)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에 다양한 신들(gods)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러한 정신적 환경 속에서 강조되는 것은 ‘多宗敎 狀況’(multi-religious situation)이다. 종교학자 윤이흠 교수는 한국인의 종교적 상황을 이 개념으로써 묘사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한국에는 유교나 불교 그리고 기독교와 같은 세계종교들이 공존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한국 문화를 주도하고 있지 못한데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다종교상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4) 윤교수는 종교다원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타종교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나 이외의 다른 절대신념체계를 인정하는 것이 되며, 이는 역으로 내 종교가 여럿 가운데 하나 (one of many)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서술한다.5)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내 종교가 여럿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종교인은 한편으로는 자기 종교의 역사적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신앙에 대한 절대적 헌신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인이 타종교를 인정하면서도 자기 신앙에 대한 절대적 헌신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고 하는 표현은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을 위험성이 있음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6) 왜냐하면 歷史的 敎會(historical Church)의 神學思想은 그 자체의 絶對性을 선포하는 것이지, 타종교에 비하여 상대성을 인정하는 종교가 아니며 또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정통적인 기독교회는 바울 사도로부터 시작하여 어거스틴과 칼빈 그리고 改革主義 信仰告白들을 통하여 전해져온 정통교리인 ‘敎會 밖에는 救援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고 하는 대 명제를 고수하며,7) 동시에 종교다원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은 주장하는 바 ‘교회 밖에 많은 구원이 있다’(extra ecclesiam multa salus)고 하는 사상을 배격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後期近代的인 神觀이나 宗敎多元主義的인 眞理觀 외에도 自由主義的 性向 혹은 個人的인 偏向性으로 인하여 神學的으로 脫線하고 있는 學者들을 종종 보게 된다. 우리는 그들의 사상적 경향과 연구들을 ‘學問의 自由’의 영역 속에서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 개인의 학문적 성향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세속 학문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의 신학적 경향이나 전제들에 의하여 역사적 기독교가 견지해 온 제반 신학적인 신념들 가령 성경의 영감설, 창조설,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성, 재림론 등등의 견해들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개인의 학문적 취향을 벗어나 그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 혹은 평신도들이 그러한 사상들을 가일층 脫聖經的, 脫正統的 異說들로 발전시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재로 이단 사이비 추종자들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부분은 바로 ‘神學的 脫線’들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8) 그러므로 우리는 학문의 자유와 신학자 혹은 목회자들의 학문적 연구와의 상관성을 살펴보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와 신학적 탈선 등에 관하여 고찰한 후 이단 문제와 연관지어보아야 하겠다. 1. 學問의 自由와 神學的 硏究 학문의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서는 법적으로도 보장하려고 하는 영역인 만큼 학문자체의 고유영역이 인정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헌법 제22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의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848년 Frankfurt 헌법초안에서 처음으로 ‘학문의 자유’가 규정된 이래, 학문의 자유란 大學의 自由(akademische Freiheit)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일체의 학문적 자유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진다. 이러한 학문의 자유는 대학의 교수나 연구소의 연구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는 만인의 기본권(Jedermannsgrundrecht)이다. 9) 그러면 ‘學問’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주지하다시피 문화생활영역에서의 개성신장의 수단이며, 모든 국민에게 지적인 양식과 미적인 감각세계를 넓혀 줌으로써 문화적인 공동생활을 실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이며, 문화풍토 조성을 통한 국가간의 문화교류와 국제사회에서의 문화적인 지위향상을 꾀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학문의 자유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학문의 자유‘가 학자의 개인적인 진리 추구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주관적인 기능을 초월해서 사회 전체의 지적인 수준을 향상시켜 주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학문의 자유가 국민의 국가에 대한 주관적 공권에 그치지 않고, 정신. 문화생활영역에서의 객관적 가치질서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10) 그러면 학문의 자유는 무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학문의 자유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학문의 자유 중에서 ‘연구의 자유’는 양심의 자유에 준할 정도의 고도의 헌법적 보장을 받는다. 그러나 ‘연구결과의 발표’라든가 ‘교수의 자유’ 등은 그 사회적인 전파성 때문에,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최소한의 제한을 면할 수 없다고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11) 그렇지만 ‘학문의 자유’가 그 내재적 한계를 지키는 한 학문의 자유를 법률로써 제한해야 할 구체적인 필요성은 현실적으로 생기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학문의 자유의 본질과 학문의 자유가 수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을 생각할 때 학문의 자유에 대한 외부적인 제한은 자칫하면 학문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다치게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학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원칙적으로 학문 내의 자체통제력에 맡겨 두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독일기본법 제5조 제3항은 학문의 자유를 절대적 기본권으로 규정하면서 헌법 이외의 어떠한 통제도 배척하고 있다.12) 그런데 법적 의미에서 학문의 자유가 이처럼 소중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역사적 기독교의 정신은 ‘진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반 학문의 영역에 대하여 사회적 전파성 때문에 제한이 가해지는 경우들도 간혹 있듯이, 기독교도 정통 신학과 교리에 위배되는 학문활동에 대하여 反應하며 필요시에 制裁를 가하게 된다. 종종 진리 그 자체에 대한 해석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떤 특정 인간의 이념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에 학설이 분분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성격의 것이 아니라 基督敎 信念體系의 根本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神學的 離脫들에 대한 것이다. 진리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시도가 허용되고 있고 또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학문의 자유를 추구함으로써 ‘眞理를 毁損할 危險性’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우리는 ‘진리에 대한 해석의 문제’와 연관된 대표적인 오류를 1980년 화란 개혁교회(신오달)의 델프트(Delft) 총회의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다.13) 그 총회에서는 진리에 대한 양 극단적인 개념들이 있다고 하면서 전통적 개혁신학자들이 견지해 온 진리개념이었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고 하는 객관적 진래개념(objectief waarheidsbegrip, objective concept of truth)과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진리로 보는 ‘주관적 진리개념’(subjectief waarheidsbegrip, subjective concept of truth)을 소개했다. 그러나 그 보고서에서는 진리개념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주지시키면서 그 두 극단을 지양하고 진리를 ‘관계’(relatie) 즉 인간과 사물 사이에 있는 관련성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즉 진리를 객관과 주관 둘 사이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려는 ‘상관적 진리개념(relationeel waarheidsbegrip, relational concept of truth)을 제시했던 것이다. 변종길 교수는 이러한 진리개념은 성경관에 있어서 커다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14) 신학자들이 성경 진리에 대하여 학문함에 있어서 자유주의적인 성향에 편승하여 성경의 기본진리나 교리를 위반하는 일을 자행한다면 그것은 수평적인 인간적 차원에서는 동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는 묵과될 수 없는 문제이다. 기독교의 정통적인 신앙고백에서 벗어나는 견해를 말하는 것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거짓 선지자들’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저명한 구약학자 Edward J. Young은 My Servants The Prhophets에서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들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거짓선지자들의 특징을 열거하는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the false prophets)은 거짓의 영(a spirit of falsehood)에 의하여 속임 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한 바 있다. 즉 거짓의 영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압도하여(overpower) 그들은 그 거짓 영의 노예들(slaves of that spirit)이 되고 그 지시(its dictates)에 따라 말하게 된다는 점을 논하고 있다.15) 그런데 혹자는 필자가 이렇게 논의를 전개시키는 것에 대하여 편협한 사고의 결과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문의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서는 이러한 시도가 坐視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神學이라는 것이 정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취급하는 것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신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16) 충분한 동의를 자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광을 위하여 신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연구하려고 하는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게는 정당한 방법론인 것이다. 사실 이단에 의하여, 더욱 근원적으로 말하자면 악령과 거짓의 영에 의하여 먹이가 되는 경우는 반드시 신학적으로 미성숙하거나 훈련을 받지 못한 이들만이 아니다. Young의 표현과 같이 하나님의 법을 따라 걸어가기를 시도하지 않는 자는 기만의 영에 의하여 쓰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언하면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목회자 및 신학생들도 거짓영의 역사에 노출될 수 있고, 먹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학자들의 학적 연구들이나 목회자들의 연구들에 대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들의 건전한 새로운 발견들과 연구들에 대하여는 격려를, 그리고 탈성경적이며 탈정통적인 노력들에 대해서는 경계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학적 작업은 주께서 피흘려 세우신 교회를 돌볼 지도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神學 硏究와 現代의 精神的 環境(milieu): 포스트모더니즘, 종교다원주의 크리스천이나 세속적 여론조사가들에 의하여 수집되는 통계들은 모든 크리스천들이다 절대적인 진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Josh McDowell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의 십대들과 대학생들에게 성경의 원리들과 변증학을 가르쳐왔는데, 그는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의 57퍼센트 정도는 진리의 객관적 표준들을 믿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독교 여론조사가 George Barna에 의하면 성경을 믿는 보수적인 성인 크리스천들 중의 53퍼센트는 절대적인 진리를 믿지 않는다. 1997년 Christian Today지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기독교인 1학년 대학생들의 84퍼센트는 그들의 신앙에 대하여 적절하게 방어하거나 설명해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갤럽 조사로부터는 아마도 가장 심각한 통계를 보게 된다. 성경적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하는 미국인의 70퍼센트 중에 2/3는 도덕적 절대성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조사가 결론적으로 어떤 것을 입증하려하지는 않지만, 그 함의는 크리스천 청년들과 노년층이 진리는 상대적이며 절대라는 것은 없다고 하는 포스터모던적 사고방식(postmodern mind-set)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17) 2.1. 포스터모더니즘 (Postmodernism) 그러면 포스터모더니즘의 기본적 원리들은 무엇인가? 첫 번째 특징은 ‘우리들 중 누구도 아무런 편견 없이 (without bias)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문화에 의하여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도록 형성되어져 왔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당신은 다른 문화나 다른 사람들의 사상이나 생각이나 행위들을 판단할 수 (틀렸다고 선언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실재에 대한 생각은 당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 번째로는 ‘각 사람의 실재는 그 사람의 고유한 정신 속에 있다. 당신은 당신의 고유한 실재를 세운다. 당신에게 실재적인 그 무엇이든지 당신의 실재’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과학을 사용하든지 역사나 혹은 어떤 다른 일련의 사실들을 이용할 지라도, 우리 중 누구도 어떤 것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18) 포스터모더니즘이 이러한 전제들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자연히 ‘관용의 개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사실 포스터모던 사상의 가장 강력하고도 위험스러운 특징들 중의 하나는 바로 ‘관용의 개념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absolute dedication to its concept of tolerance)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개념에서 볼 때 ‘관용적’이라는 것(To be tolerant)은 한 사람이 생각하고 행하는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과 인간 그 자체 사이의 어떤 차이점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관용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철학자들이나 교육가들 그리고 다른 지도자들에 의하여 확산되고 진작되고 있는데, 그들은 모든 가치들과 신념들은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하며 어떤 ‘진리의 체계’(hierarchy of truth)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단호히 부인한다.19) 그 결과 포스터모더니스트들은 하나님의 실존을 인정할 수도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인정한다면, 그들은 최고의 주권적인 창조자로서 보다는 “내재적인 신”(內在的 神, god within) 으로 주로 언급한다. 게다가 포스터모더니스트들은 사회가 무엇이 진리인지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에는 어떤 종류의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과학적 진리(scientific truth)까지도 절대적이거나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포스터모더니즘의 진리관은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에 대하여 반기를 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독교의 진리관은 포스터모더니즘에 의하여 침식당하거나 오염되지 않는다. 다만 그 속에서 존재하는 크리스천 개개인과 신학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의 영역들이 도전을 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 신학 분야와 관련하여 포스트모더니즘적 영향은 상당한 반영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또 그렇게 해 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신학자들은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을 견지하면서 교리적으로 건전한 태두리 내에서 신학화 작업을 행해야 할 것이다. 신학자의 진리개념이 불분명하거나 진리개념에 대한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 등등은 이단과 이설들이 등장하게 할 여지를 남기게 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부분이다. 2.2. 宗敎多元主義 (Religious Pluralism) 다음으로 현대사회 내의 종교현상을 특징짓고 있는 대표적인 경향은 바로 종교다원주의이다. 다원주의적 성향에 강조점을 둔 후기근대의 조류는 기독교 사상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서양의 일부 신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벌써 ‘종교다원주의’를 주창해 왔다. 그들은 기독교의 하나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그 신을 배제한 상태에서 ‘세계내적인 문제 즉 인간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세계질서에 대한 신율(theonomy)보다는 인간의 윤리만을 강조한다. 그들은 예상되는 세계 전쟁의 위협을 예견하면서 세계평화를 논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으로서 세계윤리를 논하고 그 속에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포기해버리고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으니 대화하자고 주장한다. 그들은 기독교만을 구원의 종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고 ‘교회 밖에도 많은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생명에 이르는 참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말하기를 생명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라고 한다. 후기근대사상에 있어서 ‘하나의 그 진리’로서의 진리의 절대성은 부정되고 진리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이 부분은 신학영역에도 스며들었다. 이것은 역사적 기독교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독교회를 하나님의 것이 아닌 사람만의 것으로 쳐다보도록 만들고 있으며, 동시에 기독교만이 진리가 아니라 ‘타종교들 속에서도 진리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저명한 선교학자 전호진 박사가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20) 한국에서는 서양 종교다원주의신학(Western pluralist theology)이 소개되기 전부터 이와 유사한 이론이 유영모씨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일본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Uchimura Kanzo)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유목사는 그 어떠한 종교도 절대적 진리(absolute truth) 혹은 타종교에 대한 우월성(superiority)를 주장할 수 없다고 변증했다. 그리고 감리교 신학자 변선환 교수 역시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혼합주의적 상대주의(syncretistic relativism)를 주장했다. 그는 주로 Samartha, Pannikar, Knitter, Hick 그리고 Yagi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21) 그리고 변교수 이후 대표적인 종교다원주의 학자는 김경재를 꼽을 수 있는데 22) 그는 장로교 소속 다원주의자로서, 그 스스로가 John Kick, Stanley J. Samartha, Raimond Panikkar, John B. Cobb Jr. 그리고 Paul Knitter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했다. 특히 그는 과정신학자 John Cobb의 영향하에 수학했다. 그는 상관성의 방법(method of correlation)과 지평융합(fusion of horizon)의 방식을 통하여 다원주의적 견해를 변호했다. 23) 김교수는 이처럼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는 한국의 보수 교회들을 대항하여 ‘극단적 배타주의’(Ultra-exclusivism)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의 견해는 정통신학을 지향하는 한국교회에 수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다원주의자들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주장되어져 온 요소들 가운데 특히 ‘기독론’24) 및 ‘구원론’ 등은 역사적 교회가 가르쳐온 정통교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2.3. 現代文化 속에서의 神學 硏究 Fritz Ridenour에 의하면, 오늘날 어디를 가든지 포스터모던 세계관이 발견되는데 대학교들, 미디어, 영화, 텔레비전, 심지어는 지역 학부모 교사 협의회에서 까지도 볼 수 있다고 했다. 현대 크리스천들과 신학자들은 이처럼 지속적으로 잠식해오는 후기근대사상 흐름 속에 놓여져 있다. 특히 신학자들이 신학 작업을 전개해나가야 할 정신적 환경은 바로 이러한 포스터모더니즘 사상이 만연해가고 있고 종교 다원주의적 주장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때 크리스천들과 기독교 신학자들은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정당한가? 크리스천들이 포스터모더니즘에 대항하여 해야 할 아주 강력한 논증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적인 진리에 서는 것이다 (The most compelling argument that Christians can make against postmodernism is to stand on the absolute truth of God's Word). 절대적 진리에 대한 헌신의 결여는 많은 크리스천들 중 일부에서 양심에 대한 어떤 다른 관이 일어나게 했다. 옳고 그른 것은 ‘옳게 느끼는 것‘(what feels right) 혹은 행위에 대한 몇몇 의심스러운 행위의 과정에 대하여 기도하는 것 혹은 ’그것에 대하여 편한하게 느끼는 것‘(feeling at peace about it) 등으로 대치되어져 왔다. 그러므로 신학자들과 크리스천들이 해야 할 우선적인 일은 바로 ‘성경 진리와 도덕성에 새롭게 헌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절대적인 진리가 있고, 절대적인 도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배후에 궁극적 절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그분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3. 神學的 脫線과 異端性 問題 George E. Ladd는 그의 책 The Blessed Hope에서 Albert Schweitzer 박사의 경우를 소개하고 있다. 슈바이처는 세계에서 가장 칭찬받고 존경을 받는 선교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유명한 슈바이처이지만 그는 신학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즉 슈바이처의 사상은, ‘예수는 미혹 받은 광신자요, 그 자신이 메시아적인 인자가 되기 위하여 하늘에 올리어지게 되면 세상이 갑작스레 끝날 것이라는 환상적이요 묵시적인 개념들에 자신을 희생시켜버린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즉 슈바이처에게는 예수는 위반자이지 구세주가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Ladd는 주장했다.25) 이것은 신학적 탈선 즉 정통신학에서 벗어남에 대하여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학적 이설들의 성격에 대하여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 대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나 극단적 신비주의자들만 이단인가? 신학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서 외치는 이들만 이단인가? 그렇지 않으면 정통 신학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소위 신학자들의 견해들도 이단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가? 이것은 대단히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경건한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칼빈(John Calvin) 선생의 ‘신학적 이단’에 대한 태도를 통하여 이 논점의 핵심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Calvin은 삼위일체 교리를 반대하던 몇몇 이단들 예를 들어 아리안파, 마케도니아파 그리고 반삼위일체론파 등에 대하여 경고한 바 있다. 그는 기독교강요 1.13.23에서 특별히 ‘발렌타인 젠틸레’(Valentin Gentiles)를 반박하고 있다. 26) 젠틸레는 신학적으로 삼위일체론을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성부만을 유일한 본질자로 간주했는데, 칼빈은 신학적 이단성을 지닌 그를 향하여 다음과 같은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이 더러운 늪으로부터 전술한 자(Selvetus)와 다르지 않는 또 하나의 괴물(another monster)이 나왔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세르베투스의 불경죄의 오명과 증오에 동참하기를 꺼려해서 실로 삼위가 있다고 고백하고는 단서를 붙여서 성부는 참으로 타당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들과 성령을 형성시키실 때(formed) 그들 속에 자신의 신성을 주입해 주었다(transfused)고 했다.” 27) 신학적 이단을 주장하는 이를 가리켜 ‘또 다른 괴물’이라고 까지 묘사한 칼빈의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단호한 인상을 주는 듯하다. --그러면 그 위대한 신학자가 왜 그렇게 극도의 표현을 사용했는가? 그것은 이단자들 - 신학적 접근을 하는 경우에도 -이 ‘불경된 심령(impious spirits)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근저에는 사탄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인식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삼위일체 반대론자들에 대하여 비평하기28) 전에 그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송두리 채 뽑아버리기 위하여 부분적으로는 성자와 성신의 신적 본질에 관하여 또 부분적으로는 페르소나(위격)의 구분에 관하여 언제나 맹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켜 왔다. 또 거의 어떤 세대에 있어서나 불경된 심령들을 선동하여 이 문제를 가지고 정통파 교사들을 괴롭게 했고...”29) 칼빈의 이와 같은 묘사 속에서 우리는 그가 신학적 이단에 대하여 얼마나 경계하고 있었던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칼빈은 Servetus가 정통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삼위일체‘라는 이름을 아주 싫어하고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위일체론자라고 불리면 무조건 모두 무신론자(Atheists)라고 공박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30) 칼빈에 의하면, 세르베투스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개념이라는 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했었다. Servetus는 아카데믹한 접근을 사용했지만 결국 정통 신학의 교리에서 탈선했는데, 칼빈은 세르베투스의 그러한 부분들에 대하여 혹평을 가한 것이다. 다음으로 칼빈은 신학자들의 신학적 견해들을 참조하여 견해를 피력한다고 해서 다 건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Irenaeus나 Tertullian을 인용하는 반대자들을 반박하면서 보여주고 있다. 가령 어떤 이들이 Irenaeus의 『이단논박』(Contra haereses)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아버지만이 유일하신 영원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너무나 부끄러운 무지의 소산이거나 더할 나위없는 사악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저들이 인용하고 있는 저 거룩한 분은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옛날 모세나 선지자들이 말했던 바 그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리스도는 유령(phantom)이거나 더러운 부패 속에서 산출된 어떤 것이라고 주장하던 자들과 대항하여 싸웠던 분이라는 사실을 살폈어야 했다“고 한 바 있다. 31) 그리고 Calvin 선생은 계속하여 Tertullian을 그릇되이 인용하는 자들에 대하여도 반박했다. 칼빈에 의하면 어떤 이들은 터툴리안을 수호성자(patron)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끔 터툴리안의 문체가 난해한 부분들도 있지만, 터툴리안이 주장한 것은 우리가 애매하지 않게 분명하게(in no ambiguous manner) 견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서술한 바 있다고 하면서 터툴리안 인용 반대자들을 반박한 바 있다. 32) 특히 신학자들의 성향이 -물론 그들의 학문적 성향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 보수적이며 신학적으로 건전해야 (theologically sound) 한다. 신학자들의 학문적 연구는 존중되어야 함과 동시에 그의 연구는 기독교의 교리나 신앙고백적인 전통을 와해시켜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법률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신학적 의미에서의 체계정당성(體系正當性)의 원리’를 헤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학문의 자유라는 것은 모든 학문 영역에 있어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학문의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비신앙적인 영역에서 논하는 ‘어떤 하나의 진리’가 아니라 ‘그 진리’에 관계된 학문이기 때문이다.33) 신학이라는 것이 이미 ‘그 진리’의 영향을 배제해 버린다든가 그것의 절대적인 권위를 의심하는 상태에서 신학작업이 된다면 그 자체로서 어떤 연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신학적 세속화 작업’이기 때문이다. 신학적 세속화 작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 오히려 그것은 사탄에게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게도 될 수 있다. 기독교 지성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에 기초하여 세워지고 발전되어가고 또 학문적으로 기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신학적 정로(正路)에서 탈선’한다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그러한 성향을 가진 소수의 인간을 기쁘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지성의 적합한 사용’을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 지성은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범위 안에서 최고도로 효력을 발생하고 영향력을 끼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학문과 문화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 지성의 정수이다. 다원주의를 논하면서 포우(Harrry Lee Poe)는 그의 책 『후기근대세계에서의 기독교인의 증거』(Christian Witness in a Postmodern World)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의 표현은 후기근대사회에서 신학작업을 해야 하는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만약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정체성에 대하여 양면적이거나 당혹해하거나 아니면 적대적이라면, 그때는 누군가 사회 전반이 그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놀라지 않아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그리스도에 대한 시각을 상실하다면, 그때 기독교는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육신으로부터 동떨어진 기독교는 나눠 줄 아무런 독특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34) 4. 神學的 脫線들이 異端으로 간주된 韓國 敎會의 歷史 4.1. 김장호 한국교회 역사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탈선했던 대표적인 경우를 우리는 김장호 목사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1914년 평양신학교를 7회로 졸업했던 김장호 목사는 황해노회에서 안수를 받고 임직원 등을 역임했지만, 그릇된 사상으로 인해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이다. 그가 이단으로 정죄된 것은 두 가지 사실 때문인데, 하나는 그의 자유교회적 교회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적인 성경 해석이었다.35) 홍해 사건을 간조 현상으로 설명하고, 5,000명을 먹인 사건을 그들 전부의 도시락으로 해석함으로써 합리화시켜버렸다.36) 그 결과 그는 그의 반교리적 주장과 자유교회적 교회론 때문에 황해노회 특별위원회로부터 권면을 받았으나, 수정할 의사가 없었으므로 1916년 6월 제20회 황해노회로부터 총대권을 박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기미가 없고 계속하여 노회에 대하여 불복하므로 1918년에는 이단으로 규정받고 면직되었다. 그리고 1923년 총회에서는 이 결의를 수리했다. 결국 김장호 씨는 1918년에 황해도 신원교회를 차지하고 조선기독교회를 창설했다. 그때 노회에서는 김장호 목사가 당시 제령주재 선교사 공위량 (Dr. William C. Kerr) 목사의 서기로 다년간 일했던 것을 감안하여 김목사의 사상이 공위량 선교사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단정 짓지 않을 수 없었다.37) 그때 공위량 목사는 한국장로교선교부로부터 강력한 요청을 받게 되어 1919년 11월 선교사직을 사임했다. 38) 그 후 공위량 선교사는 다른 기독교의 근본진리들과 함께 ‘성경의 무오와 완전신뢰’(the innrrancy and full truthfulness)를 직접 공격한 오번선언(Auburn Affirmation)에 선언하기도 했다. 4.2. 최태용 김교신과 마찬가지로 우찌무라 간조로부터 무교회주의적 영향을 깊이 받은 인물이 최태용(崔泰瑢)이었다. 그는 1925년에 『천래지성』(天來之聲)이라고 하는 잡지를 발행했으며 또한 1928년에는 『영과 진리』를 간행했다. 최태용은 한국의 기성 기독교를 향하여 예언자적 입장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 조선교회는 성경책은 가지고 있지만 성경의 뜻은 가지지 못했다고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당시 조선교회는 전혀 ‘별물’(別物)이라고 함으로써 기존 한국교회의 그릇된 부분들을 지적하려고 했다. 적어도 그는 당시 한국교회가 선교사들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으며, 선교사들의 자본주의적 태도를 과감하게 비난했던 것이다. 그에게서는 신비주의적인 어떤 측면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신앙이 자기를 그리스도에게 던지고 그리스도를 자기로 하는 일이라고 하는 표현은 최태용이 신비주의적 경건을 지닌 인물임을 보여준다.39) 그러나 최태용은 자신의 신비적 체험에 압도되어 기독교 계시가 아직도 미완성된 것으로 해석했다. 즉 그는 그 당시까지 기독교에 예수가 다 나타난 것이 아니며, 아직 그 중대한 부분이 남아 있고, 공관복음과 바울 서신들에 다하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즉 성경의 권위 위에 천래지성이 있고 그것은 곧 최태용 자신에게 임했다고 확신했다. 그럼으로써 계시론에 문제를 야기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신비적 혹은 주관적인 경험에40) 이끌려 갈 때 기록이 완성된 계시관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게 된다. 42) 4.3. 한준명 백남주 유명화 다음으로 우리는 극단적 신비주의자들이면서도 신학적인 문제점들을 야기시킨 또 한 부류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원산의 ‘한준명 백남주’ 그룹이다. 물론 이 부류에 이용도 목사가 가담하기도 했다.43) 백남주와 한준명은 스웨덴보르그의 저서를 읽은 후 감명을 받았다. 그러던 중 이상(異狀)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장성녀(張姓女)의 집에 모여 기도하던 중 괴이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장씨는 떡을 차려놓고 제사 同樣으로 기도하고, 류명화(劉名花)는 실신상태로 예언할 때 한준명 백남주 등은 그 현상을 스氏의 신비설에 부합시켜 ‘入流’라고 해석하여 강신극을 행했다. 44) 그 이후 그들은 평양 교계에 잠입하여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의 그 무리의 형성이 과도기적이었기 때문에 조사발표에 의하면 ‘龍道假敎會’ 혹은 ‘龍道敎會’ 식으로 지칭되었다. 그런데 그 단체는 여러 가지 신학적인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김린서 목사는 그것을 ‘이단육조’라는 제하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성경 권위의 부인. 2. 삼위일체의 부인. 3. 예수의 재림과 신자의 부활 부인. 4. 천계에 대한 이설. 5. 예수의 가형설. 6. 원죄와 속죄 공로 부인 등이다. 이것이 백남주 등이 선포한 소위 ‘새 생명의 길’의 내용으로서 명백한 신학적 오류를 지니고 있는 이설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성부 성자 성신은 각위가 아니라고 했고, 유명화식의 입류가 바로 재림이며 다른 재림은 없다고 했다. 그들은 또 天界에 대하여도 스웨덴보르그의 『천계와 지옥』 혹은 썬다싱의 『영계의 묵시』 등을 성격 묵시에 포함시켜서 “천계에서는 다른 여자와 살림한다”는 식의 이설을 주장했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는 가현설을 주장했다. 이것을 김린서 목사는 假形說이라 일컬었다. 또한 원산 신학산(神學山)의 어느 교수는 한 학생의 질문에 대하여 답하기를 “예수의 공로라든지 속죄라든지 죄의 이탈이라든지 성신 정화라든지 원죄라든지 다 없는 것이요. 예수는 光이요 죄는 暗인데 광이 임하매 암은 없어지는 것뿐이오”라고 대답함으로써 원죄 및 속죄의 공로 등을 부인했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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