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혁명의 때 인가?
1. 혁명은 기존체제가 현실에 안주하고, 시대가 요청하는 것을 외면하거나 기득권세력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신진세력의 진입을 막을 때 제도와 관습, 법령이 과거만을 답습하여 경직될 때 일어난다. 이른바 체제모순 경제모순 기회모순이 제어치(制御値)를 벗어나는 것이다. 사회란 마치 해일(海溢) 뒤에 고기가 잘 잡히며 천둥소리에 공기가 정화되듯 모순이 가득 찰 때 충격이 필요하며 이러한 상태를 가리켜 우리는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거나 혁명의 기운이 감지된다고 말을 한다. 소수세력이 국정을 농단하고 ,한 움큼밖에 안 되는 세력이 갖가지 특혜 속에 신분이 대물림되며 세도를 부리고 곳곳에 악취가 창궐할 때 사람들은 암울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고, 신세계의 도래를 꿈꾸게 된다.
사회가 최소한 개량주의 노선을 걸을 때 혁명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만 이 방법마저 제한을 받거나 실패할 때 사람들은 혁명의 유혹을 받으며 혁명 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음을 알게 된다. 기득권층이나 수구세력의 저항이 완강하여 그들이 손해도 보지 않고 양보도 하지 않을 때 혁명은 필연인 것이다. 역사를 들춰보면 성공한 혁명도 있고 실패한 혁명도 있는데 혁명의 수행은 특성상 권력 장악을 목적으로 하므로 초실정법적(超實定法的)성격을 지니며, 성공하면 충신 실패하면 역적이 되므로 전부(全部)아니면(全無)의 zero-sum 게임인 것이다.
2. 그러나 진정한 혁명은 그 성사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정신과 지향하는 바에 따라 옳은 평가가 내려져야 하니 그것은 주체세력이 누구이며 실행과정은 어떠하며 사회에 대한 기여도는 어느 정도이며 후세에 미친 파장과 영향은 무엇이냐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혁명은 폭군(暴君)이나 악정(惡政)에 항거하는 고전적인 저항권의 이론으로써 설명되는데, 달리 체제 변혁의 수단이 없어서 민중의 고통이 극도에 다다를 때 이는 신이 부여한 자연법적 권리로써 마지막에 쓸 수 있는 물리력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서양 중세의 폭군방벌론(暴君放伐論)에서 발아하여 영국의 존 로크(J Locke)나 프랑스의 쟝 쟈크 루소(J J Rousseau)같은 계몽 사상가들이주장하였으며 동양에서는 맹자(孟子)의 ‘易姓革命論’이나 우리나라 동학(東學)의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도 그 맥락을 같이 하며 중국의 걸(傑) 주(紂)를 멸망시킨 탕왕(湯王)이나 무왕(武王)을 비롯하여 각 왕조의 창시자들도 같은 범주에 들 것이다. 혁명은 개량이나 개혁과는 다르게 체제전환을 꾀하므로 사실적인 문제이고 폭력을 띄므로 유혈(流血)로 이어질 있으며 법절차를 무시하므로 인권이 유린되고 재산권이 침해되는데 과격성이나 급진성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가능하면 지배계급의 항복을 무리 없이 받아내는 무혈혁명(無血革命)이나 명예혁명(名譽革命)이 더욱 값지다고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멀리는 1689년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가까이는 우리나라의 6.10항쟁에서 볼 수 있듯이 민의수렴형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3. 세계 역사상 혁명의 격렬함이나 규모, 영향 면에서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나 1917년 러시아 대혁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인류를 중세 봉건체제에서 근대로 이끌고 인간을 억압하는 낡은 반동체제에서 해방시킨 기념비적인 장거(壯擧)로써 혁명의 고전모델이 되고 있고 혁명연구의 살아있는 표본이다. 혁명은 군사 쿠데타와는 구별되는데 군사 쿠데타는 국민의 합의와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무력으로 합법적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며 혁명은 또 반정(反正)과도 다른데 반정은 조선시대의 중종반정(中宗反正)이나 인조반정(仁祖反正)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군주의 교체만을 목표로 했지 광범위한 제도의 혁파를 도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상층부의 이동정도로 봐야 할 것이다. 혁명에는 숙명적으로 혁명가가 있기 마련인데 민간인 출신으로서는 러시아의 레닌(V Lenin)이나 트로츠키(L Trotsky)가 유명하고 군인으로서는 이집트의 나기브(M Naguib)를 손꼽을 수 있다. 여성으로는 불꽃의 여인 로자 룩셈부르크(R Luxemburg)와 철의 여인 추근(秋瑾)과 박열(朴烈)열사의 연인 가네꼬 후미꼬(金子文子) 가 우리의 눈길을 끌며 아주 가까이는 알제리의 프란츠 파농(F Panon)이나 남미의 체 게바라(C Guevara)는 언제나 들어도 친근한 이름들이다. 단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결행하기 때문에 조국과 인류애에 투철하지 않고서는 감히 대의에 뛰어들 수가 없으며 짧은 영광 긴 고난을 감수하기 때문에 범인(凡人)은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직업 아닌 직업인 것이다. 혁명을 위해 젊음과 사랑도 버리며 뜨거운 동지애와 쓰라린 배신을 맛보고 때로는 깊은 좌절감에 흔들리고 때로는 환희의 절정에도 서는 그들의 일생은 한편의 극적인 드라마(drama)요 한 편의 거대한 서사시(敍事詩)일 것이다.
4. 혁명에는 반드시 대의(大義)가 따른다. ‘구질서 타파’ ‘압제로부터의 탈출’ 보국안민(報國安民) 등 등이 내세우는 기치가 얼마나 사람들의 생활에 가깝고 일반인들이 공명하느냐에 따라 혁명가의 정신무장 국민의 호응 외부세계의 지원 등이 결정되므로 대의야말로 혁명의 추진력이자 원동력이며 생명이자 그 방향(芳香)인 것이다. 참 혁명은 일시에 끝나거나 일과성에 그쳐서는 아니 된다. 혁명의 의의가 퇴색되지 않고 역사 속에 살아있고 사람들이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야 하며 영구혁명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비록 혁명의 주역들은 죽고 없어도 그 실현하려 했고 지향했던 뜻은 각 시대 각 세대에 계승되어 휴머니즘(humanism)의 보고(寶庫)가 되고 부패정권들의 경계가 되어야 한다.
종래 난(亂)으로 격하되고 폄하되던 스팔타쿠스(Spartacus) 쯔빙글리(U Zwingli) 태평천국(太平天國)이나 만적(萬積) 홍경래(洪景來)의 그것도 왕조적 입장에서 해석하거나 체제고수의 입장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때 거기에서 하느님을 닮은 인간으로서 차별 없고 억압 없는 ‘신천지(新天地)’를 꿈꾸며 분연히 일어섰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들어도 조금의 손색이 없는 것이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혁명도 하나의 시대조류(時代潮流)로서 유행을 타기도 하는데 19세기말의 유렵이나 같은 시대 조선에 있어서의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인한 남도의 여러 난(?)들은 세계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한 번 불붙으면 꺼질 줄 몰라 이웃사람이나 이웃국가에 강하게 전파된다. 나는 혁명이 아예 필요하지 않은 사회-인간의 존엄과 위엄이 지켜지는 사회를 바라며, 역사에서 혁명이 장려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수구세력의 탐욕과 발호가 견고하여 달리 방법이 없을 때 이 갈등과 모순을 일거에 해결하는 방편으로서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그 폭발성이나 파장이 아주 크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데 가치가 있으며 하루아침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데 효용이 있고 매력이 있다.
5. 극약은 함부로 처방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혁명도 함부로 거론하는 것은 아니다. 혁명은 아무나 할 수 없으며, 때가 있고, 시대정신이 부를 때 하는 것이다. 혁명은 열혈아(熱血兒)로 표현되듯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진 자 사회적 모순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혁명은 현상(現狀)을 깨뜨리는 것이다. 세상에는 개혁세력이라는 이름의 사람들도 인류애나 박애정신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권력을 쟁탈하기 위하여 이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처음에는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개혁세력도 정권을 잡으면 기득권층으로 화하기 때문에 넘어야 할 대상으로 변질된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경제의 균등이나 기회의 균등 면에서 불균형이 확대되고 이전보다 더 후퇴했다고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들 한다.. 혹시 우리사회가 지금 우리가 그토록 비난하던 사치와 향락 속에 영일이 없던 루이 16세나 니콜라이 2세 때와 같던 난파직전의 상황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역사를 개관(槪觀)하다보면 크고 작은 많은 산들 중에 띄엄띄엄 높은 산봉우리들을 산견(散見)하게 되는데 그것은 혁명의 봉우리인 것이다. 끝으로 혁명을 위해 이름 없이 산화해간 이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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