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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滿洲國) 혹은 만주제국(滿洲帝國)은, 1932년부터 1945년까지 만주에 존재한 나라이다. 이 나라의 국가원수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역임한 푸이였으나, 실제로는 관동군이 지배하는 일본제국의 괴뢰국 상태였다. 만주국의 존재를 인정한 나라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 스페인, 헝가리, 폴란드를 포함한 8개국이었다.
[편집] 국호만주국 외에 대만주국, 체제 이행 후는 만주제국, 대만주제국 등으로 만주국의 공문서에서도 일정하게 쓰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이 정식 국호인가는 불명하지만, 만주국이 가장 일반적인 호칭인 것은 틀림없다. [편집] 개요만주국은 만주족 왕조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아이신죠우뤄 푸이를 원수(집정, 후에 황제)로서, 만주족과 한족, 몽골족으로 이루어진 "만주인"에 의한 민족자결의 원칙에 기초에 둔 국민국가를 이념으로 표방했다. 그러나 실제 통치에 있어서는 1931년의 만주사변에 의해서 이 지역을 점령한 일본제국 육군의 주력부대 중 하나였던 관동군의 무력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로서 사실상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다. 당시의 국제 연맹은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정권이며, 만주는 중화민국의 주권하에 있다"라고 주장하는 중화민국의 입장을 지지해 일본정부를 비난했다. 이것은 일본이 1933년에 국제 연맹을 탈퇴하였던 주요 이유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직후, 일본의 패전과 소비에트 연방의 침공에 의해서, 만주국은 붕괴했다. 그 후, 만주가 중국공산당의 지배 지역이 되면서, 중국으로부터의 만주 독립을 선언한 만주국은 단죄의 대상이 되어,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만주국은 위만주국(僞滿洲國, 약칭은 僞滿)으로 불리고 있다. 영화 《"마지막 황제"(Bernardo Bertolucci감독, 1987년 작품)》는, 푸이의 시선에서 본 만주국의 건국으로부터 멸망까지를 그리고 있다. [편집] 건국과 멸망만주 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1932년 1월에 장쉐량의 중국군을 무찌르고 진저우를 점령하고 만주국 구상을 계획했다. 국제연맹에서는 중국의 리튼 조사단을 파견하였으나 리튼 조사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만주국의 수도는 지금의 창춘인 신징을, 연호는 대동이라 했으며, 황제는 이전 청나라의 황제였던 선통제 푸이로 옹립했다. 1932년 9월에 일만의정서를 조인해 일본이 만주국을 정식으로 승인했으며, 이어 독일, 이탈리아, 교황청, 스페인, 헝가리, 폴란드 등 8개국이 정식으로 만주국을 승인했다. 1934년 9월 제정 수립으로 연호를 강덕으로 고쳤다. 만주국의 실세는 관동군 사령관, 경제는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맡았다. 만주국에는 군대도 있었으나 할힌골 전투 등에서 소련군에게 패하는 등 무능력했다. 만주국은 일본의 꼭두각시 나라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명맥을 유지하다가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의 침공으로 무너졌고 영토는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병합되었다. [편집] 건국의 배경20세기 초의 일본에서는 만주를 영향하에 두기를 원하는 제정 러시아의 남하정책이 일본의 국가 안전보장의 최대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1900년 러시아는 요시카즈단 사변을 타 만주를 점령하고, 권익을 독점 했다. 이것에 대항하여 일본은 미국등과 함께 만주의 각국에의 개방을 주장해, 한층 더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영일 동맹). 마침내 러시아와 일본은 1904년부터 다음 해에 걸쳐 러일전쟁에서는 만주에서 싸워, 일본은 우위에 전개를 진행시켜 포츠머스 조약으로 한반도에 있어서의 자국의 우위의 확보하고,요동 반도 와 동천철도 남부의 조차권을 확보했다. 그 후 일본은 당초의 주장과는 반대로 러시아와 공동 해 만주의 권익의 확보에 나서게 되어,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반발을 불렀다. [편집] 멸망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고, 8월 8일 소련군이 일본에게 최후의 선전 포고까지 하여 하얼빈을 탈환하였다. 8월 15일, 조선의 독립과 일본의 항복으로 결국 만주국은 중화민국에 점령되었다.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만주국 영토를 지배하고 있다. [편집] 군사이 부분의 본문은 만주국의 군사입니다. 만주국에는 일만의정서에 의해서 관동군이 주둔하였다. 1932년부터 만주군을 시작으로 군대가 창설되어, 황제 호위부대인 금위군과 해군, 비행대가 창설되었다. 만주국의 성격상 군대 역시 관동군과의 제휴를 전제로 하여, 관동군 지원 부대로서의 성격이 컸다. [편집] 2키 3스케2키 3스케(일본어: 二キ三スケ)는 당시 만주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5명의 일본인 실력자들에 대한 별명이다. 각자의 이름이 “키”또는 “스케”로 끝나는 것에 유래하고 있다. 그 중에도 도조 히데키는 나중에 총리의 자리까지 올랐다. 기시 노부스케도 일본 패전 후 총리에 올랐다. 아이카와 요시스케는 닛산의 전신인 닛산 콘체른을 만들었다. 특히, 기시 노부스케, 아이카와 요시스케, 마쓰오카 요스케의 3명을, "만주 삼각 동맹"이라고도 부른다. [편집] 만주국의 조선인만주국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참여 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국 독립 이후 정부와 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편집] 바깥 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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