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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연예인 밝힌 졸부들, 어디서 감히 협박질인가?

YOROKOBI 2009. 3. 21. 21:22

흉악범 얼굴을 가리는 것은 변양균·신정아 사건처럼 공인의 얼굴 공개와 비교해서도 불공정하고… 학계에서도 "중대 범죄자는 자발적으로 '공적 인물'이 된 셈이니 얼굴과 신상을 공개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이번 기회에 국가·사회적으로 중대한 범죄에 대해선 공익을 우선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거쳐 새로운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2월 2일자. <조선일보>)

 

이처럼 <조선일보>는 연쇄살인범 강아무개의 얼굴을 최초로 공개했다. 1월 31일자 1면을 보면 연쇄살인범 강아무개가 자신이 기르던 개와 함께 활짝 웃는 얼굴사진이 실려있다. 조선일보가 강아무개의 얼굴을 공개하자 다른 매체들도 속속 따라서 강의 얼굴을 공개했다(사실 조선일보는 강의 얼굴뿐 아니라 재산도 공개했다. 그리고 자기 얼굴이 공개된 것을 안 강아무개가 보인 반응, "내 아들은 어떡하라고?"까지 상세히 인용 보도했다).

 

이 모두가 대상이 '공적인물'이기 때문이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이며 '공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에 이어 강의 얼굴을 공개한 다른 매체들의 논조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문화일보는 여성 피의자였던 신정아씨의 누드를 공개하면서도 이와 비슷한 구실을 댔다.

 

조선일보에 묻고 싶다. 장자연씨 유족에 의해 성매매특별법 위반혐의로 고소된 언론사 사장등은 공적인물인지 아닌지? 또한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하는지 안 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신상이 밝혀지는 것과 은폐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보다 공익에 부합하는지?

 

'장자연 사건'은 이 사회의 중차대한 공익적인 문제들을 한꺼번에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질화되어 있는 연예계 비리 문제에서부터 여성 인권과 남성의 성 횡포, 나아가 사회 부유층의 윤리 문제까지 망라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은 1970년의 '정인숙 사건'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그것은 정치적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에 화류계의 한 여성이 죽음을 맞이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당시 정치 지도층의 성적 문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려 주었다. 반면 지금은 경제적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역시 연예계의 한 여성이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지금 경제 지도층의 성적 문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해 준다.

 

죽음의 원인 제공자들

 

지난 2월 27일 여성 탤런트 장자연은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있었던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표정은 밝은 편이었다. 마침 그녀가 출연 중이던 연속극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던 차였다. 여성 연예인으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29세)에 빛을 보기 시작한 그녀였다.

 

다음 날 그녀는 절친한 이종은(가수 김지훈 부인)씨를 만나 "소속사를 바꾸는 문제가 잘 해결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의 소속사 대표 김아무개씨는 예전 연예인 성 상납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는 데다 소속 연예인을 상대로 소송을 잘 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일주일 후인 3월 7일 이종은씨와 함께 제주도에 놀러 가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3월 7일 그녀는 제주도에 가는 대신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죽기 전인 오후 3시 15분에 이종은씨에게 양해 문자를 보냈고 이어서 3시 30분에는 전 매니저 유장호씨에게 "월요일(9일)에 만나자"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녀의 식은 주검이 언니에게 발견된 것은 당일 저녁이었다.

 

경찰은 우울증으로 인한 단순 자살로 결론을 내렸지만 상중이던 3월 8일 전 매니저 유장호 씨는 홈피에 글을 올려 "고인이 '공공의 적'과 싸울 사람으로 나를 선택했다. 진실을 밝혀 달라"면서 고인의 심경 고백 자필 문건이 있음을 알렸고 빈소인 서울대 분당병원에 나타나서도 일부 기자들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이미 장자연은 일주인 전인 2월 28일 유장호씨를 찾아가 문건을 작성해 놓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가 이종은씨를 만나 "소속사를 옮기는 일이 잘 해결되었다"고 말한 것은 문건 작성 직후였다. 이로 보아 문건은 소속사를 탈 없이 옮기기 위해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홈피의 약속과 달리 유장호씨는 "유족의 뜻에 따라 문건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문건은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건은 다음 날 KBS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유족들이 고소인에 유장호씨를 넣은 것은 그가 약속을 어기고 KBS에 문건을 넘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터이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또는 "배우 장자연의 피해 사례입니다" 등으로 시작되는 문건에는 놀랍게도 그가 소속사 대표에게 폭행을 당했으며 소속사 대표에 의해 술 접대와 성 상납을 강요받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희롱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른바 유력인사들의 명단이 들어 있었다. 또한 이어서 이루어진 유족들의 고소는 이 명단의 실체를 뒷받침해 주었다.

 

3월 18일 KBS와 MBC는 그녀를 희롱 대상으로 삼은 유력 인사가 금융계와 IT업계 그리고 유력 일간지의 사장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신문사 사장에게는 술 접대는 물론 잠자리까지 강요받았다고 했다. 마침 그녀가 남긴 휴대폰 통화에서는 성 상납 강요에 시달리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런 주장은 고인 주변인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마침 고인의 지인 이종은씨는 고인이 찾아와서 "원치 않는 자리에 가야 하는가? 이게 맞는가?"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자기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어떻게 기획사 대표로서 그런 일을. 안 가는 게 맞다"는 조언을 했다고 회고한다.

 

3월 20일 <스포츠서울>은 소속사 전 건물이 로비 장소였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건물의 1층은 술 접대 장소였고 3층은 VIP룸이었다고 하면서 아래 문답을 전하고 있다.

 

- 고 정자연의 문서 내용처럼 정말 술 접대에 시달렸나?(기자 질문)

"그 당시 장자연을 많이 본 것이 사실이다. 1충(와인바)이든 3층(거실과 침실)이든 많이 불려 다니며 술자리에 동석했었다. 또 김 모 대표가 자주 일본을 오갔는데 장자연과 따로 표를 끊어 같이 나가기도 했다. 대우 역시 형편없었다. 장씨에게 폭언을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봤다.(소속사 전 직원 답변)

 

이런 일련의 일들로 보아 장자연의 죽음은 소속사의 횡포와 그녀를 희롱의 대상으로 삼은 유력인사들의 소행이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어디서 감히 협박질까지

 

작년 10월 탤런트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들은 그녀의 죽음을 악플러들의 소행과 직접 연결시키는 기사를 다량으로 내보냈다. 최진실의 경우 유서나 주변인의 직접 증언이 없었음에도 신문들은 악플러들이 그녀를 죽인 것처럼 보도했다. 이에 편승하여 한나라당에서는 '최진실법'까지 만들었고 지금도 계류 중이다.

 

최진실의 죽음에 비해 장자연의 죽음은 그 원인이 단연 분명하다. 그런데도 <조선>을 비롯한 언론들은 왜 그녀를 죽도록 만든 원인은 부각하지 않는 것인지? 사이비 언론이 아니라면 '유력 신문사'가 먼저 스스로 밝혀야 한다. 아니면 다른 신문이 최소한 그 '유력 신문사'가 도대체 어느 신문사인지 정도는 보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지건 진보지건 결국 '가재는 게편'이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고인을 희롱한 유력인사들은 하나같이 혐의 사실을 부인하면서, 자기들이 거명될 경우 명예훼손죄를 걸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보도를 보니 자기들이라는 뉘앙스만 풍겨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에게는 '성 상납'이라는 불쾌한 기억이 남아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딸 나이도 안 되는 수십 명의 젊은 여인들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박정희는 정인숙 사건에 관대(?)했다고 한다. 이미 그때부터 10·26의 추악한 비극은 준비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의 졸부들은 유달리 연예인을 밝히는 것 같다. 그런데 밝힌 만큼 책임도 조금 져야 하지 않겠는가? 떳떳하다면 명예훼손 운운하며 숨어 있지 말고 당당히 나와서 해명하라. 그게 당신들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 지금 국민들은 아예 할 말을 잃고 있다. 어디서 감히 협박질까지 하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전쟁과 사람>을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