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가 당대 로마교회에 권면한 내용 중 한 부분을 밝히려고 합니다.(롬 13:1) 권면이 말씀하는 바를 밝히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나름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산다는 말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는 권면의 근거로 권세의 기원과 존재 목적을 말합니다. 권세의 기원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모든 권세의 가장 밑바탕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누군가가 권세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권세의 존재 목적은 선을 격려하며 지원하고 악을 징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선을 활성화하고 악을 최소화하는 것이 권세의 존재 목적입니다.
교회는 권세의 기원을 알아서 그 권세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복종의 내용으로 바울 사도는 국가가 유지하는 한 방편인 재정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라고 합니다.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권세자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살던 당대는 전제군주에 의해 땅에서 권세를 결정하고 행하던 시대입니다. 비록 후대에 생겨난 말이지만 왕권신수설은 그 당대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사고였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왕과 신을 동격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은 전제군주국이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가 간 정치 제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전제군주국에서의 왕과 같은 존재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대부분 다른 나라와 같이 그 권력이 입법·사법·행정으로 분립되어 있습니다. 입법부는 국회의장, 사법부는 대법원장이 최고 높은 권세를 소유합니다. 행정부는 그 수반으로 대통령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면서 국회의장이나 대법원장과는 다른 차원으로 인정되는 국가의 최고 권력자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세란 전제군주국가에서 같이 어떤 사람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세는 어떤 사람이 아닌 법과 연결됩니다. 일반적으로 공권력이라고 불립니다. 대통령이 다른 두 부의 최고 수장과는 다른 지위와 권력을 갖는 것도 다 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에서 이야기되는 권세란 오늘날로 적용하면 법입니다. 전제군주국가에서는 왕의 말이 법이었습니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는 것은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를 지탱하는 뼈대와 같습니다. 그 법에 근거하여 공권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오늘날 권세의 궁극적인 기원은 바울 사도 당대와 같이 하나님입니다. 법은 선을 활성화하고 악을 최소화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법을 준수함으로 존경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봅시다. 어떤 목사들은 노조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빨갱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빨갱이라는 표현 자체가 북한 체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결과지만 그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반대라는 입장을 가집니다. 노조가 회사라는 공동체를 생각할 때에 권세자라고 할 수 있는 경영자에게 굴복하지 않는 단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조의 근거는 법입니다. 회사보다 더 큰 국가 공동체의 권세 곧 법에서 명시한 바를 따라 생겨난 단체입니다. 법적인 정당한 근거를 가졌다면 노조는 정당합니다.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여야 하는 그리스도인 목사라면 반대할 수 없으며 반대하여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는 가르침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한국 사회의 시각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정당한 것도 있고 부당한 것도 있습니다. 정당한 이유 중 하나가 과거에 잘못된 권력자들에게 행하였던 태도입니다. 유신 시대와 쿠데타를 통한 전두환 정권 시대에 교회가 나타냈던 어떤 모습입니다. 조찬 기도회는 그 중 하나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 반대급부로 교회의 유익을 챙기는 모임입니다. 유신 시대는 그 이전의 법을 훼파하고서 가능하였습니다. 쿠데타는 그 당대의 법을 훼파하고 생겨난 일입니다. 전두환 씨가 정권을 잡을 때 광주 학살이라는 엄청난 불법이 자행되었습니다.
교회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한다는 것은 법을 어기는 잘못된 권력자들에 대해서는 대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을 어기며 권력을 차지하려고 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과 관련하여 요즘 만들어지는 영화를 보면 시민의 편에서 싸우는 신부님은 있지만 목사는 없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잘못된 사람들에 대해 미화하고 찬양하기까지 한다면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교회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여야 합니다. 법을 지키고 그 법이 바르게 시행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의 각 지체들이 말씀하는 바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잘 가르치되 지키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에는 모든 분야에서 각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이 제 역할을 하도록 섬기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리스도인 정치인이라면 정치 활동에서 하나님나라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도록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경제인이라면 경제 활동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도록 세워가야 합니다. 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는 말씀을 어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라면 우리 삶의 전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통찰력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정치에 있어서 통찰력이 꼭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했다면 이명박 현 대통령에 대해 그가 기독교인이며 장로라고 하여서 지지하여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함께 구덩이에 빠진다는 말씀은 이 경우에도 합당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여야 할 뿐 아니라 신앙적 원리로 법을 선용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노조 활동을 하더라도 힘의 원리를 앞세워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필요를 채우려고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측과 함께 공생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일반적인 원리로서 최소한 일을 하고 최대한의 수입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일하고 적절한 수입을 추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 노사 양측으로부터 어려움을 겪더라도 신앙의 원리를 굳게 지키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인이라면 자신이 속한 정당에서 추구하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물론 종교 편향은 절대로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해치는 것일 뿐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오늘날의 삶에 적실하게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대로'란 문자적인 재현이 아니라 그 문자에 담긴 원리를 재현하는 것입니다. 문자와 문자에 담긴 원리가 일치할 수도 있고 불일치할 수도 있습니다. 그 원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에 적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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