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로 '촛불' 1년을 맞았습니다. 경찰은 과잉진압으로 대응했습니다. '1년'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원천봉쇄'로 표현의 자유 자체를 유린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무법지대'입니다. 권력집단이 '헌법'을 개똥으로 취급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현실이니, '촛불 1년'과 함께 꼭 돌아봐야 했던 기념일이 또 하나 있었답니다. 세계 언론자유의 날(5월 3일)입니다. 인간의 기본권리로써 표현의 자유, 그 중요성과 가치를 돌아보고자 UN이 정한 날입니다. 그래서 떠오르는 이름, 바로 최석채 선생입니다.

최석채 선생의 세계 언론자유 영웅 동판
2000년, 역시 5월 3일이었습니다. IPI(국제언론인협회)가 창립 50년을 맞아 언론자유영웅을 선정했는데요. 최석채 선생이 20세기 언론자유 수호에 기여한 인물로 뽑힌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했습니다. 선정이유는 "자유언론의 강력한 옹호자였으며 오랜 언론인 생활 동안 모든 형태의 부정에 반대하는 탁월한 용기를 보여줬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일까요? 그렇다는 것이 언론계의 평가입니다. 선생 이름을 거론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사설이 두 개 있는데요. 그 하나는 대구매일신문 주필 시절에 썼던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입니다. 자유당 정권이 학생들을 정치행사에 동원하는 것을 강력히 비판하여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글 쓴 본인도 테러를 당하는가 하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르죠.
그 다음에는 <조선일보> 재직 시절에 쓴 '호헌 구국운동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입니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사는 길은 오직 호헌 구국의 대의를 내걸로 전체 국민과 더불어 투쟁하는 국민 운동 전개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자각한다"고 주장합니다. 4.19 혁명의 불길을 지핀 사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조선>의 '언론자유'가 이때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겠지요. 그래서 한홍구 교수도 이렇게 말합니다. "최석채나 홍종인의 자세가 바로 '밤의 대통령'에 의해 망가지기 전 조선일보인의 모습이었다"고 말입니다. 홍종인 선생에 대한 소개는 별도 포스팅(http://blog.ohmynews.com/bangzza/260276)을 참고하시구요.

2000년 5월 4일자 PDF
한홍구 교수가 이처럼 최석채 선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위 사설 때문만은 아닙니다. 1968년에 최 선생이 <기자협회보>에 투고한 글도 놀라웠는데요. 박정희 정권 차관 도입에 문제를 제기하다 편집간부들이 고초를 겪은 '신동아 사건'을 보면서 선생은 이렇게 단언합니다.
"어째서 이런 시련이 우리에게 닥쳐왔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신문이 편집인과 기자의 손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이상으로 경영주의 손에 의해서만 움직여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전까지 한국 언론이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양상의 시련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중략)
...지금까지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투쟁하는 경우 언제나 편집인과 경영주가 한 덩어리로 뭉쳐서 싸워왔다. 우리 언론은 이런 투쟁의 경력이 많고 따라서 경험도 풍부하지만 지금은 경영자, 편집인, 기자가 각각 흩어져서 싸우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경험하지 못한 바요, 외국에도 이런 경험은 없다...(중략)
...이런 시점에서 나는 언론의 자유가 외부로부터 침해를 받는다는 사실은 제 2차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언론이 스스로 단결하여 싸우지 못하고 성문을 열어 외적을 불러들인다면 누구에게 구원을 청할 것인가. 언론계는 이 점에 대해서 냉혹한 자기 비판이 있어야 하겠다."

Photo 조선일보 사람들 scan
그러면서 선생은 사주에 맞설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노조 결성'과 '사원 주주'를 제시합니다. 앞으로 언론자유의 최대 적은 사주가 될 것이라는 선생의 '예언'은 그로부터 7년 후인 '동아투위' 사건으로 정확히 맞아떨어지죠.
그리고 1971년 12월, 선생은 10여년 몸담았던 <조선>을 떠납니다. <조선>은 "정부에서 국가보위법을 지지하는 사설을 쓰라고 계속 압력을 넣자 선생이 신문사를 살리려면 내가 나가는 수밖에 없다며 사표를 내고 떠나갔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꼭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위 '기자협회보' 글 때문입니다. 한홍구 교수 말대로 선생이 <조선일보>를 떠난 시점은 "조선일보가 밤의 대통령에 의해 망가지기 시작한 때"와 일치하니까요. '언론자유'보다 '사주자유'가 앞서는 <조선>의 '변태'를, 선생이 어떻게 지켜봤을지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선생에게는 '조선일보 사람'이란 딱지가 붙어있습니다. 꼭 그렇게 볼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실제로 선생 이력을 살펴보면 언론인으로 재직한 기간은 34년 정도 됩니다. 그 중 조선일보에 있었던 기간은 10여 년, 나머지 시간은 대구매일신문, 경향신문, 문화방송 등에서 보냈지요.

촛불 1년, 신분을 밝힌 로이터 통신 기자조차 연행하는 경찰 Photo 오마이뉴스 최윤석
이제 정리해볼까요.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PD들이 잡혀갑니다. 촛불 '1년'을 기념하는 '문화제'를 원천봉쇄하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을 240명이나 잡아갔습니다. 감사원에게 MBC 감사권을 부여하는 개정안을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세계 언론 자유의 날'에 즈음하여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들입니다.
이렇게 분명히 표현의 자유가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이에 분개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언론 자유영웅'을 배출했다는 신문에서조차 '한 마디'도 없습니다. '조선일보 사람들'을 보면 '할 말은 하는 신문' 같은데, 별 말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식입니다.
그러니 '할 말이 아닌가 보다' 넘어갑니다. 헛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이 최석채 선생을 '놔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겁니다. 이미 오래 전 '언론자유'와 '사주자유'를 바꿔먹었다는 사실을 숨기기에 더 없이 좋으니까요. 게다가 한 세기를 대표하는 언론자유 영웅으로 선정되기까지 했으니, 자신들의 실체를 위장하는 '가면'으로는 그만이겠지요.
그래서 '최석채 가면'을 벗겨내야 합니다. 더구나 '조선일보 사람들' 면면을 보면 이런 '가면' 참 많이도 등장하거든요? 하나하나 남김없이, 모조리 벗겨내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을 <조선>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조선>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길입니다. '박쥐신문'에게서 '최석채 가면'을 뜯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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