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스크랩] (71) 천당도 없고 지옥도 없다, 머리 위로 푸른 하늘만 - 그노시스와 아포칼립스

YOROKOBI 2009. 7. 11. 18:29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71) 천당도 없고 지옥도 없다, 머리 위로 푸른 하늘만

 

그노시스와 아포칼립스

 

 

 

| 제78호 | 20080907 입력

 

 

예수시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신약성서밖에 없을까? 20세기 신학의 놀라운 발전은 신약성서 외에 성서의 배경을 알 수 있는 많은 역사자료와 고고학자료와 새로운 문헌자료를 발견하고 해석했다는 데 있다.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역사서가 예수와 동시대를 산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c.100)의 저술들이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멸망 이전의 갈릴리 전투를 이끈 유대인 장수였는데 투항하여 로마 황제의 비호를 받았다. 로마에서 로마인으로 살면서 유대인의 당대사를 썼다. 이 요세푸스의 역사서에는 예수라는 역사적 캐릭터는 실제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리얼한 역사적 인물로서 중후하게 취급되고 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바로 세례요한이 처형된 마캐루스 성채의 헤롯궁전이다. 사해의 동편에 있다. BC 100년에 지어졌는데 BC 30년에 헤롯대왕이 증축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살로메는 요염한 춤을 춘 것이다. 이 마캐루스 성채의 동쪽 절벽 기슭에 세례요한이 갇혀 있었던 동굴감옥도 스산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석양에 성채를 오르는데 강풍이 휘몰아 쳤다. 리차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중 “일곱 망사의 춤”의 선율이 내 귓전에 흐른다. 동굴감옥을 들여다보는 순간 2000년 세월의 동록에 숨겨진 섬뜩한 그 무엇이 나를 엄습한다. 그리고 쟁반에 올려진 세례요한의 머리가 퍼뜩 떠오른다. 이 인류의 광포(狂暴)한 역사가 과연 우리 실존에 무엇을 말하려는가? 숙고하고 또 숙고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임진권 기자

 


제5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눈앞에 있는 것을 먼저 알라. 그리하면 너로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이 다 너에게 드러나리라. 2 감추인 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1 Jesus said, “Know what is in front of your face, and what is hidden from you will be disclosed to you. 2 For there is nothing hidden that will not be revealed.”

우리는 종교를 생각할 때, 항상 비의적이고 밀교적이고 신비적인 그 무엇이 있어야만 종교가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라는 것도 항상 신비적이고 초월적이며 인간의 예지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자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항상 자기에게 남이 료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감추어져 있다고 선전하며, 자기만 알고 있는 우주의 비밀이 있다고 뽐낸다.

한의학이 서양의학에 뒤질 수밖에 없는 것도, 항상 한의학을 한다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비방(秘方)이라는 것을 꼬불치기 때문이다. 수량화·계량화되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고, 일상적 언어로 쉽게 다 설명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그것이 비방으로 감추어져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비방일수록 공개되어야만 인류의 보편적 자산이 될 수 있고 인류 건강의 증진을 위하여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발전이란 명백한 소통을 통하여 이루어져 온 것이다.

멀리 바라보이는 것이 현재 요르단에 속해 있는 마캐루스 성채의 전경이다. 그 밑으로 옥빛의 사해가 전개되고, 사해 건너편 유대 광야엔 마사다 요새가 있다.
도마복음 5장의 메시지는 현행 사복음서의 정신과 크게 어긋남이 없다. 예수는 이렇게 일갈한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 숨기거나 됫박으로 덮어 두는 자는 없느니라.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두나니, 이는 방 안에 들어오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Q42, 마 5:15, 눅 11:33). 참으로 통쾌한 일언이 아닐 수 없다. 예수의 천국운동은 명명백백한 운동이었다. 숨김이나 꼬불침이 없는, 밀교(密敎) 아닌 현교(顯敎)였다. 예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 도마복음서 제5장의 내용은 공관복음서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 감추어 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밝혀지게 마련이다.(막 4:22, 공역).
2.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눅 8:17).
3.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 10:26, Q45).
4.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눅 12:2, Q45).

1과 2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연이어 등장하고 있으며, 앞서 말한 등경 위의 등불의 비유로서 그 의미가 강화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브레데가 지적한 ‘메시아 비밀’과도 관련되며 예수의 영광이 지금은 감추어져 있지만 언젠간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게 되리라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물론 기독론적·종말론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천국의 선포를 전제하고 있다. 그 천국의 성격이 궁극적으로 비의적인 것이 아니며 결국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고 알려질 것이라는 확신이 표방되고 있는 것이다.

3은 천국운동을 하는 제자들에게, 그들에게 가해질 박해의 공포를 대면케 하기 위하여 진리의 현현(the emergence of truth)의 필연성을 선포하는 맥락에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두려워하지 말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4는 당대의 바리새인과 같은 지식인들의 외식, 곧 위선(hypocrisy)을 경계하는 맥락에서 쓰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공관복음서의 다양한 맥락들의 원형을 도마복음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텍스트비평을 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4개의 언급보다 도마복음 본장 2절의 “감추인 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라는 단순한 명제가 역사적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의 형태에 가까울 것이라고 시인한다. 예수의 단순한 언급이 사람들의 기억을 통하여 전달될 때, 또 식자들의 필사를 통하여 전달될 때 변형되어가는 모습, 그리고 그 말이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기술되는 양식적 변화의 한 모델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도마복음서가 이러한 예수의 언급이 파생하게 된 가장 근원적인 맥락의 남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2절에서 1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절은 1절 후반부의 반복에 불과하다. 2절이 일반론의 형태로 다듬어져 있다면, 1절 후반부는 2인칭 단수를 대상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만 다르다.

“너로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이 다 너에게 드러나리라.” ‘감추어져 있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은 계시(啓示, revelation)를 의미한다. 심오한 모든 것들, 신비롭게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모두 명명백백하게 계시된다는 것이다. ‘계시’란 열어(啓) 보여진다(示)는 뜻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계시될 수 있는가? 예수님의 말씀만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믿으면 되는가? 열심히 천장이 높은 교회당에 나가 성직자의 설교를 듣거나 미사에 참여하기만 하면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 본인의 최종적 대답은 이러하다: “네 눈앞에 있는 것을 보라! 바로 네 눈앞에, 네 면전에 있는 것을 알라!” ‘알라’는 동사에 쓰인 희랍어는 ‘그노티’(gnothi), 델피의 아폴로신전에 쓰인 “너 자신을 알라”의 ‘알라’와 같은 단어이며, 또 그노시스와 같은 어원이다. 다시 말해서 앎(그노시스)이 계시(아포칼리피스)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계시는 앎으로 말미암아 생긴다는 것이다.

앎이란 어떤 앎인가? 신비로운, 초자연적인, 미래에 계시될, 태고에 숨어 있는 그러한 어마어마한 것들이 아니라 네 눈앞에 보이는 것! 네 면전에 펼쳐져 있는 것! 풀 한 포기, 조약돌 한 줌, 뒷산의 진달래, 창공의 제비! 바로 이런 것들을 알라! 여기 화이트헤드가 절규한 말을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원자폭탄을 만들어 내는 현대물리학이 살아 있는 풀 한 포기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그 한마디를. 우리 눈앞에 깔린 것이 신비요, 계시의 대상이 아닌가?

레논의 이매진(Imagine)의 첫 줄은 이러하다: “천당이 없다고 상상해 봐! 상상하긴 너무도 쉽잖아.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아래는 지옥도 없고, 머리 위로 푸른 하늘만 펼쳐지고 있잖아. 상상해 봐!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단지 오늘만을 위해 살고 있다고(living for today).”

천국은 태고의 어제에 있는 것도 아니요, 계시될 내일에 있는 것도 아니요, 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요, 저 땅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네 눈앞에, ‘지금 여기’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을 먼저 알라! 그리하면 모든 우주의 신비가 너에게 계시되리라!
출처 : (71) 천당도 없고 지옥도 없다, 머리 위로 푸른 하늘만 - 그노시스와 아포칼립스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