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스크랩] (74) 이 세계는 지배자가 철인이 될 때만 정의롭다 - 플라톤의 국가와 예수의 천국

YOROKOBI 2009. 7. 11. 18:30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 (74) 이 세계는 지배자가 철인이 될 때만 정의롭다

플라톤의 국가와 예수의 천국

 

 

도올 | 제81호 | 20080927 입력

 

 

나는 어려서부터 사도 바울을 매우 존경하였다. 예수는 신의 아들인지라 내가 직접 동일시하기에는 벅찬 인물이었지만, 바울은 내가 동일시할 수 있었던 역사적 인간이었으며 풍요로운 지식으로 가득 찬 대사상가였다. 나는 그의 헬레니즘의 소양에서 우러나오는 철학적 언어에 곧잘 심취했다. 20세 전후에 나는 관절염을 심하게 앓았는데,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이 말한 “내 육체의 가시”를 나는 나와 같은 관절염으로 해석했다. 바울과 나는 청년 시절 동병상련의 관계가 되었다. 바울의 본거지는 안티옥이었다. 나는 꼭 그 안티옥(Antioch)이라는 곳을 가 보고 싶었다. 안티옥에서 지중해로 나아가는 항구가 실루기아(Seleucia), 바울과 바나바(Barnabas)가 역사적인 제1차 전도 여행을 떠난 곳이 바로 이 실루기아 항구인 것이다. 그것은 예수운동이 아닌 기독교(Christianity)의 첫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Cyprus)에 가서…”(행 13:4). 여기 떠나가는 바울의 배, 그토록 오래 오매불망 사모했던 이방인 전도의 사도를 심상에 그려 보는 나의 정취는 어떠했을까? 少年春夢海涯帆, 人世興衰足下霧. 소년의 푸른 꿈은 아직도 저 바다 끝에 돛을 달고 떠나는데, 인간세의 흥망성쇠는 내 발 아래 부서지는 파도의 안개 같아라…. 안티옥 실루기아 해변에서 나는 이렇게 읊었다. 임진권 기자

 

제7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복되도다 사자여! 사람이 그대를 먹어삼키기에 그대는 사람이 되는도다. 2 저주 있을진저 사람이여! 사자가 그대를 먹어삼킬 것이니, 사자가 사람이 될 것이로다.”
1 Jesus said, “Blessed is the lion that the human will eat, so that the lion becomes human. 2 And cursed is the human that the lion will eat, and the lion will become human.”

도마복음을 읽다 보면 우리는 당혹하게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선 그 뜻이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살아있는 예수의 함축적인 말씀이다. 그러기에 반드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도1:도마복음 제1장의 약어). 해석의 과정 자체가 추구의 과정이며, 그 추구의 결과 우리는 발견을 하게 되지만, 발견의 순간 우리는 번민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번민에 휩싸이는 순간이 있어야만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고, 따라서 자기를 지배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된다(도2). 사실 제2장의 이 예수 말씀 속에 본 장의 해답은 이미 다 주어져 있다.

자기를 지배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즉 ‘내가 나의 왕이 된다’고 하는 명제 속에 본 장의 의미 체계는 다 함축되어 있다. 도마복음을 읽어 나가는 행위 자체가 추구와 발견의 과정이다. 그러나 그 해석을 발견했을 때 번민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은, 진리의 실천이라는 과제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도마복음은 한가로운 독서의 대상이 아니라 각고의 깨달음의 과정이 되어야 하며, 깨달음은 반드시 나의 삶 속에서 실천될 때 경이(驚異)로 전위하게 되는 것이다. “사자를 먹는다” 운운,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일까?

많은 주석가들이 도마복음 언어의 상징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본 장의 개념들을 객체화된 사물로서 규정하고 그 의미를 찾으려 했다. 상당히 수준 높은 주석가도, 본 장에서 말하는 사람과 사자를 실제로 사람이 사자고기를 먹는 다이어트(diet)의 문제로 파악하고, 사람과 사자 간의 종(種)적인 하이어라키를 운운하는 황당한 주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운동의 식탁교제(the table fellowship)에 있어서의 모종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Richard Valantasis, The Gospel of Thomas. pp.64~5.).

실루기아 항구는 BC 300년경 셀루시우스 1세 니카토르(BC 301~281 재위)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시리아의 두 주요 카라반 루트의 종점으로서 신약시대에는 지중해 동안(東岸)의 가장 중요한 상업지 중 하나였다. 이곳이 바로 그 본 항구의 유적이며, 바울의 배가 떠난 곳은 여기서 1㎞ 정도 떨어져 있다. 두 바위 사이로 떠났다는 민간전승이 있다. 아마도 바울 일행은 사람의 눈을 피해 밀항지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주석들은 1세기 희랍어문화권의 문학 전통의 다양한 심벌리즘을 망각하고 있다. 일례를 들면, 플라톤의 대화 중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는 그 유명한 『이상국가론(Republic)』을 펼쳐 보자! 재미있게도 이 『이상국가론』 속에서 우리는 도마복음의 심벌리즘의 원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국가론』은 “정의로운 사람이 정의롭지 못한 사람에 비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과연 정의는 훌륭한 것이고 불의는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 정당한 해답을 시도하려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도전이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자와 정의롭지 못한 자, 두 사람을 대비시켜 이러한 본질적 문제를 논구한다는 것에 어려움 느끼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국가의 문제로 확대시킬 것을 제안한다. 다시 말해서 국가 속에서의 정의 문제를 이야기한 후에, 그것의 축소판으로서의 인간 속에서 정의를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다. 그들은 대화를 통해 유감없이 정의가 실현되는 이상국가를 그려 본다. 그러나 결국 이상국가란, 이상적 법률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사회가 아니라, 오랜 기간의 훈련을 통해 이성적으로 단련된 선남선녀에 의하여 다스려질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세계는 지배자들이 철인이 될 때만이 정의롭게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배자 철인들은 선(善)의 이데아에 의하여 지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지배하는 선의 이데아는 신의 온전함(divine perfection)이며, 그것은 인간세에서 인간적인 온전함(human perfection)인 정의를 구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플라톤의 국가론은 단순한 국가이론이기에 앞서 인간의 삶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정의로운 국가는 실현되지 않을지 몰라도 개인은 항상 정의로울 수 있으며,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그 정의를 실천하고 영예롭게 정의를 위해 목숨을 던졌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너무 철학과 종교를 별개의 분야인 것처럼 생각하여 이러한 논의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질 못하지만, 사실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국가론과 예수가 실천하려고 하는 천국운동은 그 본질에서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예수의 천국도 결국 이 지상에 어떻게 정의로운 하나님의 지배(basileia, reign)를 실현하는가에 관한 논의다. 신적인 온전함(이데아의 세계)을 어떻게 인간적인 온전함으로서 구현시키느냐에 관한 논의인 것이다. 단지 예수는 그 논의를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으로서 우리 실존에 직접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플라톤은 인간세의 국가 형태를 그 이상적인 형태로부터 타락의 단계에 따라 5가지로 분류한다. 1)최선자(最善者)정체 2)명예지상정체 3)과두정체 4)민주정체 5)참주정체. 그리고 이 정체에 상응하는 인간형을 또다시 5가지로 설정한다. 1)최선자정체적 인간 2)명예지상정체적 인간 3)과두정체적 인간 4)민주정체적 인간 5)참주정체적 인간. 그러니까 플라톤에게는 민주정치란 좋은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다. 민주정체적 인간은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고 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에 넘쳐 타락한 인간이다. 민주정체는 자유와 방종으로 인하여 참주정체를 탄생시키는데, 결국 참주(tyrant)는 개인적 야망의 달성을 위해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민중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국가사회를 파멸시키고 만다.

다시 말해서 참주정체야말로 인간세의 최악의 국가 형태이며, 참주정체적 인간이야말로 인간 중에 가장 올바르지 못한 인간이며 가장 비참한 자다. 최선의 인간인 철인 치자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간이다.『이상국가론』제8권은 참주정체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제9권에서 우리는 참주정체적 인간에 관해 놀랍도록 적나라한 묘사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인간 속에 내재하는 ‘사자(leon)’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에로스가 참주가 되어 한 사람 안에 거주하면서 그 혼(魂)의 모든 것을 조종하는 그런 인간의 한 모습이다. 여기서 도마복음의 상징언어가 풀려 나간다.
출처 : (74) 이 세계는 지배자가 철인이 될 때만 정의롭다 - 플라톤의 국가와 예수의 천국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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