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천성관 사태의 재구성 :14일밤 8시부터 9시 사이에는 무슨 일이?

YOROKOBI 2009. 7. 16. 21:10

7월 14일. 청문회 다음날.

 

개인적 일정에 쫓겨 바쁜 틈에 그날은 모처럼 8시 뉴스와 9시 뉴스를 모두 시청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당연히 핵심적인 이슈로 떠오른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8시에 시청할 수 있는 SBS와 KBS2의 두 뉴스 프로그램을 번갈아 돌려보면서 시청을 하는데, 마침 그날은 집중호우에 따른 심각한 피해가 전국적으로 발생해 역시나 천성관 뉴스는 한참이나 뒤로 밀렸습니다.

 

천성관 뉴스를 찾아 번갈아 돌려보는 중에 KBS2에서 위증에 대한 취재가 나오더군요. 국회 청문회에서 주택자금으로 15억을 빌려준 박씨와 일본으로 부부동반 골프여행을 떠났던 의혹에 대해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아서 같은 비행기에 탔는지도 몰랐다는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답변이 위증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등장했습니다. 천씨 부부와 박씨 부부 4명의 비행기표가 천성관씨의 신용카드로 한번에 결제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청문회 당시에도 밝혀졌지만 부인 두명은 면세점에서 3천달러짜리 명품 가방을 똑같이 구입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톱뉴스로 장식할만한 내용이었지만 상당히 뒤로 밀려 방송되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화제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잠시 다른 것을 하면서 9시에 방영되는 MBC 뉴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추이가 사뭇 궁금했고 MBC에서는 어떤 내용을 보여줄 지 기대를 하고 있었던 참입니다. 그런데 9시 MBC 뉴스를 시청하자마자 천성관 사의표명이라는 헤드라인 뉴스가 뜨더군요.

 

바로 7월 14일 저녁 8시와 9시 사이에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가 사퇴를 한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MBC 뉴스에 대한 기대는 맥이 빠져버렸습니다. 천성관 후보자의 의혹에 대한 취재내용은 사라지고 그가 사의를 표명했고 청와대가 즉각 수용했다는 보도만이 짧게 이어졌습니다. 천성관 후보자의 사퇴는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짧은 순간에 조속한 결정으로 주도면밀하게 조율되었다는 추측이 남았습니다. 결국 위증의 문제가 9시 뉴스를 타고 전국적으로 여론이 퍼질 수 있었던 기회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일부 국민은 내용을 까마득히 모르고 지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13일의 청문회에 대해 단지 별 문제 없었다는 식의 짤막한 수구언론의 보도와 거의 스치고 지나가는 KBS 9시뉴스를 보았던 사람들은 다음날 갑자기 생뚱맞은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위법사유가 명확히 드러난 것은 없지 않느냐"면서 임명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청와대의 옹호를 보아오다가 다음날 갑자기 이명박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반하는 것은 안돼"라는 생뚱맞은 답변을 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명박의 청와대는 위법사유가 명백히 잡히지 않는 한 수구언론의 비호를 받아가며 천성관 내정자로 밀고 간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고 강력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4일 8시 뉴스에서 국회 청문회 위증에 대한 강력하고 명백한 증거들이 취재결과 등장하자 신속히 여론의 확산을 차단하고 천성관을 포기하는 결정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정대로라면 MBC의 9시 뉴스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제일 첫 뉴스로 등장해 전국적인 시청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들도 순식간에 천성관이 위증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뻔하게 인식할 순간이 바로 눈 앞에 닥칠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청와대가 더 이상 옹호를 하다가는 망신을 당할 입장에 놓인 것입니다.

 

왜 망신을 당할 수 밖에 없었느냐는 바로 국회 청문회 에서 천성관 내정자가 위증죄를 범했다는 증거가 명백해져 민주당의 고소,고발 여부 결정에 확실한 동력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증인인 박씨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고 일본으로 출국하면서까지 보호받던 천성관씨에게 위증죄의 강력한 물증이 등장해서 국민들에게 명백히 인식될 상황이었고 여론의 비판까지 감수하면서 끝까지 옹호해도 민주당의 고발에 의해 위증죄로 재판까지 가게 되면 명백한 증거에 의해 결국은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말에 따르면 관세청에 면세품 자료를 요청했더니 허위자료를 주웠다고 합니다. 정부 부처에 의해 허위자료까지 작성될 정도로 비호받았던 것입니다. 증인은 출국하고 정부 부처는 허위자료까지 제출할 정도로 비호받으면서 위법사유가 은폐되던 검찰총장 내정자였으나 결국은 위증죄에 대한 강력한 물증들까지는 미처 막을 수 없게 되자 그 내용이 전국적 방송을 타기 전에 서둘러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전날까지도 청백리라면서 옹호하던 한나라당 의원들, 더군다나 작은 교외라던 아들의 결혼식장은 알고보니 6성급 호텔의 호화 결혼식장이었던 것이 밝혀지는 낮뜨거운 장면들, 정부부처에 의해 허위자료까지 제출되며 비호받던 순간들, 위법사유가 명확히 드러난 게 없다면서 그대로 임명하겠다는 청와대의 행보가 결국은 명백한 위증죄의 물증에 의해 무너진 것입니다. 그리고 9시 뉴스를 타고 전국으로 퍼지기 전에 미리 차단하는 조속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다음날 일부 수구신문에는 이명박에 대한 찬양으로 생뚱맞게 바뀌더군요. 결국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사퇴과정에서도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의 결과는 빛을 발했습니다. 그 결과는 수구언론의 보도에 있어서 정작 중요한 진실은 전달된 적도 없이 논리의 중간 과정이 붕 떠버리고 만 것입니다. 전날에는 천성관 내정자의 뉴스는 거의 보도되지 않다가 다음날 자초지종은 온데간데 없이 천성관 사퇴가 마치 이명박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강조로 이루어진 것처럼 등장하면서 되레 생뚱맞은 이명박 찬양으로 이어지는 황당한 연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금방 드러났습니다. 진실을 방송하려는 일부 기자들과 아직은 진실 보도를 할 수 있는 방송이 남아있는 한 끝까지 비호하면서 밀어부치려던 정권의 방침도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방송악법이 통과되어 언론독과점이 일어나고 정언유착의 고리가 단단해진 상태였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천성관씨는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을 것입니다. 당장은 코 앞에 닥친 MBC 이사진을 장악하려는 이명박 정권의 마수가 걱정이 될 수 밖에 없군요. 그리 된다면 모든 방송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정권의 방침만 일방적으로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천성관 문제는 야당이 살아있고 아직도 그나마 진실된 언론의 보도가 일부 살아있어서 해결된 것일 뿐입니다. 아직 장악되지 않은 방송의 보도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고 급박하게 천성관 내정자를 포기하는 결정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언론을 통제하려는 이명박 정권은 아직 통제하지 못하는 언론의 동향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뻔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오후 3시에도 검찰이 공식적으로 해명자료까지 내놓으면서 비호했고 다른 정부부처도 허위자료까지 제출하면서 비호했던 상황이 어찌 청와대의 입김없이 가능했겠습니까? 이것은 청와대의 인사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비리문제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은폐하고 비호하려던 청와대의 의도가 꺽인 것일 뿐입니다.

 

단지 이것을 청와대 인사검증의 실패문제로 논하는 것은 그 표면만을 살짝 건드리고 정작 문제가 발생한 본질과 핵심은 살펴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진실을 은폐하고 결정적인 위법사유가 드러나는 것을 막으면서 정권의 입맛에 충성하는 사람을 검찰총장에 앉히려던 청와대의 의도가 살아있는 야당과 아직까지 힘겹게 버티며 살아있는 일부 언론에 의해 좌절된 것일 뿐입니다.

 

국민 앞에 명백하게 드러날 순간에 놓인 천성관 내정자의 위증 문제는 이명박의 BBK 사건을 국민들 머릿 속에서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국회 청문회의 영상에 등장한 천성관의 명백한 위증 의혹은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에 의해 주어가 없다면서 비호되어진 이명박의 동영상을 연상시킵니다. BBK를 자신이 설립했다고 말하는 이명박의 동영상은 천성관의 위증 의혹과 맞물려 떠오를 수 밖에 없고 위증죄에 대한 강력한 물증들이 등장하는 이상 앞으로 이 문제가 정권의 의도와는 반대로 뉴스에 계속 이어진다면 정권 핵심부가 은폐되기를 바라는 BBK에 대한 현직 대통령의 거짓말 의혹에 대한 국민들의 기억을 건드리기 때문에 끝까지 비호할 수 없었던 이유도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노무현 대통령만 부당한 탄압을 받았구나 하는 강력한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상황도 이명박 정권은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을 주장했다는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검찰의 부당한 이중잣대는 국민들에게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새삼 국민들의 마음 속에 이명박 정권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을 억울하게 빼앗긴 상실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가던 순간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넘어가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비열한 정치보복이 부당한 잣대로 이루어졌음이 국민들 마음 속에 지속적으로 환기되는 상황을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청문회 다음날 14일에 제기되어 나온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도 천성관 본인에게는 버틸 수 없는 치명적 약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의해 부실복무의 증인까지 등장한 마당에 자칫 잘못하면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의무를 대신한 천성관 후보자의 아들이 다시금 군복무를 제대로 해야할 위기가 닥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검찰총장이라는 자리에 가는 것을 막았을 뿐 여러가지 불법이 의심되는 문제들은 잊혀진 채 사라지겠지요.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도 분명히 증언까지 오마이뉴스 언론에 등장했지만 과연 누가 수사를 할까요?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이 정도까지 입니다.

 

천성관의 검찰총장 내정부터 사퇴까지 왜곡은 계속되었고 단지 진실이 해놓은 것은 검찰총장이 되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 뿐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근본적 문제점 중 해결된 것은 없고 단지 정권의 기획이 잠시 좌절되고 정지된 것 뿐입니다. 명백한 물증의 벽에 부딪치자 이명박 정권이 스스로 위기관리 차원에서 차단한 것 뿐입니다.

 

결론으로 요약해서 말하자면,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사태는 청와대의 검증 실패가 아니라 청와대가 자신의 시녀로 낙점한 자를 검찰총장에 앉히려던 의도가 좌절된 것 뿐입니다. 그 좌절은 민주당과 아직 버티며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일부 언론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청와대는 오히려 비호하고 은폐하기 바빴다는 사실이 정황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언론과 여론의 명백한 추이를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는 순간에 천성관 내정자를 포기하면서 마치 그것이 청와대의 대단한 결정인 마냥 180도 태도를 바꾸는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이 14일 밤 8시 뉴스와 9시 뉴스 사이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의 이유가 되는 전모일 것입니다.

 

아직 충분히 통제할 수 없는 몇몇 살아있는 언론을 다룰 때는 면밀한 감시와 빠른 대응으로 올바른 보도와 여론을 미리 입막음하고 어용언론을 동원해 사태의 추이를 호도하는 것이 반민주적 정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