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청와대 예배 뭐가 문제냐” | |
"앞으로도 부르면 가겠다" | |
김진홍 목사(활빈교회)가 지난달 청와대 초청 예배와 관련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개인 신앙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종교편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
정치신부.권력목사
정치 언저리서 "기생"하지말고 본분을 찼아야...
아닌게 아니라 요즈음 이른바 ‘성직자’들의 집단적 정치의사 표시는 말할 것도 없고, ‘관료’ 내지는 ‘정치인’의 자리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더 높은자리 로비’까지 하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종교인의 청렴성을 빙자하여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 초심 때의 순수함과는 달리 그 끝이 좋은 꼴을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같은 종교인으로 걱정이 앞선다. 서산.사명대사 이전에도 고려의 묘청.신돈스님 등은 ‘정치승’이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묘청은 단재 신채호로부터 ‘자주 진보’의 상징으로 평가받았고, 사대주의자 김부식과 경쟁관계에 있는 정지상은 스님을 ‘성인’이라고 불렀다. 공민왕을 도와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당시 개혁의 얼굴이던 신돈 역시 말년은 깔끔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더불어 고려왕조도 쇠망의 내리막 길로 들어섰다. 두 스님의 역사적 평가가 후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종교인 특유의 ‘이상론’에 근거하여 비현실적인 정치행위가 결국 실패로 끝남에 따라 그 부담이 고스란히 나라와 백성에게 돌아간 까닭이다. 물론 그들은 모든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신분 때문에 이를 이용하기 위한 정치적인 감언이설의 희생양이기도 하지만, 추대(?)에 동의한 그 개인의 정치적 허물도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권력자란 필요할 땐 꽃가마를 보내지만 용도가 폐기되면 사약을 내린다는 양면성을 미리 읽어내는 지혜를 갖추어야 했다. 조선건국의 주역 이성계의 정신적 스승인 무학대사는 ‘영원한 조언자’로 남은 덕분에 역사가들로부터 호평은 아니더라도 혹평은 피할 수 있었다. 정치인이 어리석다고 ‘조언자’가 직접 정치하겠다고 나서면 그건 더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할 수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종교인의 정치행위는 후자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현재 정치 언저리에서 ‘오버’하면서 ‘망국의 예비행위’인 신권정치를 외치는 종교인은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본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인명진 목사, 오충일 목사 등이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킬 수 없다’거나 ‘한나라당도 목회현장’이라는 위헌적 사견(邪見) 내지 이단사설을 늘어놓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아마추어요, 종교적으로는 천마외도(天魔外道)와 다름없다. 또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인지라 통일부와 과거사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이재정 신부, 송기인 신부의 모습 역시 생경스런 풍경으로 비친다. 더불어 뉴라이트 등 정치운동현장에서 펄럭이는 회색 장삼자락 또한 어울리지 않긴 마찬가지다. 사명대사의 열반지인 해인사 홍제암의 주련은 ‘정치승’의 또다른 참회록이라고 하겠다. 귀거래사에서 ‘잠깐동안 정치를 한 것은 임금님의 명령을 어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오, 벼슬을 팽개치고 한밤중에 산으로 도망쳐 온 것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기 위함’이라고 고백했다. 후세 종교인들은 스승인 부처님 하느님을 잘 모시고 가야할 길만 가라는 충고이기도 하다. 그 선시의 원문은 이러하다. “삼일공행(三日公行)은 불역군명(不逆君命)이요 야반귀산(夜半歸山)은 불부사훈(不負師訓)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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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조가 쇠망한 원인은,정치에 기생하는 권력승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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