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작전상황도를 희생자 가족이 빼앗아 메모한 것이다.”
작전상황도를 들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동영상 확보.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자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발표한 사고지점의 좌표와 사고발생 시간은 거짓이었습니다. 시골 읍사무소 제방둑 터진 시간과 장소도 그렇게 허술하게 보고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군에서 그런 실수를 하는 것 자체가 용납될 수 없는 일임에도, 너그러운 국민들은 황망 중에 있을 수 있는 실수 정도로 넘어가 줍니다. 하지만, 이후 하루가 다르게 시간이 번복되며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합니다. 결국, 4월 1일이 되어서야 군 스스로가 아닌, 지진연구소에서 지진파가 잡힌 정확한 시간이 공개되자 비로소 ‘9시 22분’으로 확정됩니다.
당시에는 몇 분의 시간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후 가장 중요한 시간대의 TOD 영상이 없다는 발표가 나오고 나서야, 왜 시간 그 자체가 중요한지 하나씩 깨닫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국방부 역시 공개하지 않아야 할 시간도 그에 따라 정해진 셈입니다.
최초 사건 발생 좌표와 시간의 거짓,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실수가 아니라, 어쩌면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거짓말 퍼레이드를 알리는 하나의 ‘시그널’이었을 뿐입니다. ‘국방부의 거짓말’, 정리해보니 참 많습니다. 오늘은 우선 중요한 거짓말 두 가지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해군 작전상황도를 희생자 가족이 빼앗아 메모했다?
사고 다음 날인 3월27일 오후, 해군2해역사령부는 희생자 가족들에게 브리핑을 합니다. 이 브리핑에서는 최소한 좌초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브리핑합니다. 브리핑을 한 작전상황도는 해군답게 기본적으로 해도(海圖)이며 그 위에 ‘최초 좌초’라는 글씨와 함께 별표 마크가 선명합니다.
사실, ‘최초 좌초’에서 ‘최초’라는 말을 썼다는 것부터가 사건이 하나에 그치지 않고 최초 이후의 또 다른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최초좌초’되었던 상황만으로는 현재와 같이 가운데가 뻥 뚫리는 손상이 발생하지는 않기 때문에 ‘2차 사고’가 무엇인지 규명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 번, 누누이 주장하지만, 이 사건은 ‘어뢰’냐 ‘좌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좌초+어뢰’냐, ‘좌초+충돌’이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지만, 군은 실제 상황인 ‘좌초’에서 비롯하여 ‘충돌’에 이른 상황까지 모두를 은폐하기 위하여 ‘어뢰’ 하나로만 몰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좌초’ 부분만 설명되어도 군의 논리는 사상누각처럼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해도는 천안함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자료입니다. 저것만큼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해군이 사용하고 기록한 작전상황도여서 변명의 여지가 없고, 그 부분은 군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초 좌초’라는 기록과 별표, 상단의 고저·저조의 글에 대해 군은 거짓말을 하며 피해가려고 합니다. 손가락도 있고, 필체도 있는 데 말입니다.
군은 작전상황도 자체는 군의 것이 맞지만, 희생자 가족이 군으로부터 작전상황도를 빼앗아 임의로 메모를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5월 5일 KBS에서 방영한 ‘추적60분’에서 천안함 유가족의 증언을 통하여 해군이 희생자 가족들에게 해도를 갖고 설명해 주었다는 것과 ‘최초 좌초’ 발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희생자의 가족이 빼앗아가서 메모했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작전상황도를 둘러싼 진실을 가리기 위해 법정으로 가야만 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던 중, 결정적인 자료가 발견되었는데 3월 27일 저녁 KBS 뉴스특보입니다.
KBS 뉴스특보 (2010. 3. 27 18:50분)
해군 관계자가 문제의 해군작전상황도를 들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사고 당시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자의 멘트에 가려 잘 들리지는 않지만, 설명하는 내용중에 '좌초…'라는 단어와 “수심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또렷이 들립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십시오. (1분 15초 ~ 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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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최문순 의원 블로그 ‘문순씨네’) |
정말 중요한 단서들은 거의 모두 3월 26일 ~ 3월 30일에 있으며 특히 사건 다음날인 3월 27의 보도기사, 사진, 방송, 영상 등이 매우 중요하며, 모든 방송국의 뉴스 및 특보를 다시 세심하게 챙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
2. 연돌에 공기를 주입했다?
하루라도 일찍 희생자를 구할 수 있기만을 간절하게 소망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연돌에 공기 주입’ 소식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람은 산소 없이 살 수 없기에 공기가 닿는다는 것의 의미는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니, 마치 가위눌려 막혀 있던 숨이 트이는 것과 같이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4월 19일, 마치 머리를 해머로 때리는 듯한 기사 하나가 뜹니다. “CBS, SSU 투입 인명구조 목적 아니었다?”
SSU 투입, 인명구조 목적 아니었다?… 부유물 수거 목적 (2010. 4. 19) “시신 유실을 막기 위해 그물망을 치고 부유물을 수거하는 것이 우리 임무였다.”
천안함 함미 인명 구조를 맡았던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당시 인명구조보다는 부유물 수거와 함미 부분 탐색이 목적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19일 천안함 침몰사고 가족들에 따르면, 해난 구조를 담당했던 해군 관계자는 함미 인양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가족들에게 “인명구조가 임무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SSU 관계자에게 “지난 보름 동안 SSU는 무엇을 했냐”고 따져묻자 “우리가 지시받은 사항은 인명구조가 아니었다”고 답했다는 것.
가족들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시신 유실을 막기 위해 그물망을 치고 선체 조사를 위해 파편 등 부유물을 수거하는 것이 우리 임무였다”고 말했다.
당시 가족들은 민간 인양업체로부터 “연돌이 없어지는 등 선체 상태가 매우 안 좋고, 실종 사병 중 10~15% 정도 유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어 “SSU가 이 같은 사실을 미리 알았을 텐데 아직까지 몰랐느냐”는 말을 듣고 가족들이 14일 SSU 관계자를 찾아가 확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3일 고 남기훈 상사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SSU 대원들은 “절단면을 확인하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남 상사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힌바 있어, 실종자 구조 작업과는 별도로 절단면 확인 작업을 벌여온 사실이 드러났다.
또 이 관계자는 “연돌 부분이 없어진 것도 상부에 보고했지만, 가족들에게 얘기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종자 가족 A 씨는 “결국 실종 사병들의 생존가능성이 처음부터 무의미했다는 것을 알고 후속작업만 벌이고 있었던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가족들 주장대로 SSU 구조대가 당시 인명구조보다 탐색이나 부유물을 걷기 위한 게 먼저였다면, 69시간 생존가능설은 국방부가 실종자 가족들을 달래기 위한 시간 끌기가 아니었냐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해군 측은 “현지에 사실을 확인한 결과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이는 가족들의 주장일 뿐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CBS 노컷뉴스는 앞서 지난 5일 함미 부분의 수밀격실은 침몰 당시부터 물이 찼을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고,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대정부 질의에서 시인한 바 있다.
출처 :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45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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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군의 공식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CBS, “SSU 투입 인명구조 목적 아니었다?” 기사 관련 해군 입장
현장에서 구조작전을 지휘한 해군 해난구조대 대장(중령 김진황)에게 확인결과 위 기사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기사 내용 중 “연돌 부분이 없어진 것을 알았지만, 위로부터 가족들에게 얘기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받았었다고 들었다”와 관련 이는 사실무근이며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함미 연돌 부분은 처음부터 인양작전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함미에 붙어 있었으며, SSU 대원들이 연돌 부분의 금이 가있는 부분에 고압공기를 주입하였습니다.
- 3.29. 연돌 부분 찢어진 부분에 고압공기 주입
- 3.30. 함미 좌현 출입구에 고압공기 주입
- 4. 3. 17:46 잠수한 SSU 잠수사 2명이 연돌 부분이 함미와 붙어 있는 것을 확인
- 함미 연돌은 인양작전 전까지 함미에 붙어 있다가 인양작전 시작 후 강한 조류에 의해 떨어져 나간 것으로 판단됨.(인양작전 전환일 : 4. 4.)
- 연돌 이탈 확인 : 4. 5. 19:56 / 민간업체 잠수사 잠수결과 확인 후 문자정보망 이용 보고
- 당시 함미 인양 작전 참관 가족 및 평택에 있는 가족이 문자정보망 모니터를 같이 보고 있었음
출처 : http://www.navy.mil.kr/memorial772/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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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의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한 군의 발표내용을 보면 명백하게 극과 극입니다. 어느 말이 진실인가를 떠나서 이어서 진실게임으로 돌입하는 양상입니다. 만약 군의 발표 내용이 사실이라면, 군이 CBS를 고소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군의 발표내용을 한번 검증해 보겠습니다.
첫째, 과연 수중에서 연돌이 함미에 붙어 있었느냐 문제입니다. CBS의 보도는 희생자 가족이 인양업체에 확인하였더니 ‘연돌이 없어지는 등 상태가 심각하다’ 하였으며, SSU 관계자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연돌이 없는 것 상부에 보고했으나 가족에게 말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연돌이 있고 없고 그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싶지만, 연돌과 관련되어 앞뒤로 발표한 내용들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돌의 금이 간 부분을 통해 공기를 주입했다는 것은 ‘연돌의 존재’를 전제합니다. 그러나 이후 수중으로부터의 강력한 폭발로 인해 연돌까지 날아간 것으로 보도될 때에는 ‘연돌이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있었다가 없었다 하는 연돌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유실부분이 뻥 뚫려 있는 상황인데, 그 위에 연돌이 붙어 있었을지 여부는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것과 관계없이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연돌의 금 간 부분으로 공기를 주입했다면, 그 공기가 어디로 갈지에 대한 계획과 해답이 있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연돌이 있는 곳 하부는 가스터빈실과 디젤엔진실이며 연돌과 기관부 침실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연돌의 갈라진 틈으로 주입한 공기가 기관부 침실로 갈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연돌 하부의 옆에 기관부 사병식당이지만, 사병식당은 외부로 통하는 문(햇치)가 있으므로 굳이 틈을 찾아 공기를 주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덧글 : 오늘 일단 국방부의 거짓말 두 가지를 올렸습니다. 알기 쉽게 설명드리기 위해 그래픽 등 작업에 시간이 꽤 소요가 되는군요. 내일 또 국방부의 다른 거짓 증언들을 잘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내일(18일) 오전 10시에는 국회에서 토론회가 있습니다.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 브루킹스연구소 박선원 박사 그리고 제가 패널로 참여합니다. ‘6.15-TV’와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넷 생방송 된다 하니 많은 시청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