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론스타에 농락당한 한국경제 ■
- 김상조 (한성대교수) 2010. 12. 09 -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일부 가려지기는 했지만, 최근 한국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두 개의 초대형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현대건설과 외환은행의 매각이 그것이다. 그런데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현대건설 매각과 관련해서는 범 현대가의 친족그룹 간에 자존심을 건 난타전이 계속되고 있고, 하나금융이 갑자기 외환은행 인수 쪽으로 방향 전환하면서 사실상 마지막 남은 공적자금 투입기관인 우리금융의 민영화 작업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일견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개 거래의 공통분모는? 바로 론스타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지배주주로서 하나금융과의 거래에서 직접적 당사자임은 물론 외환은행이 주간사 역할을 맡고 있는 현대건설 매각 건에도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론스타를 실마리로 해서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도록 하자.
무엇보다 먼저, 전제조건을 분명히 한다. 필자는 론스타를 투기자본이라고 비판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원래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는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구조조정한 후 매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즉 론스타는 애초부터 한국에서 은행업을 본업으로 영위할 의도가 없었고, 조건이 맞는 인수자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팔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론스타를 ‘먹튀’라고 비난하는 것은 동어반복에 불과하고, 그걸 몰랐다면 스스로 바보임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물론 외국자본이 천문학적 액수의 차익을 챙겨 야반도주하듯이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이 문제는 민족주의 정서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감독당국 사실상 직무유기
요컨대 론스타가 투기자본 혹은 외국자본이라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핵심은 론스타가 우리나라 은행법 상 은행을 소유할 수 없는 산업자본일 가능성이 농후함에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이 사실상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개혁연대가 진행 중인 정보공개 청구소송의 1심과 2심 재판부는 2003년 9월 외환은행 인수 승인 당시 감독당국이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제대로 심사하지 않아 공개할 자료가 없다고 판결했다. 기가 막힌다. 또한 은행법상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2006년 말 기준 심사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유가 가관이다. 론스타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아니, 우리나라 감독당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물러 터졌나? KB금융 회장 후보의 자격을 문제 삼을 때는 종합검사권을 잘도 동원하더니, 금산분리라는 은행법의 핵심 조항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4년째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금융위원장은 “아직 시간이 많으니 지켜보겠다”고 했다. 시간이 많다고? 감독당국은 론스타가 하루 속히 한국을 떠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과거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한편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 판정되면, 은행법상 4% 초과 지분의 의결권은 즉시 제한되고(즉 외환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상실하고) 6개월 내에 매각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떠나고 싶어 하는 론스타에 매각명령을 내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절대 그렇지가 않다. 지금은 론스타가 외환은행과 현대건설 매각 협상에서 칼자루를 쥐고 큰소리 치고 있지만, 산업자본 판정이 나면 론스타의 협상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론스타의 꽃놀이패에 당해
론스타가 6개월 내 매각명령을 받아 다급한 상태에 몰렸다면, 하나금융이 제대로 된 실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1주일 만에 4조7000억원 규모의 외환은행 인수 계약을 체결했겠는가? 그랬다가는 주주대표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또한 외환은행이 론스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웠다면, 현대그룹의 프랑스 은행 예금 1조2000억원의 자금 성격도 확인하지 않고 MOU 체결을 밀어붙였겠는가? 그랬다가는 감독당국의 중징계를 면치 못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그룹·현대차그룹 그리고 하나금융은 론스타의 꽃놀이패에 완전히 놀아나고 있다. 한국경제 전체가 농락당한 것의 원인 제공자는 우리나라 감독당국이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두 개의 거래가 종료되기 전에 감독당국이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한다. 만약 론스타가 떠난 후에 산업자본으로 판정나면, 감독당국은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
출처 : 경제개혁연대[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