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경북 포항시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윤상헌 교수(48)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무명의 자모'라고 밝힌 편지 발신인은 자신의 자녀가 2010년 1학기 윤 교수가 강의한 < 언어와 철학 > < 고급 영문법 > 수업을 듣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아직도 회복이 안 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같은 내용의 편지가 한동대 김영길 총장(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에게도 배달되었다. 한동대 학부모 기도회에서도 학교에 비슷한 내용의 항의 공문을 보냈다. 학교는 수강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교원인사위원회를 꾸려 윤 교수를 소환했다. < 고급 영문법 > 을 들은 수강생 32명 가운데 6명이 쓴 부정적 내용의 강의 평가서를 정황 증거로 내밀며, 학교 측은 윤 교수에게 '수업을 들은 뒤 체중 5kg이 빠지고 링거를 맞으며 몸져누운' 학생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윤 교수가 이를 거부하자 학교는 지난해 12월 징계위원회를 구성하고 징계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한동대는 1995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국내의 대표적인 개신교 사학이다. 교직원·학생·학부모 대다수가 같은 신앙을 갖고, 학생들은 입학 후 학과나 학부 체제 대신 담임교수 아래 '팀' 단위로 대학 생활을 꾸려나가기 때문에 구성원 간의 끈끈함이 남다르기로 유명하다. 그런 한동대에서 13년 동안 학문 연구와 신앙 생활을 이어나가던 윤 교수가 대체 어떤 일을 저질렀기에 수강생이 '몸져눕고' 학교가 그를 징계하려 하는 걸까?
학부모의 편지와 지난 1월10일 윤 교수 앞으로 전달된 징계 사유 설명서 등에 따르면, 윤 교수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유는 총장과 정부를 향한 비판 발언 때문이다. 강의 시간에 윤 교수가 "노인네가 감옥에 갔다 온 것을 우려먹고 있다"라며 총장을 비난했고(윤 교수는 '우려먹고 있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대통령을 가리켜 "너희들이 뽑았으니까 너희들이 책임져. 난 안 뽑았으니까", 6·2 지방선거와 관련해 "한명숙씨가 당선되는 줄 알고 밤늦게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사이에 오세훈이 당선되었더라"와 같이 강의 목적과 내용에 부합되지 않는 정부 비판적 발언을 해 학생들에게 교수의 정치적 견해를 강요받도록 부담을 주었다는 것이다. 학교는 윤 교수의 죄목을 '교수의 직무윤리·신의성실·교수 품위 손상'과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로 정리했다.
윤 교수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겨울방학 기간에도 학교는 크게 술렁였다. 학내 인트라넷 게시판에는 "교내에서 의사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라며 윤 교수를 지지하는 교수들의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한동대 졸업생들은 "윤 교수에 대한 징계 논의가 부당하며 대학은 교수의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명에 참여한 한 졸업생은 "대학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니, 1960~ 1970년대 정부를 보는 기분이 든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윤 교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총학생회는 성명서를 내 "학교 측은 징계위원회를 철회하되, 윤 교수님도 앞으로 수업시간에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노력해달라"며 중립적인 견해를 밝혔다. 지승원 교수협의회 회장(법학부 교수)은 "윤 교수의 행위가 징계 사유가 될 만한 것은 아니지만 '학습권 침해'에 대해 어느 정도 사과는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한 재학생은 학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아내는 남편에게 굴복하고 자식은 그 부모에게 굴복하듯이 우리는 이 세상의 권위자들에게 굴복할 의무가 있는데, 윤 교수는 반권위주의 성향이 강하다. 또한 성경적인 사회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없다"라며 징계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징계에 앞선 논란의 쟁점은 '사과'이다. 학교 측은 "애초 윤 교수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만 했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확대되진 않았을 것이다"라며 줄기차게 사과를 요구하는 데 반해, 윤 교수는 "신앙·학문·사회적 의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신념 아래 제자들에게 해온 강의 내용을 무효화할 순 없다"라며 버티고 있다. 학생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수업 방식을 반성하고 개선해나가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그것이 누구에게 사과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교 측 입장을 대변해온 제양규 교무처장은 "공산주의 믿다가 민주주의 믿으라고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사소한 일에 목숨까지 걸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제 교무처장은 특히 윤 교수의 발언 가운데 총장 비판과 관련된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을 외부 사람들은 비판할 수 있지만 삼성 직원이 그를 욕하면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처럼, 교수가 총장을 조롱하는데 유야무야하면 학교 기강이 안 서지 않나."
일부 학생들은 윤 교수의 정부 비판 발언을 의식한 학교의 '정권 눈치 보기'도 이 일을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동대 한 재학생은 "학교에서는 이 일이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렇게 일벌백계 식으로 나가는 걸 보면 뒤에 분명히 정치적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가 강의 시간에 언급해 징계 사유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 일부 교수들의 '승진 보류 사건'이 최근에 다시 회자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해 2월 한동대에서는 교수 승진 심사 과정에서 총장이 '정부 비판 시국선언 참여' 등을 문제 삼아 일부 교수들에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학내 공청회가 열리는 등 논란이 빚어졌다.
윤 교수 인터뷰 거절해
한동대 한 관계자는 "2009년 총학 성명서 사건에 개입한 김미영 교수 사례 때는 매우 미온적으로 작동하던 학교 당국이 이번에는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라고 말했다. 2009년 5월, 학생들이 한동대 내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향소를 마련하자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 37명이 "하나님의 대학에서 이념적 성향의 분향소 설치는 옳지 않다"라며 반대 성명서를 냈는데, 그것을 작성하고 배포하는 데 < 조선일보 > 기자 출신인 김미영 교수가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던 사건을 일컫는 것이다.
어떤 입장을 지녔든, 한동대에 몸을 담은 사람들은 윤 교수 사건을 비롯해 최근의 학내 논란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종교와 학교의 명예에 누가 될까 걱정을 많이 했다. < 시사IN > 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윤 교수는 "우리 한동대가 밖에서 조소의 대상이 되는 게 가슴 아프지만, 이게 단순히 내 개인과 학교의 명예만 걸린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윤 교수에 대한 징계 여부와 징계 수위는 2월18일에 열릴 한동대 정기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같은 내용의 편지가 한동대 김영길 총장(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에게도 배달되었다. 한동대 학부모 기도회에서도 학교에 비슷한 내용의 항의 공문을 보냈다. 학교는 수강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교원인사위원회를 꾸려 윤 교수를 소환했다. < 고급 영문법 > 을 들은 수강생 32명 가운데 6명이 쓴 부정적 내용의 강의 평가서를 정황 증거로 내밀며, 학교 측은 윤 교수에게 '수업을 들은 뒤 체중 5kg이 빠지고 링거를 맞으며 몸져누운' 학생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윤 교수가 이를 거부하자 학교는 지난해 12월 징계위원회를 구성하고 징계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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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우일 |
학부모의 편지와 지난 1월10일 윤 교수 앞으로 전달된 징계 사유 설명서 등에 따르면, 윤 교수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유는 총장과 정부를 향한 비판 발언 때문이다. 강의 시간에 윤 교수가 "노인네가 감옥에 갔다 온 것을 우려먹고 있다"라며 총장을 비난했고(윤 교수는 '우려먹고 있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대통령을 가리켜 "너희들이 뽑았으니까 너희들이 책임져. 난 안 뽑았으니까", 6·2 지방선거와 관련해 "한명숙씨가 당선되는 줄 알고 밤늦게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사이에 오세훈이 당선되었더라"와 같이 강의 목적과 내용에 부합되지 않는 정부 비판적 발언을 해 학생들에게 교수의 정치적 견해를 강요받도록 부담을 주었다는 것이다. 학교는 윤 교수의 죄목을 '교수의 직무윤리·신의성실·교수 품위 손상'과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로 정리했다.
윤 교수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겨울방학 기간에도 학교는 크게 술렁였다. 학내 인트라넷 게시판에는 "교내에서 의사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라며 윤 교수를 지지하는 교수들의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한동대 졸업생들은 "윤 교수에 대한 징계 논의가 부당하며 대학은 교수의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명에 참여한 한 졸업생은 "대학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니, 1960~ 1970년대 정부를 보는 기분이 든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윤 교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총학생회는 성명서를 내 "학교 측은 징계위원회를 철회하되, 윤 교수님도 앞으로 수업시간에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노력해달라"며 중립적인 견해를 밝혔다. 지승원 교수협의회 회장(법학부 교수)은 "윤 교수의 행위가 징계 사유가 될 만한 것은 아니지만 '학습권 침해'에 대해 어느 정도 사과는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한 재학생은 학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아내는 남편에게 굴복하고 자식은 그 부모에게 굴복하듯이 우리는 이 세상의 권위자들에게 굴복할 의무가 있는데, 윤 교수는 반권위주의 성향이 강하다. 또한 성경적인 사회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없다"라며 징계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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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헌 교수의 연구실 문은 제자들이 꾸며준 장식들로 가득하다. |
이에 대해 학교 측 입장을 대변해온 제양규 교무처장은 "공산주의 믿다가 민주주의 믿으라고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사소한 일에 목숨까지 걸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제 교무처장은 특히 윤 교수의 발언 가운데 총장 비판과 관련된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을 외부 사람들은 비판할 수 있지만 삼성 직원이 그를 욕하면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처럼, 교수가 총장을 조롱하는데 유야무야하면 학교 기강이 안 서지 않나."
일부 학생들은 윤 교수의 정부 비판 발언을 의식한 학교의 '정권 눈치 보기'도 이 일을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동대 한 재학생은 "학교에서는 이 일이 정치적 사안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렇게 일벌백계 식으로 나가는 걸 보면 뒤에 분명히 정치적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가 강의 시간에 언급해 징계 사유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 일부 교수들의 '승진 보류 사건'이 최근에 다시 회자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해 2월 한동대에서는 교수 승진 심사 과정에서 총장이 '정부 비판 시국선언 참여' 등을 문제 삼아 일부 교수들에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학내 공청회가 열리는 등 논란이 빚어졌다.
윤 교수 인터뷰 거절해
한동대 한 관계자는 "2009년 총학 성명서 사건에 개입한 김미영 교수 사례 때는 매우 미온적으로 작동하던 학교 당국이 이번에는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라고 말했다. 2009년 5월, 학생들이 한동대 내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분향소를 마련하자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 37명이 "하나님의 대학에서 이념적 성향의 분향소 설치는 옳지 않다"라며 반대 성명서를 냈는데, 그것을 작성하고 배포하는 데 < 조선일보 > 기자 출신인 김미영 교수가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던 사건을 일컫는 것이다.
어떤 입장을 지녔든, 한동대에 몸을 담은 사람들은 윤 교수 사건을 비롯해 최근의 학내 논란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종교와 학교의 명예에 누가 될까 걱정을 많이 했다. < 시사IN > 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윤 교수는 "우리 한동대가 밖에서 조소의 대상이 되는 게 가슴 아프지만, 이게 단순히 내 개인과 학교의 명예만 걸린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윤 교수에 대한 징계 여부와 징계 수위는 2월18일에 열릴 한동대 정기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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