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임재범, 진중권, 김형석, 그리고 어쭙잖은 역사인식

YOROKOBI 2011. 7. 2. 08:16

[TV리포트 윤상길의 연예퍼즐] 모든 역사는 현재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역사의 바른 이해는 바로 오늘날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이다. 실제로 역사를 배우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형성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현재가 과거의 산물인 동시에 계속 진행 중인 발전 과정상의 한 순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은 늘 주목의 대상이 된다.

역사에서의 자기 이해는 역사의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통찰력 있는 자기 이해는 곧 역사의식으로 연결된다. 역사의식은 크게 두 가지 문제의식을 내포한다. 하나는 역사의 변화가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능동적인 참여가 역사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활발해진 대중스타들의 역사 관련 활동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독도의 영유권 문제에 적극적인 가수 김장훈, 백야 김좌진 장군의 항일투쟁과 관련한 배우 송일국의 활동 등은 국민 대다수에게 공감을 얻는다. 반면 옥주현의 항일열사 유관순 코스프레는 호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역사를 바로 알고, 그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한 반응이다.

이번에는 가수 임재범이 나섰다. MBC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가수로 성가를 높인 그는 차원을 달리해 '제2차 세계대전'을 퍼포먼스의 주제로 삼았다. 퍼포먼스의 주인공은 20세기 최악의 범죄자 '아돌프 히틀러'와 그를 대변한 '나치'이다.

지난달 26일 열린 콘서트에서 임재범은 독일 나치 복장으로 퍼포먼스를 펼쳤다. 나치 간부 복장을 입고 등장한 그는 나치식 경례를 하고 그 군복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나치의 종말을 고하면서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은 노래 '패러덤'을 불렀다.

'패러덤'은 1990년 임재범이 속했던 록그룹 아시아나의 곡으로 핵전쟁에 의해 파괴된 지구의 인간들이 지하도시에 사는 비극을 노래한 곡이다. 그는 이 퍼포먼스를 '독재 반대'와 '자유를 향한 갈망'이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미국의 전설적인 팝가수 밥 딜런이고 존 바에즈이며, 아일랜드 뮤지션 밥 겔도프이다. 세상을 향해 노래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전쟁 없는 평화'를 외친 사람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그의 퍼포먼스를 두고 말들이 많다. 문화평론가 진중권과 유명 작곡가 김형석이 설전을 펼쳤다. 나치즘 네오나치즘 전체주의, 히틀러에서 미학(美學), 미감(美感), 윤리적 명분, 도덕적 변명, 정치적이고 계산적 등 난해한 용어와 표현들까지 이 설전에 등장했다.

누리꾼도 이 논쟁에 가세해 '당신이 잘못'이라며 상대편을 공격한다. 매체들의 관련 기사마다 엄청난 양의 댓글이 달린다. 임재범의 인기 때문인지, 누리꾼들의 역사의식의 발현인가는 구분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댓글의 내용이 인신공격에 치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치와 히틀러가 오늘날 세계사에, 가깝게 우리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 일부 청소년의 댓글에서는 논쟁의 초점이 무엇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도 읽힌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부끄러운 지적이지만, 사실 나치 히틀러 네오나치즘 같은 용어에 익숙한 요즘 청소년은 많지 않다. 임재범 공연 하루 전 날은 6.25전쟁 기념일이다. 최근의 한 설문조사(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청소년의 57.6%가 6.25전쟁의 발발연도를 모르고 있다. 게다가 이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청소년도 51.3%나 되는 현실이다. 역사를 바로 가르치고, 배우지 못한 탓이다.

우리의 현대 역사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형국에서 6.25전쟁 발발연도(1950년)보다 훨씬 앞선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독일의 정권을 잡으면서 알려진 나치나 히틀러에 대해, 그리고 1939년에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우리나라 청소년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청소년들은 나치나 히틀러보다 임재범과 김형석에게 더 익숙하다. 따라서 진중권의 "김형석이란 분이 뭐하는 분인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발언에 대해 많은 누리꾼들이 "그러는 당신은 뭐하는 분이신데..."라며 항의성 댓글을 달은 것도 당연하다. 나치 퍼포먼스라는 문화적 논쟁이 인신공격의 소재로 변질되고만 안타까운 사건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다. 미풍양속을 해쳤거나, 국가변란을 꾀한 것이 아니라면, 무대에서 나름의 표현 방식으로 펼친 퍼포먼스가 대한민국 대표 진보학자에 의해 '날 선' 공격을 받을 이유는 없다. 그것 역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또 다른 위협이다. 대중예술가들에게 '중용(中庸)의 미덕'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치우치지 않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중용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어떤 문제에 있어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도는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자로 낙인 찍혔다. '박쥐'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진중권 편에, 아니면 김형석 편에 서여만 한다. 이 무언의 강요야 말로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또 다른 '감시자'이다.

역사적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소모적이기 쉽다. 논거를 찾고 개연성을 따져보았자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대중예술은 듣고 보아서 행복하면 된다. 아이돌 가수에게 삼촌팬 이모팬이 열광하는 모습도 좋고, 할아버지 세대의 유행가를 10대 가수가 다시 불러 인기를 모으는 현상도 바람직하다.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어쭙잖은 퍼포먼스로 논란을 불러오고, 흑과 백, 좌와 우, O와 X로 편 가르는 먹물들의 역사인식도 사람을 지치게 한다.

임재범이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상업적인 이익과 인기 유지를 위해서 쏟아 부은 것이 아니라면, 그의 독일 나치 퍼포먼스에 굳이 역사의식을 대입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