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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부장이 권총차고 협박했는데... 김지태씨 의사결정 여지 있었다고?

YOROKOBI 2012. 2. 27. 22:27

[한겨레]법조계 '정수장학회 판결' 비판

지난 24일 정수장학회 관련 판결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첫번째 비판의 요지는 법원의 '의사결정권 박탈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재판장 염원섭)는 "강박에 의한 법률 행위가 무효가 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이뤄져 단지 법률행위의 외형만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한 정도여야 한다"며 "김지태씨가 정부의 강압으로 주식을 증여한 사실은 인정되나 의사결정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김지태씨의 부인 송혜영씨 및 회사 임직원 10명이 구속되고 △권총을 찬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살고 싶으면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의사결정권 박탈의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의 이러한 논리는 1970~80년대 국가의 불법행위로 강제헌납된 재산을 보전하는 데 일조해 왔다. 80년대 계엄사 합수부에 의해 자신이 설립한 동곡문화재단(현 서울장학재단)을 강제로 헌납한 김진만씨 역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적법한 절차 없이 40여일간 불법구금됐고, ㄷ그룹의 경영자인 아들의 재산까지 몰수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상태였지만, 법원은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당하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법원 관계자는 "강박으로 인해 계약이 무효가 되려면 (계약자의 의사에 반해) 손에 강제로 쥐어주면서 억지로 계약을 강요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의 이런 기준은 법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갑배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은 협박을 해서 재산을 뺏는 행위(공갈)와 강제로 물건을 빼앗아가는 행위(강도)를 모두 처벌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의 논리를 따르자면, 공갈은 피해자가 의사결정권을 박탈당하지 않은 채 스스로 물건을 주었기 때문에 재산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법원은 고문 등 신체적 압박 외에 △재산을 넘길 의도가 있었는지 △누가 먼저 요구했는지 등 복합적인 상황을 보고, 의사결정권 박탈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번째는, 주식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제척기간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하면서 국가범죄에 대해 소멸시효를 없앤 것처럼, 제척기간 역시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국가 공무원이 범죄를 저질러 이득을 얻은 경우이고 이는 국가의 도덕성이나 법치국가 원리에 반하는 것임에도 제척기간을 3년으로 규정하는 건 불합리할 수 있다"며 "국가 범죄로 인한 피해의 경우 제척기간 역시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sflow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