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채점표 정밀 분석 김연아, 심판 이길 수 없었다

YOROKOBI 2014. 2. 21. 19:23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자신의 마지막 무대을 마친 뒤 남긴 말이다. 21일 오전(이하 한국 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44.19점(2위)을 받은 그는 전날 쇼트프로그램 점수 74.92점(1위)을 더해 종합 219.11점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완벽한 연기를 펼쳤지만, 러시아의 18세 '복병'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쇼트 74.64점(2위), 프리 149.95점(1위), 종합 224.59점)에 밀렸다. 경기 후 많은 국내외 언론과 피겨 전문가는 '소트니코바가 홈 이점을 너무 많이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1일 오전(이하 한국 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끝난 2014 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채점표. 이 채점표를 보면 두 명의 심판의 판정 기준이 의심된다. / 국제빙상연맹 홈페이지

두 선수의 점수를 자세히 살펴보자. 일단 김연아의 기본 기술점수(TES)는 57.49다. 수행점수(GOE)는 12.20. 반면 소트니코바는 기본 TES 61.43에 GOE 14.11을 받았다. 김연아가 기본 TES부터 3.94 뒤진 것이다. 김연아는 이 평가 요소인 점프를 제외한 구성에서 플라잉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과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에서만 레벨 4를 받았고, 스텝 시퀀스와 레이백 스핀은 레벨 3, 코레오 시퀀스는 레벨 1이 매겨졌다. 반면 소트니코바는 코레오 시퀀스(레벨 1)만 제외한 채 플라잉 카멜 스핀과 레이백 스핀, 스텝 시퀀스,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에 등 모든 기술 평가에서 레벨4를 얻어냈다.

김연아의 GOE는 대부분 1점 미만이다. 모두 12개의 구성 요소에서 꼭 1점이 2개고 1점 미만이 무려 6개다. 소트니코바는 점프 실수 때 받은 -0.90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1점 이상을 받았다. 1.80을 받은 더블 악셀+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은 김연아의 주특기이자 첫 과제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1.60)보다 높았다. 게다가 문제의 스텝 시퀀스. 김연아는 이 부문에서 레벨 3과 GOE 1.14에 그쳤지만, 소트니코바는 레벨 4에 GOE 1.70을 따냈다. 피겨에 관심이 있는 비전문가가 봐도 어떤 선수가 수준 높은 스텝을 밟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명의 심판이소트니코바를 위한 '지원사격' 을노골적으로한 눈치다.

 

GOE는 심판진이 선수들의 수행 정도에 따라 -3~+3점까지 주며, 이번 소치에서는 9명의 심판 평가 가운데 최고점과 최점을 제외하고 7명의 평균값을 구한 뒤 각 '팩터'의 값을 곱한다. 예를 들어 점프의 경우 트리플 악셀은1, 나머지 트리플 점프는 0.7, 더블은 0.5를 곱하고 레벨4의 스핀은 팩터는 0.5다. TES는 테크니컬 패널이 판정하며, 테크니컬 패널은 스페셜리스트, 어시스턴트 스페셜리스트, 컨트롤러로 구성된다. 이들은 점프의 종류와 롱엣지, 회전수 부족 등을 평가한다. 스핀과 스텝, 스파이럴 시퀀스의 레벨 역시 이들이 결정한다. 이번 소치의 테크니컬 패널은 스페셜리스트 바네사 구스메롤리(프랑스), 어시스턴트 스페셜리스트 올가 바라노바(핀란드), 컨트롤러 알렉산더 라케르니크(러시아)다. 컨트롤러는 나머지 둘의 의견이 다를 경우 최종 판정을 내린다. 수행 기술의 적합성을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등 권한이 막대하다. '러시아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술 점수(PCS)는 심판의 주관이 가장 많이 개입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잘잘못을 따지기에 무리가 있다. 하지만 70점대 점수를 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판진이 스케이팅 기술과 전환-풋워크, 연기-수행, 안무-구성, 해석 등 5개 세부 항목에 대해 선수가 프로그램을 얼마나 능숙하게 표현하는지 주목하는 PCS에서 70점대는 '김연아의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소치에서 소트니코바의 PCS는 무려 74.41이었고, 이는 김연아의 PCS 74.50보다 단 0.09점 뒤질 뿐이었다. 소트니코바 역시 인상적인 경기 내용을 보였고, 김연아보다 3회전 점프를 한 번 더 뛰었지만, TES를 비롯해 PCS까지 '피겨 퀸'급으로 점수를 받은 것에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소트니코바의 지난달 유럽선수권대회 PCS 성적은 69.60이다. 소트니코바는 이번 소치 대회에서 쇼트와 프리, TES와 PCS를 가리지 않고 모두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21일 김연아(가운데)가 경기 후 시상대에서 팬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고마워하고 있다. 이날 김연아는 "점수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에 만족을 안 하면 어떡하겠느냐"면서 " "1등은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보여 드릴 수 있어서 기분 좋고 또 감사드린다"면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큰 실수 없이 준비한대로 다 보여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 소치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다." 피겨계의 전설 카타리나 비트(독일)는 이번 대회 결과를 보고 분노했다. "결과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번 판정을 두고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회를 경험한 애슐리 와그너(미국) 역시 "속은 것 같다. 피겨 팬들은 넘어진 선수가 클린 연기를 펼친 이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국 언론도 앞다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는데, 프랑스 매체 '레퀴프'는 '러시아는 영웅으로 점찍은 율리아 리프니츠카야가 쇼트에서 실수하자, 다른 길을 찾았다. 심판들은 소트니코바를 선택했다'고 보도했고, 미국 NBC는 '김연아 은메달, 소트니코바 금메달. 당신은 결과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말했다.

이번 소치에서는 애초부터 선수의 '기량'이 심판의 '판단'을 이기기 힘든 구조였다. 마지막 무대를 화려하게 마친 '피겨 퀸'도 극복할 수 없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