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도서입찰 유령서점이 싹쓸이 정부는 방치
정부가 열악한 지역서점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에서 각급 학교, 공공도서관, 지방자치단체의 도서 입찰자격을 제한하고 서점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했지만 정작 중소서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전혀 엉뚱한 이들이 이 제도의 수혜자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서점의 몰락, 동네서점은 고사 단계
동네서점의 몰락. 매우 심각하다. 서점 수의 변화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2005년 2103개에서 2009년 1825개로 줄어들었다가 2011년 1752개, 2013년 1625개로 감소해 최근 2년 동안 10%나 급감했다. 1994년 5700개로 정점을 찍었던 때와 비교한다면 동네서점 세 곳 중 두 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500평 이상 대형서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폐업하는 곳이 크게 늘어 2009년 43개였다가 2011년 25개로 감소했고 급감 추이는 계속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확산으로 매출 증가를 보이던 인터넷 서점들도 영업이익률 감소로 고전하는 곳이 여럿이다. 과도한 할인경쟁이 빚은 결과다.
출판사와 유통업자에게도 문제는 있다. 과도한 할인경쟁을 예상하고 미리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출판사들이 많다. 적정선보다 이미 높게 책정된 가격을 놓고 유통업자와 대형서점, 인터넷 서점 간 출혈을 감수하는 할인 경쟁을 치른다. 이런 구조에서 동네서점이 설 자리는 없다.
동네서점은 이미 멸종 단계에 접어들었다. 경북 영양군, 울릉군, 청송군과 인천 옹진군에는 서점이 한 곳도 없다. 경북 문경시, 경기 의왕시 등 단 한 곳뿐인 시도가 36개에 이른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지역문화의 실핏줄이자 거리의 도서관인 서점들이 사라지면 독자들이 책을 접할 기회와 선택권이 사라지게 된다”며 안타까워한다.
서점 숨통 열어주겠다 도입한 ‘공공기관 도서구입 입찰제한제’
정부는 몰락하는 서점에게 숨통을 열어주겠다며 공공기관 도서구입 입찰자격 제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제도 도입의 혜택이 지역서점에게 돌아가지 않고 ‘유령서점’들이 독식하는 기현상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점 사업자만 입찰에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최근 서점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한 개인사업자들도 참여가 가능하다. 이점을 파고드는 이들이 있다. 서점 운영이나 서적 유통과 전혀 무관한 업체가 입찰금과 관련 서류만 들고 입찰에 참여해 최저가를 써넣고 낙찰을 받는 식으로 싹쓸이하고 있다.
올 들어 학교, 도서관, 지자체 등 공공기관 도서구입 낙찰은 총 47건. 이중 90%가 오프라인 매장을 갖고 있지 않은 ‘유령사업자’에게 돌아갔다. 지역의 중소서점이 낙찰 받은 건 전체의 10%도 안 된다.
‘유령사업자’가 훨씬 유리하다. 실제 서점을 운영하는 사업자는 매장과 창고 운영비,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지출해야 하지만 ‘유령서점’의 경우 이런 비용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 수천 만 원 밀어 넣고 단기간에 수백 만 원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으니 ‘해볼 만한 투자’라고 보고 덤비는 거다. 최소한 마진을 챙긴다 해도 이들에게는 손해 볼 것 전혀 없는 사업이다.
‘유령서점’이 입찰 싹쓸이, 지역서점은 엄두도 못내
최저가낙찰제 역시 유령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공공기관이 구입하는 서적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공공도서관들까지 책을 비품으로 취급해 가장 낮은 단가를 제시한 업자에게 납품권을 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국민에게 정가에 사라고 하면서 공공기관은 서적납품업자에게 예외적인 할인율을 요구한다. 잘못된 행태다.
단지 사업목적에 ‘서점업’을 추가시킨 ‘유령서점’들은 고정비용 등이 없다보니 실제 서점주보다 훨씬 낮은 입찰가를 제시할 수 있다. 심지어는 동네 주유소 사장이나 페인트 업체가 입찰을 따내 서적유통상에게 하청을 주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동네서점의 경우 정가의 70~80%선에서 책을 공급받는다. 공공도서관의 서적구입 평균 할인율은 20~30%. 지역 중소서점은 이 할인율에 맞춰 납품권을 따낼 엄두도 못 낸다. 고정비용까지 감안한다면 결국 손해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아예 입찰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저가낙찰제와 공공기관 도서입찰제가 중소 지역서점업체를 수혜자가 아닌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혜택을 봐야 할 이들이 피해자가 되고, 전혀 상관없는 유령사업자가 혜택을 독차지 하는 황당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혜자가 피해자로 전락...규제 강화 필요
도서구입량이 많은 기관은 단연 공공도서관이다. 공공도서관이 연간 도서구입비로 쓰는 돈은 약 700억원(국민 1인당 1338원)으로 도서관 전체예산의 11% 수준이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1인당 도서구입비는 미국의 27%, 일본의 42% 수준이며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예산 비중 또한 OECD국가의 절반 수준이다.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비용은 국고지원과 시도지원금, 시군구 교육청 예산 등으로 충당된다. 도서구입예산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리고, 도서 입찰과 납품 혜택이 실질적으로 지역서점들에게 돌아가도록 정책적 배려를 할 경우 중소서점업계는 연간 1500억원이라는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동네서점의 고사를 막을 수 있는 방편이 될 것이다.
‘유령서점’에게 납품권이 돌아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서점을 운영하거나 서적유통업을 직접 하고 있는 지역 업체가 납품업체로 선정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아울러 ‘유령서점’의 난립을 부추기는 최저가낙찰제는 폐지되는 게 마땅하다.
‘암덩어리’같은 규제를 타파하겠다고 외치는 박근혜 정부. 타파만 능사가 아니다. 규제를 강화해야 할 필요도 곳곳에 널려 있다. 공공기관 도서구입 정책도 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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