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6일 (수) 13:10 미디어다음
시멘트 공장, 쓰레기 소각장인가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 영월군 일대 주민들이 화났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태세다. 이곳에 밀집한 시멘트 공장들이 내뿜는 분진을 더이상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주민들은 최근 몇년새 중금속이 다량 포함된 분진 탓에 주거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이 곳에서 나는 농산물의 오염 정도가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겪었던 분진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근 시멘트 공장들이 바로 '쓰레기'(산업폐기물)를 태워 시멘트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최근 시멘트 공장 세 개가 모여 있는 그곳을 찾았다. 이 가운데 한 개의 공장은 접경지역 바로 너머 충북 제천시에 있다. 현지에서 '서강 지킴이'로 알려진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의 안내를 받았다.
깊은 산속에 듬성듬성 조그만 마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이 곳. 그러나 이 곳은 시골답지 않았다. 상쾌한 공기는커녕 왠지 모를 매캐한 냄새가 코끝에 묻어났다. 마을을 품고 있는 산등성이마저 짙푸른 초록 빛깔을 잃었다. 이상하리만치 희끗희끗 뿌옇기만 하다. 왕복 2차선 국도의 가드레일도 페인트를 칠한 듯 누렇다. 현지 주민들은 바람의 방향에 유난히 민감했다. 바람에 실려다니는 분진 탓이었다. 한밤중이면 육중한 기계음 소리를 자장가처럼 듣는다고 했다. 인근 시멘트 공장들이 산업폐기물을 대량으로 소각하면서부터 빚어진 일이다.
폐타이어는 시멘트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보조연료로 태워진다. 폐플라스틱과 폐비닐, 고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일부 공장에서는 물기가 많은 하수찌꺼기도 '보조연료'라는 이름으로 소각한다고 한다. 폐주물사, 동슬래그, 소각재 등은 시멘트의 부원료로 사용된다. 이들은 주로 파쇄해 석회석과 함께 시멘트 소성로에서 굽는 과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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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공장에 수북이 쌓여 있는 폐타이어. 폐타이어는 주연료인 유연탄보다 열효율도 높아 보조연료로 가장 '애용'되는 산업폐기물이다. [사진=미디어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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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타이어 가루와 폐비닐이 가득 쌓여 있다. 폐타이어 가루와 폐비닐은 소성로에 그대로 들어가 고온에서 소각된다. 소각재 역시 시멘트의 부원료가 되는 셈이다. [사진=미디어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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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두 대 가득 쌓인 폐전선과 고무류. 무엇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진=미디어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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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를 비롯한 각종 유사 산업폐기물이 섞여 있다. [사진=미디어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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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공장의 담장 너머로 폐타이어가 쌓여 있다. [사진=미디어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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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C공장의 폐기물 적립장에도 분쇄된 폐타이어 조각이 쌓여 있다. [사진=미디어다음] |
시멘트 공장에서 산업폐기물을 태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용절감을 위해서다. 시멘트는 제조 공정상 대규모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석회석 등 천연광물 원료를 고온의 소성로로 구워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석회석을 시멘트 제조의 중간단계인 클링커로 만드는 필수과정이다. 소성로는 섭씨 1450도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시멘트 공장들은 소성로의 땔감으로 10여년전까지 유연탄을 주로 써왔으나, 폐타이어 등을 보조연료로 쓰면서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게 됐다. 더구나 폐타이어 등 산업폐기물의 경우 꺼꾸로 처리 대가를 받을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는 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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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제조에서 산업폐기물과 부산물을 활용하는 과정. [그림=시멘트 업체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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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타이어가 소성로로 들어가기 위해 옮겨지고 있다. [사진=미디어다음] |
현재 시멘트 소성로는 시?도지사에게 재활용신고만 하면 폐기물을 부원료와 보조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반면 폐기물 소각시설은 환경부 장관의 폐기물처리시설 승인과 폐기물처리업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폐기물 전처리 기술, 선진국에 한참 뒤쳐져"..그래도 문제없다?
이에 더해 폐기물 처리 관련 전문가들은 시멘트 업체로 산업폐기물들이 무작위로 유입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정폐기물로 분류, 철저히 관리돼야 할 폐기물들이 일부 유통업자들에 의해 일반폐기물과 뒤섞이는 일이 많다는 얘기다. 지정폐기물 처리를 하려면 많게는 수십배의 비용이 더 드는 탓이다.
실제로 폐유를 최종처리업체에서 처리하려면 톤당 27만1000원을 줘야 하지만 시멘트 공장에는 1만3000원의 처리비용이면 된다. 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전문처리업체에 맡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멘트 업체로의 폐기물 반입량은 지자체에 신고된 것과 실제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2004년 기준 지자체 신고량과 시멘트업체의 반입량은 각각 109만톤과 5897만톤이다. 무려 54배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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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에 신고된 산업폐기물 반입량과 시멘트 업체가 자체적으로 파악한 양이 크게 차이가 난다. [자료=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
대표적 유해중금속인 6가 크롬의 경우 영월군 외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시멘트에서 1.7mg/l가 나와 지정폐기물 유해물질 함유기준인 1.5 mg/l를 초과했다. 영월군 지역장에서 생산되는 A제품은 0.51mg/l, B제품은 0.96mg/l 등으로 기준치를 밑돌았다. 그러나 폐기물을 원료로 쓰지 않는 중국산에 비해서는 무려 9~170배 높은 것이다. 6가 크롬은 알레르기성?접촉성 피부염을 유발하는 동시에 발암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 기준이 시멘트 제품의 유해물질 함유 기준이 아니라 '지정폐기물'에 대한 기준이라는 점이다.
이에 앞서 실시된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이하 노건연)의 조사에서는 국내산 시멘트에 포함된 6가 크롬 함유량이 외국에 비해 상당히 높게 나왔다. 국내 5개 시멘트 제품에서 33.06~89.61mg/kg의 6가 크롬이 검출됐다. 덴마크 등 북유럽 규제기준인 2mg/kg에 비해 17~45배나 높은 것이다. 우리 정부도 시멘트 유해물질 함유를 명확하게 규제하는 기준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방증이다.지역주민 “악취 때문에 자다 일어나 공장 가서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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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눈이 조금 내린 후 자동차 표면 위에 남겨진 분진. [사진=미디어다음] |
B공장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홍 아무개씨(65). 약 40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왔다. 그가 분진을 경험한 것은 최근 2~3년 사이다. 그는 "아유, 말도 못해요. 한여름에도 창문을 못 열고 살아요. 시커먼 먼지가 쌓여갖고. 냄새는 또 어떤데…. 기자 양반, 제발 우리 같은 늙은이, 숨 좀 제대로 쉬며 살 수 있게 해줘요"라고 하소연했다.
3년 전 인근 C공장을 새벽에 '쳐들어간' 서 아무개씨(54). 그는 잠을 자다가 심한 악취에 잠을 깼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C 공장으로 찾아갔다. 회사측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오죽 냄새가 심했으면 그 새벽에 항의하러 갔겠어요. 근데 오히려 공장에서 저를 경찰에 신고하더군요. '무단 침입'이라고. 힘없는 주민들만 당하는 거지요. 전국에서 온갖 쓰레기를 다 가져와 태우면서…"라고 했다.
A공장에서 수십년 일했던 민 아무개씨는 "정말 너무한다. 쓰레기를 태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공장 사정을 잘 알기에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 시멘트 공장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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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공장 바로 옆에 마을이 있다. [사진=미디어다음] |
지난해 환사연이 시멘트 공장 주변 지역의 지렁이 체내 중금속을 측정했더니 비소가 토양오염 우려기준인 6mg/kg을 초과, 전국 평균치(환경부, 2004년)의 62~178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지점 7개소 가운데 네 곳을 측정한 결과다. 2개 지점의 카드뮴도 기준치인 1.5mg/kg을 초과했다. 각각 2.7mg/kg, 2.3mg/kg이 검출된 것이다.
한화연이 지난해 11월 농산물 중금속 함유량을 측정한 결과,배추에서는 0.4 mg/kg의 크롬이 나왔다. 전국 평균치의 17.3배를 넘는 수치다. 사과에서는 크롬 0.3 mg/kg, 구리 5.9 mg/kg이 검출돼 각각 전국 평균치를 2배와 5배 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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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지역 농산물 중 하나인 사과가 심하게 손상돼 있는 모습. 시멘트 분진의 영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미디어다음] |
최병성 목사는 "지난 2003년에 과학부 환경부가 시멘트 업체들과 34억원을 들여 공동 연구했지만 결국 폐주물사를 시멘트 공장에 몰아주는 명분만 줬다"며 "지난 10년 동안 사실상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면서도 인간과 주변환경에 미치는 객관적이고 제대로 된 연구 한번없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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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인근 지방도로 가드레일은 페인트로 칠한 듯 누렇다. 변색된 부분은 이미 고착화돼 손으로 만져도 묻어나지 않는다.[사진=미디어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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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과 바로 인접한 밭에서 일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 [사진=미디어다음] |
C공장 환경안전과 관계자는 "폐기물 반입 전에 철저한 시험을 거쳐 부적합 폐기물은 반입을 금지해왔다"며 "공장 배기가스도 현행 대기보전법을 충족하고 있지만 더욱 완벽한 분진 여과 기능을 갖춘 백하우스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A공장 관계자도 "각종 현행 기준치를 절대 벗어난 적이 없었다"며 "지역 주민협의회가 지나친 요구를 하는 측면도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주장이나 환경단체들의 조사 결과는 시멘트 공장이 산업폐기물을 활용하는데 따른 영향을 면밀하게 따지고 유해물질 기준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멘트 제조에 산업폐기물과 부산물을 활용하는 문제는 앞으로 철저히 풀어가야할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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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무는 가운데 시멘트를 담은 탱크로리 차량이 또 어디론가 현장을 향해 길을 재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출처 : 시멘트 공장, 쓰레기 소각장인가
글쓴이 : 이슬처럼 맑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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