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운문사(雲門寺), 새벽 도량의 예불소리

YOROKOBI 2007. 6. 15. 14:05
       새벽 두시, 주섬주섬 챙겨 입고 아직 불이 다 꺼지지 않은 도시를 벗어난다. 매일 이 시간이 되어야 잠이 드는 습관에 누어 잠시 눈 붙이려던 노력은 오히려 머리만 아프게 만들었다. 막상 출발을 하고 나니 중간 붉은 신호등에 갈 길이 멈춰서도 해가 있는 시간보다는 여유가 있을뿐더러 새벽이라 조급하지 않아 좋다.
   밀양 얼음골 가는 중간, 가지산(迦智山) 빗겨 지나 운문(雲門)재를 타고 넘는다. 두 해전과 비슷한 시기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 운문사 입구 소나무 숲, 아직 한밤에 가까운 신새벽이다 

참꽃도 철쭉도 지고 없는 봄 끝, 여름 초입의 산길은 아직 완연한 어둠 속에 숨어서 새벽잠에 깨지 않고 있다. 차의 전조등에 비친 이른 새벽의 숲은 그 빛에 차 소리에 바람이 놀라 불고 연이어 뭇 것들이 깨어나 자기들끼리 소란스럽다. 갑자기 밤꽃 향기가 어지럽고 상수리나무 파르르 떤다. 괜히 숲을 깨웠다는 머쓱한 생각에 나는 어둠 속으로 줄행랑을 치고 그럴수록 숲은 바람소리를 낸다.
       이 시간, 한층 가까워진 별무리를 산꼭대기에서 만나는 것도 하나의 선물이고, 또한 산사로 들어가는 길이 낮에 볼 수 있는 상가(商街)가 된 분주함이 생략되어 있어 좋으며, 게다가 그 길은 두 아름드리 이상의 곧게 뻗은 소나무나 참나무 군락이 있어 어둠 속에서도 호위병처럼 늘어서 찾는 이 모두 열병식의 주인공이 되는 으쓱함을 맛 볼 수 있어 좋다. 
   많은 이들이 말하길 운문사 입구를 들어 둘째가라면 서럽다 할 정도로 솔숲으로는 최고로 친다. 새벽이어도 혹여 새벽이 아니라도 길을 두고 소나무 숲 사이로 걸어보라 권하고 싶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이 숲길을 아무도 없는 신 새벽에 만날 수 있는 것이 첫 기쁨이다.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귀의법 이욕존(歸依法 離慾尊)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귀의승 중중존(歸依僧 衆中尊)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이미 법고소리 듣지 못한 범종각 아래를 지나 절 마당으로 들러선 어느 지점에서 삼귀의(三歸依) 소리가 낮고 엄정하게 울려 삼라만상 속으로 퍼져나간다.

◇ 대웅보전 새벽 예불소리 천지간에 흩날리고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의 호거산(虎踞山) 운문사(雲門寺)를 새벽에 찾아가는 참 묘미의 다른 하나는 바로 새벽 예불소리를 듣는 일이다.
           아마도 세 시 쯤 에는 도량석(道揚釋)이라 하여 목탁을 두드렸을 것이다. 천수경(千手經)을 외며 두드리는 목탁 소리에 무명을 쫓아내듯, 하나 둘 승방에 불이 켜졌을 것이다. 큰 법당 대웅보전과 또 하나의 대웅보전인 비로전 어간의 섬돌에서 시작한 새벽 목탁은 마당을 가로질러 종루 밑을 지났다가 다시 계단을 올라 명부전과 관음전을 끼고 돌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시 반이 되면 모두 큰 법당(大雄寶殿)으로 모여 새벽 예불을 올린다.
    가지산을 사이에 둔 '석남사'와 '운문사'는 모두 비구니스님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특히 '운문사'엔 이백 여명의 비구니스님과 아직 사미계를 받지 않고 수행중인 여자 행자들이 머물러 수행하고 있는 기도처이다. 두 해전 우연찮게 찾았던 그 날은 이 곳 승가대학의 봄방학이 어제로 끝나고 다시 공부가 시작되는 날이었는데 아마 오늘은 개학한지 열흘 남짓 지났으리라.
            이들이 하루를 여는 새벽예불에 들려주는 독경소리는 가녀린 여자들의 목소리로 부르는 그냥 아름다운 노래가 아니다. 대웅보전 그들 속에 섞여 같이 가쁜 숨 몰아쉬며 절을 하면서 듣는 소리 속에는 내 숨 가쁜 소리가 여승들의 숨소리 속에 같이 녹아난다. 섬돌에 발을 두고 대웅보전 기둥에 등을 대고 듣는 소리는 울림으로 내 머리를 때리고 가슴을 녹인다, 절 마당 가까이에서 듣는 소리, 건너편 만세루 마루에 앉아서 듣는 소리 다 다르다.

지심귀명례 소리에 사방의 뭇것들 잠깬다 

         지심귀명례 영산회상 염화시중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至心歸命禮 靈山會上 拈花示衆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존자들에게 보이신 곧 나의 근복 스승 석가모니불에게 지극한 맘으로 목숨 바쳐 절하오니……. 칠정례(七頂禮) 올리는 나직한 소리를 밟으며 비로전으로 발걸음을 떼면 불 밝힌 석등(보물 제193호)의 불빛이 흔들린다. 비로전에는 지금 대웅보전이라 편액이 붙어있다. 비로자나불 모신 곳임에도 불구하고 원래 대웅전의 역할을 하던 곳이라 보물로 지정 된 건물의 이름을 문화재청에서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란다. 사람이 하는 일은 규정에 묶어 늘 이런 오류를 범하나보다.

       “지심귀명례, 지심귀명례,,‘
석등 뒤에 밤낮 없이 웃고 있는 해태상이 비로전(보물 제 835호)을 지키고 꽃 살 무늬 사이로 비치는 불빛이 곱고 곱다. 비로전 안 중견 여스님들의 예불 소리는 삼장단 쪽 천장 줄에 매달려 악착같이 성불하려는 악착보살의 귓전에도 맴돌고 있을 것이다.
         악착스럽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이 새벽, 내 모습에 흩어지는 소리 “지심귀명례” 뒤로 나를 위해 새벽 기도를 숱하게 떠났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어머니에게 “지심귀명례”는 어떤 의미였을까? 부처님에 스스로를 바쳐 귀의함으로서 마흔에 낳은 이 못난 자식의 여리고 모난 성정을 바로 고쳐 온전히 사람 되게 살도록 빌었던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 스님들이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들 

      莫謂慈容難得見(모의자용난득견) 자비로운 얼굴 친히 뵙기 어렵다고 말하지 말라.
      不離祗園大道場(불란기원대도량) 기원정사 대도량을 여의지 않고 계시니
      虛空境界豈思量(허공경계기사량) 허공의 경계를 어찌 가히 헤아릴 것인가?
      大道淸幽理更長(대도청유이경장) 대도는 맑고 그윽하여 생각할수록 깊은 이치라.

비로자나불 기려 적은 주련의 뜻을 내 어찌 다 알겠는가만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등불과 종내 빛을 밖으로 뿜어내는 비로전의 따스함이 굴곡지고 모난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안다.
        비로전 앞 삼층석탑(보물 제678호)이 우뚝 선 사내처럼 실루엣 흔들리며 나를 바라본다. 자세히 눈을 들어 얼굴을 마주 대하면 두 탑에 돋을새김 된 팔부중이 거친 몸짓으로 눈을 부릅뜨고 어지러운 맘으로 이곳을 나가지 말라고 소리친다. 들리지 않는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 물러선 곳은 작압전(鵲鴨殿) 이 절에서 가장 특징적인 전각이다.

◇ 비로전 어간문 꽃살무늬 사이로 흐르는 새벽의 빛과 그림자 

이백여 명이 같이 암송하는 새벽 예불의 소리, 낮게 깔리는 규칙과 불규칙,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는 일정한 리듬의 예불소리 속에는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으며, 산 것도 죽은 것도 없는 청정(淸精)의 소리다. 그 소리가 멀리로는 대웅보전에서 가까이로는 비로전에서 더 가까이로는 작압전 옆 관음전에서 들리고 또 들린다.
      운문사의 원래 이름은 작갑사(작압사)였다. 서기 600년 원광국사가 제1 중창을 한 후 서기 930년 보량국사가 작갑사의 옛터를 찾아 절을 지으면 반드시 불법을 보호하고 삼국을 통일할 어진 임금이 나올 것이라는 서해 용왕의 뜻을 받들어 이 터를 찾아왔다가 까치 떼가 모여들며 땅을 쪼아대는 것을 보고 내려와 땅을 파보니 오래된 벽돌이 무수히 나와 작갑사의 옛터임을 확인하고 그 벽돌로 탑을 조성하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작은 전각이 작압전이다.

◇ 작압전 안에 모셔진 석조석가여래좌상 

아무도 없는 작은 공간에 촛농이 묽어 떨어지는데 조심스레 들여다보는 나를 보고 ‘올 줄 알았다’며 온화한 미소로 맞는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317호)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작은 불빛에 광배의 불꽃무늬 같이 흔들리고 선정인(禪定印)곱게 놓은 손과 통견의 법의가 새벽에도 가지런하다. 복겹의 앙련이 도드라진 좌대 위에 가부좌 편안한 부처님의 미소는 염화시중(拈花示衆), 내가 모르는 깨우침을 말없이 보여주고 계신다.
       작압전의 석가여래죄상이 그 아담한 크기에도 권위와 무게를 더하는 이유는 사천왕 석주(보물318호)가 기립하여 사시사철 보호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돌로 만든 사천왕이 귀한 탓에 잘 조각된 이곳의 것은 마치 석굴암의 그것을 닮아있다.
          어두운 불빛 속에서도 험상궂지 않은 표정에 저기 맘이 놓인다. 여유를 갖고 다시 둘러보는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 모두의 표정이 무섭지 않다. 흔히 만나는 어른처럼 혹은 이웃처럼 이승의 세계를 살아가는 친근한 사람의 모습니다. 무명초 끊어내지 못하는 속계의 인간들에게 제일 무서운 모습이 어쩌면 두 눈 부릅뜨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말없이도 스스로를 경계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더 큰 위엄인지 모른다.
           잠시 관음전 앞에서 홀로 독경하는 노스님의 소리를 듣다가 다시 만세루 지나 절 마당으로 나오니 반야심경(般若心經) 울려 퍼진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 비로전 앞 삼층석탑도 새벽잠 깨어 눈비빈다 

“가자, 가자, 저 언덕 너머로 가자. 우리 다 같이 가자.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 언덕이 있기는 한 것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하여도 어디쯤인지도 모르며 어떻게 넘어야할 지도 모르는데 아직 어둔 하늘로 소리는 타고 오른다. 전향각 고운 담 아래 이미 흰 마가렛 꽃은 져가고 봄은 기울어 초여름인데 땀이 듬뿍 흐를 아침이 되기 전에 이미 등이 젖었다. “가자, 가자, 저 언덕 너머로 가자. 우리 다 같이 가자.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 절 마당을 끝없이 걷고 걸으며 듣는 독경소이, 숨이 목에 턱하고 차오른다.
      예불을 올리는 스님들이나 그것을 법당 벽에 기대어 숨죽여 듣는 세속의 사람들이나, 아직 지저귀지 않으나 운판(雲板)소리에 잠이 깬 새들이거나, 목어(木魚)소리에 놀란 연못 속의 물고기 모두가 오늘 하루를 사는 보살심(菩薩心)을 가다듬는 다짐이자 정업(正業)을 위한 기도이다.
           특히 공기의 밀도가 높아지고도 새벽바람이 차지 않은 이 맘 때에는 맑은 소나무 숲의 향기가 새벽 별과 동무하며, 사람 또한 그 속의 하나가 되고 새벽 종소리, 비구니들의 잦아드는 구도의 소리 모두가 오케스트라 되는 희열을 느껴 볼 수도 있다.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 어느 해 가을에 그 곳 마당 한가운데에 서있는, 사방으로 팔을 뻗은 멋들어진 반송(처진 소나무) 아래에서 새벽 기도소리를 들으며 대웅보전 건너 만세루(萬歲樓)에 몸을 맡긴 채로 마사가 곱게 쓸린 절 집 마당에 맨발인 채로 해가 뜰 때까지 오늘처럼 섰던 기억이 있다.

◇ 새벽 예불을 마치고 불이문 속 요사채로 돌아가는 스님들 

법당 안에 스님들이 토해내는 열기가 한고비를 넘으면, 어느새 긴 목탁소리와 끝나고, 스님들은 하나 둘 대웅보전을 나선다. 잠을 못 자 어지러움이 더하던 시간이 지나고 숨을 고르는 시간, 나처럼 땀에 젖은 스님들의 표정이 편하다. 줄지어 불이문(不二門)을 통해 요사채로 발을 옮기고 독경소리 찾아들었던 마음 아픈 사연을 지닌 중생들도 다들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 자리에 같이 있던 나 같은 중생들도 그냥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머무는 자리에서 정언(正言)하고 정사(正思) 하며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근(正勤)하려 노력들 할 것이다.
         이즈음이면 절간에 또 하나의 불빛이 세상을 밝힌다. 공양간 아궁이에서 불이 타는 것이다. 밤새 어지러웠던 삼라만상의 군더더기들이 ‘타타타’ 소리를 내고 땀에 젖은 얼굴로 불을 지키는 밥 짓는 스님(供養主) 두 명, 아마도 사미계(沙彌戒)를 받았으리라.

◇ 공양간에서 또 다른 불을 지피는 스님들 

한참이나 절 부엌에서 불이 타는 모습을 본다. 생명이 없는 마른 나뭇가지마저도 불을 일으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고 뭇 스님들과 중생들이 먹을 밥을 익히고 하얀 증기로 혹은 연기로 남아 세상을 정화한다. 나는 내 마음속의 부질없는 욕망과 허위(虛僞), 가식(假飾)을 불태우면 주물 솥을 데우는데 한 점 온기라도 되기나 하는 것일까?
       공양간 가까이서 수련중인 그들과 장작 타는 빛, 소리, 냄새를 모두 공유하고 싶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멀찌감치 떨어져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궁이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열기와 빛을 보고 아침쌀을 씻고 물을 데우는 저들은 치열하게 용맹정진 하리라. 더구나 우리나라 제일의 여승 승가대학이 있는 운문사의 자존심이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를 실천하는데서 비롯됨을 생각해보면 저 아궁이의 불빛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운문사의 새벽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여명이 밝아오고 피었다 져 가는 꽃들이 조금씩 제 빛깔들을 드러낸다. 하얀 마가렛, 꽃잎이 다 떨어진 작약, 보랏빛 아직 선연한 붓꽃, 붉은 잎이 말라 가는 장미, 그리고 크림색 짙게 고운 후박나무꽃,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조금은 남아있을 찔레꽃의 어지러운 향기…….

◇ 여명이 밝아오는 운문사 풍경 

대웅보전 뒷담 가에 키 큰 보리수나무가 우람하게 제 모습을 보이는 즈음 범종루 앞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의 모습도 뚜렷해진다. 매해 음력 삼월 삼짇날 (음력 3월 3일)이면 절에서는 이 소나무에 막걸리 공양을 한단다. 비록 한 그루의 나무이지만 그 생명을 어여삐 여겨 12말 막걸리를 나무에게 뿌려준다고 한다. 절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처진소나무의 넓고 낮은 모습은 운문사가 자리한 지형과 닮아 평평한 느낌의 여유가 보인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은 산, 호거산(虎踞山) 운문사에는 여명이 다가서고 범종루 밖으로 나와 낮이면 스님들이 울력 하는 밭 가장자리에서 푸성귀 아침잠 깨는 모습과 이슬 젖은 땅을 본다. 또 하나의 숲을 지나 사리암을 오를 것이다. 아직 새벽 독경소리 귓전에 쟁쟁하여 그 힘으로 저 산을 오를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