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8·15는 패전국 멍에 달래려던 기획물이었다

YOROKOBI 2007. 8. 11. 13:04

 



▲ 아사히신문 1955년 8월15일자에‘종전방송에 쓰러져 우는 여자정신대원’(큐슈 비행기의 가시이공장에서)란 설명과 함께 실린 종전특집 사진. 
“지금부터 중대 방송이 있겠습니다.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은 기립하시기 바랍니다.” 1945년 8월15일 낮 12시. 정오를 알리는 시보가 울리자 와다 신켄 일본방송협회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 시모무라 정보국 총재가 히로히토 일왕이 직접 라디오 방송을 한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충량한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로 시작되는 4분37초짜리 종전방송이었다.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던 일본에겐 패전을, 식민지 조선엔 광복을 알리는 방송이었다.

일본 교토대 교수로 미디어사를 전공한 저자는 8월15일 ‘종전기념일’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임을 밝혀낸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선언을 수락한 것은 8월14일이고, 전함 미주리 호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한 것은 9월2일이다. 러시아와 중국, 몽골은 9월3일을 항전승리 기념일로 지키고, 타이완은 10월25일을 광복절로 기념한다. 필리핀은 9월3일,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는 9월12일, 타이와 버마는 9월13일 등 일본군이 항복하거나 무장해제된 날을 종전일로 기억하고 있다. 8월15일은 히로히토 일왕이 라디오 방송을 한 날일 뿐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8월15일이 종전기념일로 자리잡은 것은 1963년 제2차 이케다 내각 때였고, 1982년 스즈키 내각에 들어와서야 ‘전몰자를 추도하여 평화를 기원하는 날’로 8월15일이 결정됐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이 8월15일을 종전기념일로 여기게 된 것은 자민당과 사회당의 양당 체제가 들어선 1955년부터였다고 했다. 우파는 8·15를 일왕의 성단(聖斷)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부각시켰고, 좌파는 일왕에게서 민중으로 권력이 이양된 혁명의 날로 이날을 기념했다. 좌우 모두 생각은 달랐지만, 8·15를 종전일로 삼는 데 합의를 본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종전 10주년인 1955년부터 일왕의 ‘옥음(玉音)방송’을 종전 시점으로 부각시켜 집중 보도했다. 고개를 숙이고 방송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노동자, 학생, 시민들의 사진을 잇따라 발굴해 부각시켰다. 저자는 이 사진들 중 홋카이도신문이 1945년 8월16일자에 일왕방송을 듣고 쓰러져 우는 학생들을 게재한 사진은 기자 요청으로 연출된 것이라고 소개한다. 아사히신문 1955년 8월15일자에 큐슈 비행기의 가시이 공장에서 찍었다며 게재한 ‘종전방송에 쓰러져 우는 여자정신대원’ 사진도 촬영 시점과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분명한 작품이라고 했다. 2005년 ‘종전’ 6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8·15의 기억이 일본에서 어떻게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지 파헤친 화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