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은 정부차원으로 우리를 미개민족으로 매도하는가?

YOROKOBI 2007. 9. 8. 11:56
제 목: 일본국의 군위안부 문제의 호도방안에 대한 반박의 글

요코 양의 함경북도 라남시의 일본군의 사단사령부 숙사에 기거하였으며 일본정부 관리의 자녀로 8.15해방(일본군 항복)과 동시에 일본국의 국민으로 패전 후 약간의 어려움을 당하며 일본국으로 귀국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나는 그가 왜 이런 날조극을 책으로 출간하여 우리 민족을 미개인시 하는지 알 수 없다.
서기 1945년 8월 7일에 소련은 일본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1~2일후에 청진항으로 상륙하여 소련과 일본은 전쟁 중이며 일본군은 다수의 군인이 포로가 되어 소련으로 강제 연행 되여 시베리아의 강제노역에 종사하다가 상당 시간 후에 다수의 병사(8~90%)는 사망하고 사망치 않은 자들은 귀국조치된 것으로 알고 있음.
이때 일본인의 가족은 전쟁의 패전국의 국민으로 대우 되였으며 그들에 대한 대우는 소련군의 권한 하에 패전국 국민으로 취급 되였다. 따라서 그 당시의 모든 행위의 대상은 소련점령군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으며 요코 양의 북한군운운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때에 우리국민의 아녀자도 소련군의 무참한 성의 희롱의 대상이 되여 울분을 참지 못한 일부의 학생(신의주 학생의거사건)들이 이를 묵과 하지 않고 봉기하여 강간을 하는 현장부근에서 이를 목도한 학생들이 이를 보고 의분으로 직접 강간하는 소련군을 맨손으로도 살상하는 등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 북한의 곡곡에서 벌어진 학생의거 사건으로 그 당시 그 사건에 가담한 우리의 학생들도 소련군에게 사로잡히어 시베리아 유형의 쓰라림을 받았으며 일부 이보고 이때에 도피하여 월남한 학생들은 서북청년단원이 되어 1945년 8월 15일 이후 1950년 6월 25일(6/25사건)의 전쟁에 참가하여 고향을 찾으려 하였으나 아직도 우리는 남북통일을 하지몿한 비운의 민족이다. 따라서 요코 양의 사건을 인간적으로는 이해가되나 8/15해방이후의 사건은 일본정부가 저지른 잘 못의 대가를 치른 사건의 일부 일뿐 아직도 우리의 이산의 아픈 마음에 대한 사죄의 일환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몰염치한 소아병적이고 이를 미국의 교과서로 다룬 미국국민에게 우리는 말 할 수없는 의분을 느낀다. 미국의 언론은 말할 때 마다 진주만의 현장을 보존하며 이를 사기시키고 있으나 돌이켜보면 미국은 일본을 패전국으로 취급하지도 않고 소련의 태평양지출을 막는데 대한 보조자로 이용하고 그들의 전쟁의 책임을 조금도 묻지 않고 있어서 그들은 지금도 미국의 등에 기대여서 다시금 침략의 기회만 찾고 있는 실정으로 미국은 이 대가를 크게 되돌려 받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바로 알아서 자숙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바로 국정교과서에 6하 원칙에도 맞지 않는 사실을 수록하여 우리민족의 정기를 무시하면 항일 합병당시 스티분슨이 센프란시스코 에서 암살당한 것 보다 더 큰 사건이 이러나도 이는 전적으로 미국인들이 자초한 잘못의 대가일 뿐이다. 그때 미국국민은 우리를 보고 극악하다고 하여도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그보다도 더한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는 미국국민이 진실을 도외시한 대가일 뿐이다.
그리고 일본은 자기들이 미국을 능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태평양전쟁보다 더 악랄한 보복을 할 수 있는 민족이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일본은 혼네와 하고네를 다르게 사용하는 민족으로 지기보다 약하다고 믿을 때는 조금의 양보도 없이 그들의 야욕을 나타내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가 그들에게 그와 같이 당한 것을 보고도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면 미국은 진주만의 공격보다 더 큰 앙화를 당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문명을 배웠으면서 우리의 통치자들이 정치를 잘못하여 우리가 뒤 처진 사이에 우리를 공격하여 우리의 국토를 합병시킨 것과 같은 잘못이 미국이라고 빗키여 가지 않기 때문이다.

요코 이야기의 진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해 본다.

1) 요코 이야기의 6하 원칙에 위배되는 사항.
* 답변: 요코 이야기는 전편에 시간과 일자를 기술하지 않은 것은 모든 사항을 자기의 의도대로 조작한 흔적이다. 따라서 요코의 이야기는 허위 날조된 사기극인 것이다.
2) 요코의 사항 중 열차가 출발할 때는 점령군의 허가 하에 병자만 실은 열차를 출발시켰다.
* 답변: 요코의 이야기 중에 도중에 열차를 정지시키고 병자가 안인 자의 수색의 장면이 나열되고 있는 것은 소련군의 감독 하에 부상자의 후송을 국제 협약에 따른 병자후송의 절차로서 그 명단이 있어서 그것에 따른 수색절차이다. 따라서 이 수색에 인민군을 등장시키는 것은 허위 날조하여 우리민족을 야만인시 하려는 사기극이다.
3) 인민군의 만행이라고 우리민족을 폄하하나 이는 허구이다.
*답변: 해방에서 소련군은 얄타의 협정에 미, 소, 영국의 수장이 결정의 사항으로 38도선이북은 소련군이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치안유지 차원에서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한 초기이다. 따라서 그때의 모든 군정정권은 소련군의 관활 이였다. 그때에 모든 지휘권은 소련군 특히 KGB북조선사령관의 지휘 하에 수행 되여 우리의 백성도 그들의 지휘 하에 통제를 받았으며 우리의 아녀자들도 소련군의 성적 희생의 대상으로 당하여 이를 보다 못한 학생들의 항거가 일어났다.
이것의 대표적 예가 신의주 학생봉기 사건이다. 그때는 우리나라에는 인민군은 없다 이후 소련의 의도 데로 남한을 침공하기 위하여 1947년 초에 인민군을 창설하여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경에 북한의 인민군이 남한을 침공하여 6.25전쟁이 발발하였으므로 1945년의 8월 15일이후의 모든 군의정권은 소련군의 행위이며 이를 우리민족의 인민군 운운하는 것은 사기극이다.
4) 요코의 이야기 중에 비행기 공습은 허구이다.
*답변: 이때는 일본군은 물론 우리나라의 국민도 모두 소련군의 소총(따바를 소총)에 전부 통제 되여 비행기는 36도선부근은 물론 북한의 전역에 비행기의 공습은 없었다. 따라서 비행기의 공습을 허구화 한 것은 조작극이다.
5) 요코 이야기중은 안이나 8,15 해방이후의 일본군의 소련 피랍자중 일부이나마 일본군의 귀향자는 있었으나 우리의 신의주학생 봉기자의 귀환자는 일명도 없다.
*답변: 이와 같이 일본은 그들의 만행을 국가의 차원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우리를 보호 할 힘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기화로 일본국의 정부는 정부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사건을 왜곡하여 우리민족을 미개인시 하도록 세계에 이를 날조하여 공보하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도 일본이 얼마나 야만적인가를 예시하며 세계인에게 알려야 한다. 즉 일본은 정부차원에서 이런 조작극을 생산 유포한다는 사실을 세계에 공포하여 즉 국가의 차원에서 한 사기극임을 폭로하여야 한다.

참 역사 문화 연구회. 연구원. chun ja. 올림.

2007년 5월 14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