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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사카 고타로의 단편 ‘투명한 북극곰’은 한편의 수채화와 같은 작품이다. ‘나’는 어느날 여자 친구와 함께 동물원에 갔다가 다른 여자와 데이트 중인 누나의 옛 남자를 만난다. 누나는 그 남자와 헤어진 뒤 북극곰을 만난다며 떠난 뒤 캐나다에서 실종된 상태다. ‘백곰의 털은 광섬유처럼 속이 비어 있고, 정확히 말하면 투명하단다’라고 가르쳐주었던 누나였다.
누나가 북극으로 가기 전에 들렀다는 캐나다에서 대지진이 났고, 그 이후 연락이 끊겼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누나의 말은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와 누나의 옛 남자는 우리 속의 백곰을 바라보며 쿨하게 대화를 나눈다. 어쩌면 울타리 너머 백곰을 바라보는 ‘나’를 어디선가 누나가 바라보고 있을 지 모를 일이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추억보다 더 투명한 끈은 이 세상에 없다고 이 소설은 잔잔하게 속삭인다. 사랑의 기쁨, 실연의 아픔, 추억의 아련함, 시간의 허망함 등등의 짙은 감정의 물감들이 투명한 물 속에서 뒤엉키지만 깔끔한 이야기를 남긴다.
이시다 이라의 ‘마법의 버튼’은 유치원 시절의 놀이를 잊지 못한 채 사랑을 찾아나서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오른쪽 어깨의 버튼을 누르면 투명인간이 되고, 왼쪽을 누르면 돌이되는 놀이다. 그 놀이를 재연할 수 있는 사랑은 없을까.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실연의 슬픔도 투과되어 가벼워지고, 혼자 우는 모습을 남에게 들킬 일도 없겠지. 돌이 되면 가만히 굳은 채로 슬픔을 결정화시켜 마음 깊숙이 가라앉힐 수도 있으련만…’
이밖에 ‘졸업사진’(이치카와 다쿠치), ‘모모세, 나를 봐’(나카타 에이이치) ‘뚫고 나가자’(나카무라 고우) 등이 실린 이 소설집은 일본 소설 애독자들을 위한 추석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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