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연애편지 수준의 서신을 주고받으며 각종 의혹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과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로비스트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때로는 금품으로, 때로는 몸으로 로비를 벌였던 의혹의 주인공들을 다시 돌아봤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게이트 공화국’ “지겹다 지겨워”
한국에서 로비스트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처음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김영삼 정부시절인 지난 96년 린다 김이라는 여성 로비스트가 벌인 이른바 ‘몸 로비’사건을 통해서다.
린다 김(한국명 김귀옥)은 미모의 로비스트로 당시 이양호 국방장관을 비롯한 고위층 인사를 상대로 ‘애정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았다.
‘사랑하는 린다에게’ ‘산타바바라 바닷가에서 아침을 함께 한 그 추억을 음미하며’ 등 연정을 담은 이양호 전 국방장관의 러브레터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이 전 장관이 결국 ‘부적절한 관계를 2번 가졌다’고 고백하면서 사건의 파장은 엄청났다.
이 때부터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이 ‘혼외 관계’를 뜻하는 유행어로 회자됐다.
린다 김은 이외에 그 당시의 국회 국방위원장, 환경부장관, 신한국당 의원, 동력자부 장관 등과도 수시로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1996년 정부는 국방부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의 납품업체최종 선정을 앞두고 있었다.
사실 린다 김은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만 유행하게 했을 뿐 엘리트도 아니고 여성 사업가도 아니었다. 국내에서 가수활동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 로비스트로 변신했다는 사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그가 김영삼 정부에서 장관과 국회의원 등을 지낸 사람들과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부분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96년 6월로 올라간다. 당시는 국방부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의 납품업체로 미국 감청장비 제조업체인 E시스템사가 최종적으로 선정되기 전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최종 재가가 나기 바로 3개월 전.국방장관 이양호씨는 시내 모처에서 청주고 선배인 정종택 전 의원의 소개로 린다 김을 만난다. 공군 파일럿 출신인 이씨는 천신만고 끝에 국방장관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문민정부의 하나회 분쇄정책의 대표적 수혜자. 그러나 장관에 오를 때부터 구설수에 시달린 데다 수뢰사건으로 장관직에서 해임된 뒤 구속되기 전까지도 자질 시비에 휘말려야 했다.
이씨는 그를 만난 지 한달만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해 잇달아 세통의 편지를 보냈다. 같은 해 7월에는 국군기무사령부가 그의 불법 로비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늦게 찾아온 사랑에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이씨는 당시 임재문 기무사령관(예비역 중장)의 수사보고서를 편지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공인의 자세를 망각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신정아 사건으로 ‘몸 로비’ 린다 김 다시 화제
2000년 DJ정권 뒤흔들었던 ‘옷 로비’ 사건도 회자
부적절한 관계의 진상이 드러날수록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문민정부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황명수 전 의원도 김씨를 소개받고 서로 알고 지내온 것. 검찰은 김씨가 벌인 로비에 대해 언론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뒤 재수사 여론을 외면했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재수사에 나서지 않자 1심에서 그를 법정 구속하고 말았다. 재판 과정에서는 그가 군 관계자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다시 한번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법원은 이후 항소심에서 김씨를 집행유예로 석방했다. 그뒤 김씨는 미국으로 출국해버려 로비 의혹은 영원히 묻혀버렸다. 김씨는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호텔을 경영하면서 교포사회 모임에도 자주 나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00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옷로비 의혹사건’은 신동아그룹 최순영회장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구명 로비를 펴던 중 구속이 불가피해지자 로비를 전격 포기하고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낙마운동을 벌인 사건이었다.
이형자씨는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남편의 구속을 막기 위해 1999년 말까지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씨는 신동아그룹 전 부회장 박시언씨의 부인 서모씨로부터 남편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로비를 포기했다. 그리고는 옷값 대납을 요구 받은 사실 등을 주변에 유포하며 반격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의 부인 배정숙씨는 98년 12월 이씨에게 수천만원에 달하는 옷값을 대신 내달라고 요구했다.
또 당시 라스포사 사장이던 정일순씨도 “연정희씨(김태정 전 검찰총장의 부인)가 라스포사에 오면 밍크코트 세벌과 외제 옷들을 보여 줄 것인데 가격이 수천만원대는 될 것”이라며 로비명목의 옷값 대납을 요구했다.
정씨는 또 연씨에게 호피무늬 반코트를 보낸 후에 4차례에 걸쳐 이씨 동생 영기씨에게 전화를 걸어 1억원 상당의 옷값을 내라고 했다.
이 와중에 이씨가 대학 동문인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김종필 전 총리 부인 박영옥 씨에게 1억원대의 미술품 등을 선물했다는 의혹이 떠돌며 ‘옷 로비’ 소문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이 같은 소문들은 후일 모두 사실무근으로 판명됐지만 결국 세간의 의혹은 국회 청문회와 특검까지 실시되는 동력이 됐다.
이로 인해 청와대 사직동팀의 내사에 이어 두 번의 검찰 및 특검 수사와 국회 청문회를 거치며 당시 법무부 장관이 옷을 벗은 뒤 구속되는 등 1년여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시 온갖 의혹들이 불거져 나왔지만 검찰은 의혹사건이 더 이상 비화되지 않도록 서둘러 사건을 봉합했으며 청와대 사직동팀을 맡고 있는 법무비서관이 내사상황 등을 수시로 당사자에게 흘려줬던 것으로 정리됐다.
여기에 검찰은 당시 ‘실패한 로비’라던 옷 로비 사건을 ‘포기한 로비’로 한단계 낮춰 규정했다. 결국 한 여인이 남편을 살리기 위한 로비가 어려워지자 보복에 나섰으며 여기에 연루된 검찰총수 부인의 비리를 덮기 위해 사정당국이 동원됐다는 게 사건의 줄거리다.
옷 로비 사건은 재판에서 사건 관련자들에게 잇따라 무죄판결이 내려지면서 결국 실체 없는 사건으로 남았다.
로비의 주역으로 지목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이형자씨 자매는 무죄를 받아냈다. 또 옛 청와대 사직동팀 내사결과 보고서를 유출한 혐의로 나란히 기소된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김태정 전 법무장관이 차례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결국 지난 3년여동안의 재판 결과, 로비시도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자들 대부분에게 무죄가 인정됐다. 따라서 ‘거짓말(위증)’은 처벌받았지만, 로비 의혹은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는 모양새로 끝을 맺었다.
이듬해에는 이용호 G&G그룹 회장이 주가조작 및 로비를 벌인 의혹을 받으면서 ‘이용호 게이트’가 터졌다. 옷 로비 사건에 이어 또 다시 실시 된 특검은 이용호 회장 주가조작과 횡령, 이와 관련한 이용호, 여운환씨,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 등의 정·관계 로비의혹 그리고 이 두 사건과 관련한 진정·고소·고발 사건에 대한 검찰의 비호 의혹 사건을 수사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전까지 최대 60일이던 특검의 수사기간이 1백5일로 연장되고, 참고인이 1차 소환에 불응할 경우 특별검사가 동행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특별검사의 권한이 강화되는 강수가 동원되기도 했다. 특히 당시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과 관련한 의혹도 수사 대상에 포함돼 국정원이 특검 수사대상에 오르는 초유의 일도 일어났다.
당시 검찰은 예금보험공사 이형택 전 전무와 전 국정원 경제단장 김형윤씨가 삼애인더스 보물선 인양사업에 참여해 주가조작에 개입했다는 흔적을 추적했다.
핵심은 역시 정·관계 로비 의혹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역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 뒤에도 결정적인 내용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관계 인사들을 겨냥한 ‘로비용 펀드’라는 의혹이 제기됐던 이씨 계열사의 해외 전환사채 수사에서도 큰 성과가 없었고, 검찰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일부 간부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의혹을 키운 것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DJ정부 말기에는 미래도시환경 대표였던 최규선씨의 각종 비리 의혹 사건이 불거지면서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가 터졌다. 당시 이 사건은 검찰 수사가 청와대와 정치권 등으로 확대되며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당초 검찰은 최씨의 개인비리를 밝혀내 구속한 뒤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씨의 ‘청와대 해외도피 종용’ 주장과 “최씨가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측에 돈을 줬다”는 설훈 당시 민주당 의원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도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의혹, 청와대 해외도피 지원 및 종용 의혹, 이 전 총재의 최씨 돈 수수 의혹 등 세 갈래로 나뉘어 진행됐다.
우선 체육복표 사업 관련 의혹은 최씨가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 대표였던 송재빈씨 측으로부터 15억원을 받고 수만 주의 타이거풀스 주식을 싼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홍걸씨의 동서가 타이거풀스 주식 1만3천주를 차명으로 보유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친인척 비리로 확대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최씨가 받은 15억원이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개입의 대가인지, 이 과정에 홍걸씨가 개입하고 대가로 돈과 주식을 받았는지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었다.
이 와중에 청와대가 최씨의 해외도피를 종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사건은 더욱 확대됐다. 최씨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검찰 출두 직전 경찰청 특수수사과 최성규 전 과장이 ‘외국으로 나가는 게 어떠냐’는 이만영 대통령정무비서관의 말을 전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일이 커지자 검찰은 이 비서관을 소환조사한 뒤 “이 비서관은 최 전 과장을 잠시 만나 일상적인 대화만 나눴다고 진술했다”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밝혀줄 핵심 인물인 최 전 과장이 해외로 도피하면서 이 과정에 청와대의 배후 지원이나 방조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됐다. 게다가 최씨에게 청와대 정보를 유출한 의혹을 받고 있던 이재만 당시 대통령 제1부속실 행정관이 검찰 조사를 받기 전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은 더욱 확대됐다.
결정타는 이회창 전 총재의 돈 수수 의혹이었다. 설훈 당시 민주당 의원은 “최씨가 윤여준 의원의 자택에서 이 전 총재에게 전해달라며 2억5천만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재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설 의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또 다른 비리사건 터지나
한나라당 “제보 2~3건 확보”
한나라당이 권력형 비리가 추가로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이른바 ‘권력형비리’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13일 최근 잇따라 터진 신정아 학력위조 파문,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의 세무조사 무마청탁 의혹 외에 “권력형비리 2∼3건에 관한 제보를 접수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안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윤재, 신정아 게이트와 관련해 우리가 지목하는 권력실세에 대해 우리가 받은 (의혹관련)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할 것”이라면서 “각각 복수의 권력실세에 대해 조사를 할 예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검찰의 수사 결과와 우리 조사 결과가 다를 경우 국정조사를 요구할 것”이라면서 “국조에서 많은 자료가 축적되면 특검으로 갈 것”이라고 덧붙여 먼저 국정조사를 벌인 뒤 특검을 도입하겠다는 방침도 드러냈다.
안 원내대표가 비리제보 접수 사실을 공개한 배경에 대해 한나라당의 다른 고위관계자는 이날 “아무 근거 없이 발표를 했겠느냐”면서 “안 원내대표가 발표한 내용 외에도 많은 제보가 접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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