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바로알기

불교계가 <조선일보> 구독거부 나선 까닭

YOROKOBI 2007. 10. 9. 16:47
  
지난 2004년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 부근 동화면세점앞에서 열린 '친일에서 숭미까지 조선일보 84주년 규탄대회'.
 

"조선일보사가 어디 있습니까?"

 

<조선일보> 독자가 가장 많은 영남에서 서울로 올라온 한 스님이 거리에서 물었다. 조선일보사가 어디 있는지 모를 만큼 평생 선방에서 정진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조선일보사를 찾은 스님은 한동안 호텔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끓어오르던 분노를 가까스로 가라앉혔다. 봉암사 주지 함현 스님이다. 

 

봉암사는 조계종의 하나뿐인 종립선원이다.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유일한 절이다. 세속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절의 주지가 왜 <조선일보> 사옥까지 찾아왔을까.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단 봉암사 함현 스님만이 아니다. 불교계 전반에 퍼져가던 분노는 지난 주말에 열린 26개 본사 주지회의에서 '조선일보 구독거부'를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선방의 수좌 스님들까지 격분하게 만든 보도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얽히고설킨 불교계... 그러나 본질은 잘못된 보도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이미 <조선일보>를 비롯한 신문과 방송의 무책임한 보도로 불교는 먹칠을 당할 만큼 당했다. 그래서일까. 조계종단 차원의 구독거부 결의에 차가운 눈길이 쏟아진다. <한겨레>도 7일자 사설에서 "파벌 극복으로 청정 비구종단 회복을" 주장했다. 

 

물론, <한겨레> 사설은 언론이 "크건 작건 불교계가 신정아·변양균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이용해 권력으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은 것처럼 보도"하고 "대부분 정상적인 국고지원인데도 부정한 행위, 즉 공모의 대가로 받은 것처럼 오해하게끔 보도했다"고 옳게 지적했다. 그럼에도 사설은 '동국대 재단의 파벌 간 주도권 다툼' 비판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조선일보>와 닮은꼴 신문들은 구독거부 결의를 '내부 단속을 위한 외부 공격' 따위로 분석하고 있다. 조계종단의 '조선일보 구독거부' 결의가 어느새 '파벌'이나 '내부 문제'로 초점이 흐려지고 있는 꼴이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아니다. 조계종은 변양균씨의 권력형 비리를 결코 부정하고 있지 않다.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지만 본사 주지들의 결의문은 들머리에 "몇몇 사찰들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대해 깊은 유감과 사과의 뜻"을 명토 박았다. 이어 "교단운영과 사찰관리에 보다 엄정한 노력"과 "국가문화재와 문화유산 보존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것"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문제의 핵심은 언론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불교계 전반을 싸잡아 매도한 데 있다. 대표적 보기가 월정사 보도다.

 

<조선일보>는 9월 21일자 1면에 신정아씨와 동국대 교수로 임용될 무렵부터 월정사가 수십억 원의 국고를 집중 지원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썼다. 기사를 읽어보면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의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그 뿐만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고위 간부로 있는 대다수 언론사들은 '템플 스테이'라는 전통문화체험 지원마저 권력형 비리로 의혹을 제기했다. 조계종단은 확산되어가는 보도의 '배경'으로 한나라당을 꼽고 있다.  

 

'마녀사냥' 깨달은 조계종단, 이제 적극 나서야

 

조계종단의 분석처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그를 지지하는 언론이 의도적으로 불교를 비난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다. 불교계를 겨냥해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이 검찰과 한나라당, 친미 언론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 이명박 후보에게 나타난 여러 문제점은 묻혀버린 사실이 그것이다. 

 

그렇다. 지금은 문제의 핵심을 흐릴 때가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상대를 살천스레 몰아세우거나, 부분적 비리를 전체의 비리로 매도하기 일쑤인 한국 언론의 오랜 관행, 바로 '마녀사냥'을 조계종단의 지도부가 뼈아프게 깨달은 데 있다. 

 

봉암사 주지 함현 스님은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다시 절로 내려갔다. 오는 19일 봉암사에서 전국의 모든 스님들이 참여하는 '수행종풍 진작을 위한 대법회'를 준비하고 있다. 함현 스님은 그 법회를 '참회 법회'라고 표현했다. 

이 참에 참회법회와 조계종단에 당부하고 싶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에 피해를 본 것은 불교만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마녀사냥을 당해왔다. 세속의 사안이기에 불교가 언론 문제에 늦게 눈뜰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수행 종풍 진작'과 더불어 이제부터라도 뚜렷한 언론개혁의 철학을 지니고 한국 언론을 올곧게 세우는 데 불교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그것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