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십일조에 대한 바른 이해(2)

YOROKOBI 2008. 3. 22. 12:30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말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병든 짐승들을 제물 삼아 제사를 드림으로써(말1:8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병든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을 저주하시고 그들의 복을 저주하리라는 말씀을 내리신다.

 

(말2: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말라기 3:10  본문에 언급된 십일조는 구체적으로 레위인을 비롯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창고에 저장해 두어야 하는 십일조이다(느 10:37-39). 그리고 계속해서 과거 출애굽부터 가나안 정착에 이르는 동안에 하나님이 내리신(밤낮으로 만나와 메추라기) 풍족히 먹고 남은 것같이 지금도 하나님께서 과연 그 성전일하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줄 십일조를 성전 옆 창고에 들이고 제사장들은 그것들을 몰래 빼돌리지 말고 정직히 행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지 아니 주시는지를 시험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들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도 "주"를 달았다시피 '시험하여'라는 단어도 잘못된 이해이다.   "시험하다" 원어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히브리어  נסה'나싸' 와 בחנ'빠한' 이다. .נסה'나'는 헬라어  peirazo '페이라조'인데 이는 글자 그대로 '시험하다(test, tempt)' 뜻이고, בחנ'빠한'은 '마음의 상태를 증명하다'라는 뜻으로 헬라어로는 dokimazo '도키마조'(prove)이다. 이는 성경의 다른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할 때 '시험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히브리어 נסה'나싸' 단어 이지만, 그러나 말라기 3장 10절의 시험은 בחנ'빠한'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증명해 보라"는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이나, 헬라어 성경은 모두 이 두 단어를 명확히 구분하여 사용하며 번역하고 있지만, 우리 성경은 구분 없이 모두 '시험하다'라고만 번역함으

로써 혼동을 일으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섰던 백성이 이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 관계회복과 메시아 오심에 대한 약속이다. 제사장들과 레위인이 흠이 있고 의롭지 못한 예물을 하나님께 가져왔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받지 않으셨지만, 메시아가 오셔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심으로써 의로운 제물을 드리실 것이기 때문이다(3:3).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제물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열국의 제물도 받으시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바른 헌물과 제물을 드리는 온전한 제사가 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십일조를 언급하고 있는 본문이 몇 구절 있다.

마태복음 23:23;  누가복음 11:42; 18:12;  히브리서 7:1-10 절이 유일한 본문들이다.


(마 23:23; 눅 11:42; 18:12)너희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마 23:23). 그리고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그러나 이것들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23:23). 이 말씀은 십일조 지지자들에 의해서 신약시대에도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에서와 같이 십일조 실행을 정확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마태복음 23장에 언급된 십일조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십일조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어찌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십일조를 실행했다거나 가르침이 없을까? 

 

그러면 헬라어 원문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ouai umin, grammateiV kai farisaioi upokritai, oti

우아이    휘민        그람마테이스          카이     파리사이오이        휘포크리타           호티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because   

화 있을찐저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여!외식하는 너희가 십일조를 드리기때문이다.

apodekatoute to hduosmon kai to anhqon  kai to  

  아포데카투테           토       헤두스몬          카이   토     아네돈          카이    토        

   ye tithe              the        mint             and      the   dill             and  the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kuminon, kai afh kate ta barutera  tou nomou,

쿠미논             카이   아페       카테     타         바루테라              투         노몬              

cummin       and    ye{haev}left            the heavier things                    of the law,--               

버렸도다              더 중요한바것들인                                          율법의                   

thn krisin kai ton eleon kai thn pistin tauta  .

텐       크리신         카이    톤          에레오온 카이       텐    피스틴      타우타       

 judgment        and  --             mercy             and --      faith but     these things it    .       

  의와                              인과                             신은 그러나 이것들도    

 

  de edei   poihsai  kakeina  mh afienai

데 에데이        포이에사이        카케이나      메      아페이나이.

behoved to do and            those        not      to leave

행했어야했고 저것들도 버리지 말았어야 했었도다.

 

poihsai(포이에-사이) :행하다 부정과거시제이고, afienai(아피에나이): 버리다 ->부정과거시제이다. 현재형은 afihmi(아피에-미)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러나 이것들도[tauta-우타] 행하고 저것들도[kakeina- 카케이나-버릴 수 없는 저것들은 십일조를 포함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다양한 제사 행위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둘다 복수형이다)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는 말씀은 그렇게 행하라는 명령형 문장이 아니라 직설형 미완료 동사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렇게 행했어야 했었다는 당위성만을 말하는 문장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율법을 지킨다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참으로 율법을 지키려면 물질의 십일조만 드릴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더욱 중요한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고 다 지켜 행했어야 했었다는 당위성을 말씀하신 것 뿐이지 그렇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십일조를 안하는 사람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지나칠 정도로 철저히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책망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물질에만 집중하고  있고 의와 인과 신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말씀을 이용해서 십일조를 철저히 바쳐야 한다는 구절로 설교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본래의 뜻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본문은(마 23:23) 그런 의미에서 신약 시대가 아니라, 구약 시대의 맥락에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여전히 구약의 율법들이 유효한 시기이며, 바리새파인들이 십일조에 대해 충실해야 함은 사실이다. 십일조는 의식법에 속하고, 성전 예배도 진행 중이었으며, 제사장들과 레위인은 그들의 생활 유지를 위해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를 필요로 했다. 예수님의 구약적 입장에서 말씀하셨다는 근거는 “때가 찼다”는 선언인 것이다. 새 시대의 실제적인 전환점은 그분의 죽으심, 부활, 승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써 이루어지며,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 때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는 자신을 율법의 규정에 복종하셨으며(갈 4:4), 그분의 가르침 중 많은 부분은 구약 시대의 문맥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특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와 비슷한 부탁을 하신 것도 구약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십일조와 같은 의식법과 관련된 언급들은 신약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십일조가 신약의 어디에서도 “폐지되었다” 것을 못봤다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안식일과 제사 제도에 대해서는 “폐지되었다”는 문구도 보지 못했다는 것과 일반이다. 똑같은 원리로 신약 어느 곳에서도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고 단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자로서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 9:14)고는 했으나, 그러나 자신은 그것이 교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요구하지 않고(고전 9:15, 18),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18에서 감독이 복음을 전하면서 수고비를 받아야 할 것을 언급했지만 구약의 기업이 없던 레위인들이 하던 방식이 아니라 일반적으로만 언급하였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또한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교회를 도우려고 사용되는 돈을 모으기 위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특히 고린도)에 알리고 그들이 가난한 자들을 도울 것을 호소하였지만, 어떤 구체적인 방법이 있어 그대로 따를 것을 지시하지는 않았다(롬 15:25-27).

 

고린도 교회에게는 이런 식으로 드리는 헌금의 정신을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고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후 9:7)고 썼다. 이것을 바울은 “참 연보” 즉 넉넉히 주는 선물 이라고 규정하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 드리는 헌금을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 하시리라”고 말함으로써 현대 교회가 일괄적으로 “십분의 일”을 부과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헌금 방법을 실시하였다(고후 8:12). 신약성경에는 우리가 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표한다고 가르치는 구절이 없다.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십자가에서 율법[의식법에 속하는 십일조 등]의 요구를 다 이루셨기 때문에 십자가 이후에는 구원의 길로서 율법기능은 종결되었던 것이다.  구약의 피 제사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제사에 비하면 그림자요, 예표였고 그리스도의 제사는 실체요, 그 원형이다.

 

[히 7:19]"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  그래서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로 보았다. 따라서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의 기능의 종결에 관하여 바울보다 더 과격하다. [히7:27]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린 희생이 모든 것을 다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7:18]" 전옛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율법폐하셨다.  

 

[롬 10: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마침이고 완성인데도 옛언약의 백성들은 제사제도를 계속할 것이 틀림없으므로 이 제도를 하나님은 성전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고 자신의 심장을 내보이셔서 물리적 방법으로 폐지하셨다. 그래도 성전이 있는 한 레위제사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AD 70년에 로마의 디도장군을 들어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시켜셨다.

 

그후 성전재건은 이뤄지지 못했고 또 시온주의 결과로 유대인들이 2차대전후 팔레스틴에 귀환하여 이스라엘을 세웠어도 아직도 성전을 세울수 없는 것이다. 성전만 아니라 제사장 가문을 완전히 허물으심으로 지금까지도 사독의 뒤를 이은 제사장의 후예를 확인해 낼 길이 없다. 그들의 성씨가 코헨이란 사람을 찾아 제사장으로 세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로 코헨은 제사장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헨이라는 성씨를 가진 자도 찾을 길이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 율법을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하셨기 때문에 구약율법중 의식법인 십일조 등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다시 허물어 버리는 아주 무서운 저주의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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