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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의 사건이었다. 이 엘카스르 동네의 어린아이들이 일곱 명 떼지어 낙타를 타고 사바크를 캐러 원정을 떠났다. 12월은 날씨도 선선하고 땅이 물러 사바크를 캐기도 좋고 그때가 마침 나일강 유역이 경작기라서 비료를 줄 시기인 것이다. 엘카스르에서 3㎞ 정도 떨어진 곳에 게벨 알 타리프(Gebel al-Tarif)라는 기암절벽 산이 있다. 그 기슭에 사바크는 무진장 있다. 한 아이가 곡괭이질을 해대는데 파각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심상치 않은 공명 소리에 곡괭이를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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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진에 대한 공포도 있었지만 퍼뜩 불순한 탐욕에 사로잡힌다. 그래! 이런 마법의 항아리 속에 찬란한 파라오의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을 수도 있다. 용기가 솟았다. 순간 알리는 곡괭이를 들어 힘차게 내리쳤다. 학계의 추산으로 따지면 정확하게 1578년 동안 이 항아리의 흑암 속에 갇혀 있었던 인류문명의 한 거대한 보고가 인간세의 광명으로 드러나는 그런 위대한 순간이었다.
항아리는 산산조각 났다. 어찌 되었을까? 그 순간 알리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정말 번쩍이는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금가루의 진이 하늘을 수놓는 듯 허공이 빛났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었다. 그의 발 아래 드러난 것은 파피루스(papyrus) 다발을 가죽으로 정중하게 포장하고 묶은 13개의 코우덱스(codex)였다. 아마도 이 코우덱스 겉가죽이 금박으로 장식되었을 수도 있다. 순간 그 금가루들이 증발했을 것이다.
김이 팍 샜다. 우선 돈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파피루스 파편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고문명의 후예들이 아닌 것이다. 기원 전후 시기에 책은 크게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양피지(parchment)라는 것인데, 양이나 염소ㆍ소가죽을 재료로 쓴 것이다. 이것은 요즈음 우리가 보는 족자 형태의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 이것은 볼룸(volume)으로 센다. 또 하나는 파피루스인데 이것은 나일강 하류 델타 지역에서 페니키아 일대에 자생하는 4~5m가량의 갈대풀인데 이것을 잘라 엮어 편편한 바위로 눌러 놓으면 저절로 풀 성분이 나와 접착되어 종이처럼 된다. 파피루스는 1~2세기 께는 꼭 요즈음 책(冊)처럼 한쪽으로 묶어 제본을 했다. 그 제본된 책을 가죽 보자기로 싸고 네 귀퉁이에 묶인 끈으로 둘러 묶는다. 이것을 우리는 코우덱스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하나의 코우덱스 속에는 대여섯 개의 책이 같이 제본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알리가 깬 항아리에서 나온 13개의 코우덱스 속에는 필경 60여 개의 책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신약성경보다 많은 분량이다.
사바크 절벽 비탈에 나둥그러진 이 지저분한 가죽 코우덱스를 바라보던 아이들은 모두 재수없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렇다고 항아리를 깨고 얻은 전리품을 혼자 독식하는 것도 별로 체면이 서지 않았다. 알리는 그 코우덱스를 북북 찢어 일곱 명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코우덱스를 북북 찢는 그 장면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파피루스를 손에 든 아이들은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우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알리가 나누어 주는 품새가 뭔가 내키지 않는 느낌이 있었다. 아이들은 곧 파피루스를 모두 알리에게 되돌려주었다. 우린 담배도 안 피운다. 너나 팔아 담배 몇 개비라도 얻어 먹어라! 썅. 그나마 그것을 알리에게 돌려준 아이들의 푸념의 심정이라도 하나님께서 내려주시지 않았더라면 21세기 정신혁명의 한 도화선이 될 수도 있는 이 위대한 발견이 흔적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알리는 아이들이 돌려준 코우덱스를 터번을 풀어 두루루 말아 등에 메고 어깨를 둘러 가슴에 잡아맸다. 그리고 낙타에 올라타 터덜터덜 다시 알카스르로 향했다. 그 순간 알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나는 인류사의 한 희ㆍ비극이 교차되는 그 운명의 장소를 꼭 찾아가서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는 관광 코스로 지정되어 있는 국립공원을 벗어날 경우 반드시 경찰에 신고를 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나는 룩소르 경찰청에 신청서를 냈다. 그리고 이틀이나 기다렸다. 겨우 허가가 떨어졌다. 무장한 경찰차가 우리를 앞뒤로 호송했다. 우리 일행 6명이 나타나니깐 나머지 54명은 어디 있느냐고 했다. 경찰청은 한국인 관광객 60명이 게벨 알 타리프를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60명이라는 숫자 때문에 허가가 떨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60명의 호송 비용을 나 혼자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는 함라돔(Hamra Dom)은 특별 분쟁지역이며 엊그제도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했다. 대통령 무바라크도 안 가는 곳이라 했다. 룩소르를 출발해서 검문소마다 그 지역 경찰들이 차를 갈아탔다. 내 차에는 사복경찰이 한 명 올라탔다. 그 지역 지리에 밝은 그 지방 사람이었다. 우리 차가 알카스르에서 에즈발 부우사라는 작은 동네를 거쳐 드디어 함라돔에 도착했을 때 사복 경찰은 허리에 찬 권총을 꺼내더니 안전핀을 풀었다.
“왜 그러슈?”
“가까이 오면 가차없이 쏴 버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