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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로마사회는 다원주의를 포용하는 사회다. 통치자도 단일한 리더십보다는 항상 다원적 리더십을 수용했고, 신도 단일한 하나님보다는 다양한 시공의 성격을 대변하는 친근한 다신(多神)을 자연스러운 종교생활의 양태로서 받아들였다. 우리는 종교 하면, 다신론(polytheism)은 유치한 형태의 신관이고, 유일신론(monotheism)이야말로 진화된 고등한 형태의 신관이라는 생각에 암암리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사실 인류 역사를 공평하게 형량하면 그것은 단순한 편견일 수 있다. 다신론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영원히 인류가 저버릴 수 없는 종교적 열정의 발로일 수 있다. 이에 비한다면 유일신론은 매우 비자연적인 특수한 종교관의 강요이다. 대체적으로 유일신론은 지상에서의 권력의 통일과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폴리스체제하에서 유일신론이 자리잡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신 자체가 다원적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유일신론이 정치적 권력의 백업이 없이 인간세에 기승을 부린 유례는 없다. 다신은 자연(自然)이요, 유일신은 당위(當爲)였을 뿐이다.
하여튼 기독교의 공인 이후에 로마사회에서 벌어진 가장 참담한 결과는 다신론과 유일신론의 대결이다. 유일신관을 신념의 기조로 삼는 기독교가 국교가 된다는 것은, 결국 신관의 영향하에 ‘유일한 국교’가 될 수밖에 없다. 최초의 ‘공인’의 성격은 타 종교와 대등한 신앙의 대상으로서 인정한다는 것이었으나 결국 기독교는 유일국교의 지위를 보장받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거부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유일국교가 되는 동시에 누천년의 전통을 지닌 다신교들이 모두 타도되어야 할 우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관념적 전락은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수메르·이집트 고문명으로부터 희랍·로마 고문명에 이르는 다신론교 전통은 그것이 단순한 종교적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명의 삶의 모든 양태, 그리고 그 양태와 제식이 발현된 위대한 조각·미술·춤·음악·문학·건축, 이 모든 예술의 축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신교의 부정은 거리를 가득 메운 이 위대한 예술전통의 부정을 의미한다. 제우스·아폴로·주피터·비너스·오시리스·이시스 등등, 이 모든 신상이 거꾸러지고 그들을 모신 신전은 존재해서는 아니 되어야 할 더러운 우상의 집이 되어버리므로 파괴되어야만 한다. 그 위대한 인류 문명의 모든 축적태가 하루아침에 궤멸되어야 하는 참혹한 운명에 노출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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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신관의 존중이 왜 다원주의의 부정을 의미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진정한 유일신론은 종교적 문제를 포함한 삼라만상의 다원성을 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유일신은 오로지 하나일 수밖에 없으며, 오로지 하나인 신은 전체일 수밖에 없다. 전체가 아니라면 타에 의하여 국한되는 개별자가 되고 만다. 그것은 유일신론이 아닌 단일신론에 불과하다. “나의 하나님”만을 배타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유일신론이 아닌 저급한 다신론적 세계관 속의 단일신의 권력적 횡포에 불과하다. 그것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 저주의 개별신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탈레반의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은 그릇 해석된 유일신론의 횡포에 불과하다. 탈레반의 하나님과 한국 대형교회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을 통괄하는 오직 하나이신 전우주적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이, 편협한 인간의 언어와 가치관으로 해석된 단일한 하나님 상(像)의 강요는 전도주의적 획일주의의 만행에 불과하다. 그것을 순교의 사명이나 진취적 정신의 개가로서 예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이스탄불에서 서울의 어느 대형교회가 파견한 한국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10년 선교활동을 하면서 한 명의 개종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물론 그 개종자는 무슬림사회로부터는 아웃캐스트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10년 동안의 선교활동비는 적지 않은 돈일 것이다. 한국 기독교 서민대중의 정성 어린 연보 돈이 이런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과연 하나님 땅끝선교의 위대한 사업이라고 해야 할까? 그보다는 더 절실하게 이 땅의 바로 이웃에서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들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AD 367년 부활절, 아타나시우스의 정경목록 발표는 교회사에 있어서 매우 획기적 의미를 지닌다. 즉 정경의 성립으로, 정경·외경의 구분이 존재할 수 없었던 시절의 방대한 교회문헌들이, 단지 정경목록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아침에 모조리 외경으로 전락해버리는 수모를 겪게 된다. 아타나시우스의 정경목록 발표가 곧바로 27서 신약성경의 성립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록 발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가 주석한 알렉산드리아교구의 영향권 아래 있는 이집트 콥틱 크리스찬들에게 그 발표는 즉각적인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는 구속력을 지니는 것이었다. 즉 수도원에 산적한 외경문서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 하는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