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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3 진실로, 천국은 네 안에 있고, 네 밖에 있다.
4 “네가 너 자신을 알 때, 비로소 너는 알려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면 너는 네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5 그러나 네가 너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는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그리하면 네 존재는 빈곤 그 자체이니라.”
한자 문명권의 대표적인 고전 중의 하나인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의 첫 장을 펼치면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작이요,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미다.” 그리고 또 말한다: “무욕(無欲)하면 묘(妙)의 세계를 보고, 유욕(有欲)하면 교( : 형체화되는 가장자리)의 세계를 본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둘은 실상 같은 것이다(此兩者同). 그 같은 것을 일컬어 현(玄)하다 한다.” 이것은 과연 무슨 이야기일까?
유명과 무명은 분명 명(名: 이름, 분별)이 있음과 없음으로 구별되는 세계며, 유욕과 무욕은 분명 욕(欲: 욕심, 집착)이 있음과 없음으로 구별되는 세계다. 그러나 노자는 이 양자를 완전히 분리해서 대립적으로 보는 것을 경계한다. 그것을 대립적으로 보는 우리의 인식 세계가 더 큰 죄악을 낳는다는 것이다. 결국 무명과 유명이 동일한 하나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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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빛이 사라지면 곧 어둠이니라.”(도마복음 제24장). “나라는 존재가 온전한 무분별 상태에 있으면 곧 빛으로 가득 차고, 나라는 존재가 분별되고 분열되면 곧 어둠으로 가득 차리라.”(도마복음 제61장). 여기 요한복음의 로고스기독론적 2원론은 찾아볼 길이 없다.
천국에 대해서도 우리는 현묘한 전관의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천국은 네 안에 있고, 동시에 네 밖에 있다. 무욕(無欲)의 천국을 네 안에 이루었다면 동시에 너는 유욕(有欲)의 천국을 네 밖에 이루어야 한다. 예수의 천국 운동은 주체의 변혁과 동시에 사회의 변혁이었다. 내면의 개벽인 동시에 인간관계의 개벽이었다.
그 전관(全觀)의 오메가 포인트는 무엇인가?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 때만이 너는 천국을 네 안에, 네 밖에 성취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친숙한 언어를 접하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좌우명이자 델피 아폴로신전 현관의 기둥에 새겨져 있는 희랍어 명문(銘文)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신탁의 명문을 인간의 자기탐구로 심화시켰다. 그것은 결국 ‘무지의 자각’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모든 문답의 변증법이 도달하고자 했던 궁극적 목표가 바로 이 무지의 자각이었다. 보리수 아래서 명상하던 싯다르타의 연기적 사유의 궁극도 ‘무지의 자각’이었고, ‘무명(無明, avidya)의 발견’이었다.
예수는 물론 헬레니즘의 보편주의적 문화권에서 살면서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 예수에게서 발견되는 견유학파적 측면은 본시 소크라테스의 삶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놀라운 자제력과 극기력의 소유자였다. 소크라테스는 평생을 맨발로 다녔으며 항상 홑겹의 낡은 누더기만 걸치고 살았다. 더위·추위·굶주림·목마름에 무관심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괴력을 발휘하였다. 그의 군 복무 생활이 그의 친구의 입을 통해 『향연』에 자세히 묘사되고 있는데, 그는 행군할 때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맨발로 걸으면서도 군화를 신은 병정들보다 훨씬 앞장서서 씩씩하게 걸어갔다는 것이다.
병사들은 그가 자기들을 깔보는 것이 아닌가 오해하고 그를 쏘아보곤 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인내심과 집중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동구 밖 느티나무에서 사색에 잠기면 몇 날 며칠을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강직증성 황홀경(cataleptic trances)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그는 평소 술은 마시지 않았으나 마시면 주량이 누구보다 많았고, 아무도 그가 취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여자의 유혹에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오르페우스교의 완벽한 성자였던 것이다.
인간 예수의 모습과 인간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많은 부분이 겹친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예수가 그리스도로 신화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당대의 헬라화된 모든 사람들에게 소크라테스의 이미지는 거의 완벽한 그리스도 모델을 제공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지만 헬라인들에게는 부엌의 콩기름을 뒤집어쓰는 것처럼만 생각되는, 전혀 그 함의가 와 닿지 않는 생소한 말이었다. 그리고 예수의 천국운동은 전혀 ‘그리스도’라는 이미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도마복음에도 예수는 살아 있을 뿐이며 죽을 필요가 없다.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죽어야만 하는 필연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왜 죽는가?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란 누구인가? 최초의 크리스천 회중이다. 이 회중은 예수의 사후에 형성된 후대의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이들을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 자체가 하나의 ‘구속사건(saving event)’이 될 때만이 예수는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대속의 희생은 이스라엘 전통에는 없는 것이었다. 대속의 인간 희생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번제에 쓰려 했던 이삭을 야훼가 구출해 냈던 것이다. 그러나 희랍 전통은 고귀한 죽음(noble death)을 찬양했다. 폴리스는 모든 문화와 교육이 전사(warrior)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으며, 전사는 폴리스를 위하여, 그 법과 인민을 위하여 고귀한 영웅적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영예로운 일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자기의 철학적 신념 때문에 자기를 우롱하고 저주하는 폴리스를 위하여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그레코·로만 시대에 있어서 도덕적 고귀함의 가장 전범이 되는 모형이었다. 예수의 죽음에 소크라테스의 이미지가 겹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는 부활이라는 장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부활의 관념은 당시 이성적 사유를 신봉하는 헬라인의 감성에는 영 떨떠름한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들기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만 했던 복음서 작가들은 그 부활의 신화적 논리를 당시의 묵시론적 성향을 보였던 유대교의 지혜문학 전통에서 빌려왔던 것이다. (Burton L Mack, The Lost Gospel, pp.216~7 참고).
그러나 지금 우리의 도마복음은 이러한 그리스도 신화, 즉 후대의 케리그마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천국은 오로지 자아의 발견(Discovery of the Self)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